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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짱 Mar 04. 2023

"엄마가 다시 일하면?"

아들의 말말말


 복직일이 가까워진다. 둘째는 7개월 차가 되었고, 아들은 7세가 되었다.  첫째는 낳은 지 50일도 채 되지 않아 강의를 시작했었는데, 이번에는 일 년 간 강의를 쉴 수 있었다. 학원 측 배려 덕분이었다. 휴직. 일터 입장에서는 일을 쉬는 건데, 내 입장에서는 일보다 더 전쟁 같은 시간들이었다. 차라리 강의를 열두 시간 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애 둘 육아는 쉽지 않았다. (육아휴직을 하는 분께, "잘 쉬고 오세요."라는 인사는 삼가야겠다.)


 복직을 준비하는 엄마의 마음은 너무나 복잡하다. 물론 아이들 생각이 먼저다. 친가나 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조금 나을 텐데, 나는 그렇지도 못하다. 경기도 이천으로 매일 출퇴근하는 남편에게 아이들의 등하원을 부탁할 수도 없고, 반려묘 세 마리와 반려견 때문에 시터를 모시기도 어렵다. 아들 등하원은 어쩌고, 아직 돌도 안 된 둘째는 어쩌나. 돌도 안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다고 생각하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부터 들었다.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어린이집에 간다 한들 아이가 잘 적응은 할지, 어린이집에 가면 자주 아프다던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들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일은 또 어떤가.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책도 써야 하고, 교재 교정도 봐야 하고,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매일 문제도 풀어야 하고, 새 시즌 강의 계획도 세워야 하고, 학생들 질문에 답해줘야 하고. 잘할 수 있을까. 아니 쉬었다가 다시 하는 거니 더 잘해야 할 텐데, 내 강의를 기다려주는 학생들이 있기는 할까......


 아 몰라...

 복잡한 생각과 마음과는 별개로 일상은 매일 정신없이 돌아갔다.


 오늘은 아들이 좋아하는 미술 학원에 가는 날이다. (아들만 갈 수 있는 미술학원이다.) 여느 때처럼 둘째는 아기띠로 안고, 한 손엔 아들의 손을 잡고 학원으로 향했다. 복직하면, 이렇게 아들 손을 잡고 데려다주지 못하는 날이 많을 텐데... 오가는 길에 레인보우 프렌즈가 어쩌고, 포켓몬이 어쩌고 하는 아들의 종알종알 수다도 못 듣겠지. 이것도, 저것도 못 하겠지...


 아들은 여느 때처럼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걷고 있었지만, 나는 복직 후 아들에게 해주지 못하는 것들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 곧 일하게 될 것 같거든. 엄마가 다시 일하면 어떨 거 같아?"


 나는 조심스럽게 묻곤, 아들의 표정을 살폈다. 노래를 흥얼거리던 아들의 표정이 금세 굳었다.


  "엄마가 다시 일하면?"

  아들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가 다시 일하면... 너무 힘들 것 같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엄마의 빈자리로 힘들 거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아들의 말로 들으니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렇지? 엄마가 다시 일하고 엄마가 없으면... 아들이 많이 힘들겠지.?


 아들은 고개를 젓더니 다시 이렇게 말했다.

 

"아니, 내가 아니라 엄마가...
엄마가 많이 힘들 거 같아.
지금도 이렇게 나랑 동생 때문에 힘든데...
일까지 하면..."



 아... 아들아...

너 자신보다 엄마를 먼저 생각해 주는구나.



  육아를 하다 보면 나 자신은 사라져 가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돌보지만, 정작 나는 돌봄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나는 교복을 입은 어린 내가 되어 집에 가는 꿈을 꾸곤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 "엄마 다녀왔어요."라 말하고, 집 안 가득한 된장찌개 냄새를 맡고, 주방에 있는 엄마의 등을 안으며 "엄마 오늘 학교에서..." 지금의 내 아이처럼 종알종알 수다를 늘어놓는다. 나도 누군가의 딸이기만 했던 그때, 누군가의 따뜻한 돌봄을 받았던 그때, 누군가가 정성껏 차린 밥을 먹었던 그때, 누군가가 등을 긁어주면 그렇게나 좋았던 그때, 꿈에서 나는 그때의 내가 된다.


 이제는 다시 그때의 내가 될 수 없다. 엄마가 되는 순간, 나는 이제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어떤 날엔 이 세상에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은 없다고, 나는 누군가를 돌보지만 날 돌봐주는 사람은 없다고 느껴져 우울함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런 내게 아들의 말은 너무 큰 위로였다. 나는 또 아무 말 못 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럴 땐 마스크가 있어 다행이다.) 아들은 멈췄던 노래를 다시 흥얼댔다. 나는 아들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엄마, 오늘은 내가 엄마를 위한 선물을 만들어올 테니까 기대해!"


 그래, 고마워. 그런데 네 자체가 그냥 엄마에겐 이미 선물이고 기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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