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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Sep 19. 2022

나도 영어 유치원 다니고 싶어.

레테(레벨테스트) 전쟁

"엄마 나도 영어유치원 다니고싶어." 


난 큰 아이도 키우지만 둘째 아이도 있다. 우리 둘째는 기저귀를 막 뗀, 그리고 인지능력보다는 활동적인 아이로 딱 봐도 영어유치원 근처도 가면 안 될 것 같아 보이는 아이. 그리고 큰 아이가 그 유치원에 다니고 있어야 둘째도 형과 함께 다닐 수가 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애프터로도 '내 기준으로는' 만족스러웠다. 여섯 살은 그 정도의 학습도 차고 넘쳤다. 

"안돼, Harry, 너는 지금 유치원에 다니는 것이 좋을거야. 영어유치원은 영어 공부도 정말 많이하고, 놀이 시간도 없고, 공부만 해야된대."

"휴 그럼 나는 내년에 기린반(7세반)이나 가야겠네." 아이는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의 뒷모습이 신경쓰였다. 다시 불러세웠다.


"도대체 왜 영어 유치원에 가고 싶어?"


"나는 영어로 모든 말을 다 잘 하고싶어."


당황했다. 아이에게 정곡을 찔린 것만 같았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남편이 말했다. "보내주자. 저 정도로 이야기하면 안 보내주면 나중에 우리를 원망할 것 같아. 처음에 이 곳에 이사온 것도 아이 교육 때문 아니었어? 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거 하며 살려고 우리 돈 버는 거니까 비싸도 보내주자."


그 길로 영어유치원들에 전화를 돌렸다. 9월부터 예약했지만 연락은 11월에나 왔다. 30분 정도의 레벨테스트시간을 고려했을 때 내 차례가 이제서야 온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사이에 내가 지원한 테스트 정보가 누락된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내 인생 첫 아이 테스트였다. 세상에 이렇게 긴장되는 순간이 있었을까?

30분의 아이 레벨테스트를 치느라, 회사는 오후 반차를 썼다. 주차장엔 같이 온 친구들이 타고온 외제차들이 세워져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외제차와 명품가방보다 이 아이의 합격소식이 더 나에게 자랑스러울 것 같다는 웃픈 생각이 스쳤다.


시험이 끝나고, 아이가 나왔다. 

"시험 어땠어?"

"재밌었어"


그리고 하루, 이틀이 지나도 어학원(AKA 영유)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결국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선생님과 통화가 가능했다. "Harry는 일단 파닉스에서도 몇 글자를 틀렸어요. Ch 소리를 잘 구분하지 못하더라고요. (Christmas 같은 단어를 말하는 듯 했다) 그리고, 라이팅은 기본이 안 되어 있어요."

"기본이 안 되어있다는게 무슨 뜻이죠?"

"대문자로 시작하고, 마침표를 찍는 것이요."

"그래도 아이가 쓰긴 썼나보네요?"

"네 한 줄 썼습니다."

난 순간 오~ 감격했다. 우리아이가 그래도 한 줄이라도 쓸 수 있었구나.

"연습 안 시키셨나요? 적어도 세 줄은 써야 합격이에요."

"아,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2만원이나 응시료를 내고 30분간 시험을 쳐서 이런 피드백이라니.

나는 그래도 우리 아이가 많은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 복도에는 또래 친구들이 쓴 장문의 영작문이 자랑스럽게 게시되어 있었다. 어떤 글은 정말이지 너무 잘 써서, 한동안 그 친구가 쓴 문구들을 내가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세상에 내가 그 서초동 A영유에 갔더니 글짓기 실력이 정말 엄청난 것 같더라니까? 국어로도 그렇게는 못써." 주변 엄마들에게 이야기해줬다. 

게시된 글은 영상을 보지 않고 1주일 생활한 것에 대한 체험 수기를 쓰는 주제였는데, 그 친구가 영상물(영화/만화/드라마/패드 등)을 모두 합쳐서 vision이란 단어를 쓰면서 without vision, 어떤 식으로 정보를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썰을 풀고 있었다. 이거 진짜 7살이 할 수 있는 글이 맞는걸까. 역시 세상엔 천재가 참 많구나, 뛰어난 친구들이 참 많구나 생각했다. 이건 단순히 영어를 할 줄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한국 일반 유치원에 가도 저런 작문을 할 수 있는 친구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는데에 500원 정도는 걸 수 있다.


돌아와서 아이는 두어 번 자기가 시험친 영어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엄마, 나 다닐 수 있대?"

"아니, 너 다른 곳 다닐거야."

"왜? 나 못한대?"

"아니~ 엄마가 그 학원 마음에 안 들어서."

하얀 거짓말이었다. 어짜피 할거면 그 유명한 학원을 졸업하면 어떨까 생각한 내 얄랑한 마음이 있었다. 우리 아들이 거기서조차 잘하면 얼마나 자랑스러울지 상상하는 것도 가슴벅찬 상상이었다.


12월 즈음, A어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재시험을 다시 쳐보지 않겠냐는 거였다. 

"아직 원아모집이 덜 되었나봐요"

"아 네, 그렇습니다. 다시 시험치러 오시겠어요?"

"앗 저희 아이는 그 때 기본이 안 되어있다고 하셨었는데..."

"아, 시험 점수 자체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혹시 그 동안 연습 안하셨을까요?"

"아 연습 안(못)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알고봤더니, 영어유치원을 입학하기 위한 레벨테스트 과외가 성행하고 있었다. 물론 엄마표로도 할 수 있지만 다들 알지 않나. 아이들은 엄마 말을 잘 듣지 않는 다는 것을. 그래서 대문자, 마침표, 글 최소한 세 줄 이상 쓰기 등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계신 것이다. 숨고나, 자란다 등의 앱을 통해서도 구하고, 김선생 등의 과외플랫폼으로도 구하고, 지인 소개도 가능하다. 


이런 <시험을 위한 학습>이 6살에게 무슨 의미일까? 생각했는데 보내보니 알겠다.

그런 학부모의 <열정>을 테스트해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아이한테 그렇게 열정적으로 가르쳐볼 수 있을지, 영어유치원에 입학하고 나서도 끊임없이 나오는 숙제와 시험을 잘 쫓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지 그 학부모의 열정을 테스트 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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