메타포라 2차 수업에 다녀와서
은유 작가님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메타포라.
이번 시간 주제는 '쓰는 이유'였다.
함께 읽은 책은 아니 에르노 -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 의 인터뷰집 <진정한 장소>.
책을 읽고, 수업에 참여하는 내내 주제를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는 것을 이후북스 계단을 내려가며 깨달았다.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게졌다. 허술한 나에게 또 실망했다.
내가 더 싫어지면 안 되니 만회해 봐야겠다. 이제라도 생각해 보자. 나는 왜 쓰는가?
1. 스스로를 '쓰는 사람'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말하는 사람 정도인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쓴다. 특히 억울할 때 유용하다. 몇 달 전에도 아빠가 다짜고짜 전화해서 자신이 오해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일방적으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바로 전화를 해서 설명하려고 했지만, 또 일방적으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화가 나서 잠도 오지 않았다. 참다 참다 노트북 앞에 앉아, 아빠에게 편지를 썼다. 하고 싶은 말을 편집하지 않고 모두 적었다.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어 안 하던 퇴고까지 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 스르륵 마음이 풀어져버렸다. 더 이상 편지를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2. 가끔은 내 마음을 알아보려고 쓴다. 한 줄이라도 쓰면, 나라는 불투명한 통 안에 들어있는 무정형의 것이 문장이라는 형체를 가지고, 글이라는 컵에 쪼르르 담기는 기분이다. 그걸 읽으며 비로소 깨닫는다.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구나.' 대계 아침에 일기를 쓰다가 자주 알게 된다.
3. 잊지 않으려고 쓴다. 오랫동안 함께 살고 싶은 기억이나 생각을 적는다. 신혼여행에서 봤던 남편의 미소를 간직하고 싶어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지금도 나를 그날로 뿅 하고 데려가는 건 당시에 쓴 일기다. 첫아기를 유산한 후에도 유난히 그 일에 대해선 꼭 쓰고 싶었다. 13주밖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아이였지만, 어딘가 기록도 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아예 없었던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앞으로 쓰는 이유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쓰는 일은 시간은 좀 들지만, 돈도 안 들고, 무엇보다 다 쓰고 나면 나에 대해 몰랐던 것을 적어도 하나라도 알게 된다.
2. 기억하고 싶은 은유샘의 말들
"이게 좀 더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쓰기는 글 쓰는 사람을 일단 바꾸잖아요. 한 사람도 세상이잖아요."
"삶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글도 안 바뀌어요. 10년은 봐야 해야."
"억눌려야 글이 써져요. 화평하면 쓸 게 없어요."
"분리와 경계, 두 개의 눈을 가진 자가 글을 쓴다."
"추억도, 단어도 사물처럼 대해야 한다는 말은 모호하지 않고 구체성을 띄어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실패가 자산이 되는 게 글쓰기예요. 안 써질 때 고민하면서 얻는 것들이 있어요."
"내 삶을 돌아보고 내가 나에게 내 삶을 설명할 수 있다면 글쓰기가 의미 있는 게 아닐까요?"
"엄마는 언제나 집안의 장롱처럼 당연한 존재였죠. 그분에게 서사가 있는 한 사람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 구원이 아니겠어요?"
"통계와 숫자로 표시되는 사람들에게 서사를 부여하면 구원이 되는 거예요."
"합평할 때 가장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건 -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거예요. 작가와 독자는 정보 값이 다르기 때문에 어디까지 써야 할지 그 감각을 알게 하는 것이 합평이 하는 일이에요."
"고통과 약점을 공유하면 우정을 나누게 되죠."
"진실은 두려워서 회피하고 안 쓰게 돼요. 그럴수록 사실을 써요. 객관화시켜 봐요. 판단하지 말고요. 그렇지 않으면 글이 좁아집니다."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써요. 그러려면 구체적인 정보가 들어가야 해요. 팩트를 쭉 써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니 에르노가 말한 '돌멩이'라는 것은 이게 아닐까요?"
"우리는 전형성의 환상에서 사는 경우가 많아요. 이별도 마찬가지죠. 이별하면 울고 불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그렇지 않은 이별도 많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