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일 시월드 이야기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송편을 빚고 윷놀이와 그네뛰기를 하던 기억은 아름다운 추억 속에 포장되어 기억이 희미해진 지 오래된 것 같다. 추석에 대한 뉴스는 어김없이 차례상 물가 이야기, 주부들의 명절 스트레스 이야가 차례로 나온다.
나의 시월드
나에게도 작년부터 시월드가 생겼다. 그러니깐 나는 며느리 그녀는 시어머니. 예전부터 ‘시(媤)'자 들어가는 사람과는 가능한 멀리 사는 게 좋다고 하는데, 의도치 않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 살고 있다. 내가 사는 곳과 시어머니가 사는 곳은 적어도 500 km가 떨어진, 아우토반을 열심히 달리면 5시간에서 6시간 정도 걸리는 독일 남부 작은 도시이다. 이러한 거리상의 이유로 자주 시댁에 가지는 못 하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꼭 찾아뵙는 시기가 있으니 바로, 크리스마스 연휴이다. 독일에서는 가족이 모이는 중요한 날은 보통 부활절, 크리스마스, 생일 정도인데, 그중에서도 크리스마스 연휴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날이다.
이곳에서도 분주하게 명절 전에 음식을 하는데 매번 느끼는 것은 한국의 주부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한국 음식은 일단 준비부터 복잡하다. 수 많은 야채와 고기 생선을 씻고 썰고 볶고 삶고 하야하는데, 독일의 음식은 이에 비하면 물에 손 한 방울 안 묻히는 느낌이랄까? 덕분에 나는 명절 때 음식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시댁에 처음 인사드리러 갔을 때, 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치우려 하자,나의 시어머니께서는 앉아 있으라며 놀라워하셨다. 독일에서는 며느리라도 ‘내 집에 온 손님’이고, 이러한 손님은 그 저 앉아서 함께 마시고 먹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하면 된다고 한다.
시댁에서의 아침 풍경은 시아버지께서는 신선하게 구워진 빵을 사러 나가시고, 어머니는 커피를 만들고 나는 옆에서 함께 이야기하며 테이블 세팅을 돕는다. 시조부모님 댁에 가도 마찬가지로 앉아서 대접을 받는다.
내가 운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독일의 문화일까?
선물의 무게
나에게도 명절 전 증후군이 생긴 것 같다. 그것은 명절 전 설물 고르는 일! 독일 사람들은 작은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친구나 지인의 생일이면 크고 좋은 선물, 그 사람이 준 것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서 선물을 고르고는 했는데, 독일은 좀 다른 것 같다. 독일 사람들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은 생각해 두었다가 1년 동안 모아 곱게 포장해서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준다. 요즘 젊은 독일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독일의 부모님 세대 이상은 그런 방식의 선물을 주신다.
이런 선물 문화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너무 작은 선물을 주면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무늬의 양말, 장갑, 책, 망원경 등의 주제를 불문하고 나의 취향을 존중한 다양한 선물을 받고 보니, 가격을 떠나 그 사람이 나를 기억했다는 생각과 마음이 느껴져 점점 이런 선물 문화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너무도 작아서 선물이라 하기에도 부끄러운 물건일지라도 받는 사람은 환한 미소로 기뻐하고 고마워한다. 이렇게 좋아해주니 나의 마음도 좋고 선물을 주고 받는 데에 부담이 줄어들었다.
나의 시월드 증후군
딱 지금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크리스마스까지 3달 정도 남았다. 슈퍼마켓에는 벌써 크리스마스 쿠키와 음료가 진열되어있는 것을 보면, 크리스마스 카운트 다운을 알리는 신호탄 같이 느껴지면서 머리가 살짝 아파온다. 독일 가족과 친지,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동생을 위해 카드 하나라도 써서 보낼 준비를 시작하기 때문인데, 한두 명이 아닌 다양한 사람의 취향을 고려해 선물을 고르는 일이 아직은 나에게 힘든 과제인듯하다.
명절 전 선물을 모으는 일만큼 시월드를 대하는 나의 다른 증후군은 바로 여행 가서 엽서 보내는 일이다. 독일 사람들이 종이랑 편지 좋아하는 것은 알지만 아직까지도 여행 가서 엽서를 써 보내는 일은 적응이 안 된다. 나의 신랑은 여행 가서 가족이나 생각나는 지인에게 엽서를 써서 보낸다. 시댁 가족이나 신랑 친구들도 엽서를 자주 보내기 때문에 멀리 있어 자주 못 봐도 소식을 알 수 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 가 보면 나도 초등학생 때까지 손편지와 엽서를 많이 쓰는 사람이었다. 부모님 생신이나 하고 싶은 어려운 말이 있으면 밤을 새워서 쓴 손편지를 등교 전 식탁에 두고 나오기도 했고, 방학에는 옆 동네 사는 친구에게 손편지 써서 우표 붙여 보내는 일을 열심히 했었다. 중학생이 되던 90년대 후반 즈음부터 컴퓨터를 즐겨 쓰다 보니 손편지 보다 이메일을 쓰게 되었고, 최근에는 SNS 메신저나 영상통화를 통해 바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니 편지는 커녕 이메일도 덜 쓰게 되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나의 시월드에 어떤 폭풍우나 관계의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디지털에 친숙한 내가 아날로그에 가까운 시월드에 적응하는 일은 바로 내 '손'에 달려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