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시 과제 - 정상/비정상
이혼하는 데 3년이 걸렸다. 질질 끌던 일을 마무리하면 시원한 해방감을 느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순서도처럼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보다. 법원 정문에서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집에 와서 몇 시간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싶던 사람이었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이별을 후회하는 슬픔은 아니었다.
침대에 엎드려 엉엉 울고 있는데 엄마, 아빠가 아파트 주차장에 와있다고 내려오라고 했다. 밥이라도 먹자고. “엄마, 내가 지금 내려가서 엄마, 아빠를 보기가 어려워. 밥은 내가 알아서 챙겨 먹을게.”라고 문자를 보냈다. 결국 엄마가 올라오겠다고 해서, 퉁퉁 부은 얼굴을 감추려고 모자를 눌러쓰고 내려갔다.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엄마, 아빠 모두 결사반대하던 이혼이었다. 내 결정에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야 했으니, 울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내려갔다. 그런데 이미 멀리서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반대로 돌아서서 눈물을 닦아 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한 아빠가 엄마를 설득해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반년이 지나자 그제야 후련하다는 감정이 찾아왔다. 비로소 덮어놨던 혼인관계 증명서를 들고 눈앞에 찍힌 ‘이혼’이라는 글자를 마주했다. 결혼이 늦었던 친구들도 이미 첫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을 35살 봄이었다. 친구들은 이제 너 어쩌려고 그러냐고 했지만, 정작 나는 K-Timeline에서 벗어나니 후련했다. 내가 느끼기에 '비정상'이었던 결혼생활에서 나와 비로소 '정상'이 된 기분이었다. 30대가 되었으니 늦기 전에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부터 '정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고 다음 인생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그즈음부터 엄마가 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 걱정이 없는데, 너 때문에 계속 한숨이 나. 평생 속 썩이던 아빠가 조용하니까, 이제 네가 문제구나.”
처음 들었을 땐 그랬다. ‘무슨 저런 말을 하지? 너무 부당해. 억울해. 내가 엄마를 위해 불행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이렇게 비정상인 취급을 받아야 하나?’
스스로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엄마 눈치도 있고 해서 매년 가던 외할머니 생신 가족 모임에 빠지고, 제사도, 명절도 갖은 핑계를 대며 친척들과의 만남을 피했다. 할머니가 "네 신랑은 어디 갔어?"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싶긴 했다. 동생이 결혼하던 날에도 하객들이 들어오는 내내 화장실에 가 있었다. 식이 시작하고 불이 꺼지고서야 겨우 내 자리에 가 앉았다.
가족들 사이에 '문제'가 되었지만, 다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혹시라도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절대 혼인 신고 같은 법적 절차 없이 평생 함께 살고 싶었다. 이런 사이가 더 로맨틱하고 이상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아마 더 큰 이유는 두 번 다시 이혼이라는 과정을 겪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그런 내가 또 결혼했다. (역시 인생은 이상하게 흐르는 것인가요?) 남편은 내가 남은 생을 곁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고 무엇보다 내 아기의 아빠가 되어주었으면 하고 처음으로 소망한 남자다. 무슨 운명인지 그 남자는 의학의 도움을 받아야만 임신을 할 수 있는 희소정자증을 진단받았고, 한국에서 시험관 아기 시술은 법적 혼인 관계인 부부에 한정된다. 그렇게 끌려가다시피 용산 구청에 가서 혼인 신고를 했다. 또다시 혼인관계 증명서를 받아 들었다. 이혼 사실 아래 새로운 혼인 사실이 적혔다. 날짜와 이름이 주르륵 적혀 있는 문서를 보고 있으니 내 인생이 남의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다시 결혼했다고 큰 감정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결혼으로 인해 남편과 사이가 변한 것도 아니고 단지 필요에 의해 한 절차였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기뻤다. 연신 웃고, 사람이 명랑해졌다. 몇 달 내내 그랬다.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결혼하기 싫다며? 왜 다시 결혼하고 이런 마음이 드는 거야?’ 혼자 이 질문을 계속했다.
계속 물으면 답 비슷한 것이라도 찾아지는 걸까? 이게 무슨 마음인지 알게 되었다. ‘정상성’을 회복했다는 마음. 안심하는 마음이었다. 이혼한 기간 동안 스스로 '비정상'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고, 심지어 이혼하고 비로소 '정상'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다시 결혼하니 정상성의 회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또 다른 질문이 생겼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어렴풋이 예상하는 건 내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판단하는 건 생각보다 복잡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 정상/비정상 구분하는 기준은 간단한 개인적인 판단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사회적인 판단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시선으로 나 자신을 보지만 동시에 내 동생이, 아빠가, 엄마가, 친구들이 나를 보는 눈으로도 나를 끊임없이 보고 있기 때문에, 주변의 판단에서 깔끔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