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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일 Feb 18. 2022

어쩌다 속초

퇴직후 어떻게 살까 고민하다가...... 

그 날이 있은 지 벌써 일년이 다 되어 간다. 

3월 30일. 

내 생애, 그런 날이 있을 거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다. 

적어도 10년 동안은....



"난, 10년은 해볼거야. 그리고 나서 결정할거야." 

입에 달고 다닌 말은 아니지만 

누군가 내게 지금 하는 일이 어떠한지, 앞으로도 할 것인지를 물을 때 0.00000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뱉었던 말이다. 

이 말은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석사 지도교수님의 말씀 덕분인데, 학부 4학년 '생애주기의 사회학' 수업을 들었을 때의 일이다. 

"무슨 일이든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10년은 해야 해요." 라고 하셨었다. 

그때는 별 생각없이 

'그래~ 10년 정도면 이런저런 풍파를 다 겪고 나름의 노하우도 생기고 네트워크도 생기고 

역량이 강화되어서 무언가 혼자서도 설 힘이 생긴다는 뜻일거야. 나도 그래야지!' 했었지. 

그때는 내가 어떤 일을 할거란 계획이 희미했지만... 

(난 여전히 전문가!라는 말에는 좀 토를 달고 싶다)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밖으로 문열고 나오기까지 나름 우여곡절이 있었다. 

카톨릭 신자라면 철들고 누구나(그건 아닌가?) 한번즘 한다는 수도자의 길을 걷겠노라고 맘먹고 그 문을 두드리면 산 것도 3년이 넘는다. 

그 후에는 무엇을 하며 먹고 살지에 대한 고민이 크지는 않았다. 

내가 바란 건 세가지! 

1.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할 것  2. 조직은 작은 규모일 것  3. 지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다면 더 좋음. 


학부때부터 7년 정도 자원활동을 한 곳이 있었다. 

그 인연으로 이주민과 인권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관련 연구, 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그 만남을 확장해 갔다. 그러다 내가 사는 동네 가까이 있는 시민단체와 연결이 되어 그곳에서도 자원활동을 하다가 

물이 흐르듯 스르륵 활동가의 삶을 삶게 되었다. 

재미있고 즐거웠고 보람도 있었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최고의 기쁨이었다. 

그러다 힘들어졌고... 힘들었다. 

2년 정도 고민의 시간을 거쳐 결국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10년을 몇달 뺀 시점에 나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런 나에게 벗들은 "꼭 10년이어야 해요? 10년 가까이니 10년인셈 치죠!" "숫자가 중요해? ㅎㅎㅎㅎ" 

"그만큼 했으면 되었어요." "그때(교수님이 강조하던 그때)랑 지금이랑 달라." "그리고 그게 뭐 한 직장에서간? 같은 일을 하면 되는 것이지." "암튼... 너는.... ㅋㅋㅋㅋㅋ 몬살아." 했다. 

정든 단체, 정든 사람들, 정든 자리를 떠나 새 삶을 꾸리는 것을 나는 단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어떤 이처럼 '뼈를 묻겠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또 어떤 이처럼 '나는 언제까지만 일하고 옮길거야.' 라고 하지도 않았다. 


끝을 헤아리는 일이 내게는 참 어려웠다. 

삼십대를 옴팡 보낸 곳, 활동가로서의 꿈을 처음 가진 곳, 그 꿈을 펼치던 곳이었다. 

이 곳을 나가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내게 있을 수 없는 일. 

겁부터 났다. 

누구든 그렇겠지. 익숙함을 벗어나 낯섦을 겪어야 한다는 것. 

막연한 불안과 긴장이 감돌았는데... 실은 그래서 더 결정을 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무엇보다 활동가로서의 삶을 중단하는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견디기 어려웠다. 

내가 선택한 삶, 그게 제일 중요했다. 그걸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나는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죽을둥말둥하는 내게 주어진 한 달의 휴식, 

그 끝무렵에 부모님과 3박 4일의 제주 여행을 했고(베프가 호텔숙박권을 생일선물로 보내주었다. 조건은 부모님과 함께 하라는 것, 내가 힘든 시기를 보내는 동안 나보다 더 힘들었을 부모님에게 힐링타임을 선사하고, 화해도 하라는 의미)  나를 지키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 다른 무엇보다 내가 중요했다. 

이렇게 말하면 눈 휘둥그레질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10년 동안은 나는 나를 뒤로하고 살았었다. 

(실은 나 스스로 제일 놀랍다.) 


                                 동서울에서 속초로 가는 길, 들른 홍천휴게소에서 날짜를 찍다. 



퇴직한 다음날, 

좋아라 하는 곳에 와서 그곳의 주인 벗과 6개월전 그 지역에 정착한 벗과 술잔을 기울였다. 

공교롭게도 이 둘은 나의 전직장 동료이다. 

퇴직한 나를 격려하기 위한 조촐한 자리가 마련되었고 그간 지내온 이야기를 나누다 끝에 주인 벗이 내게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살거에요? 뭐하고 싶으세요?" 

"음.... 당장은 쉬어야죠. 제주도 좋아하니까 제주가서 한달살이 할까봐요." 

"네? 제주도요? 에이~ 요즘은 강원도죠. 여기서 살아보시는 건 어때요?" 

"잉? 여기? 강원도? 어머나!" 


그 대화가 꽃이 되어 

나는 

어쩌다 이곳에 살고 있다. 

속초! 


산과 호수, 바다가 있는 곳! 

한국전쟁을 겪고 수복한 곳!

실향민이 이주해 정착한 곳!

함흥냉면이 시작된 곳! 

자연 석호, 천혜의 자원 영랑호가 있는 곳! 

일출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곳! 


아, 그래 이곳이다. 

퇴사한지 3개월만, 지난 6월부터 여기에 살고 있다. (그 날, 대화를 나누던 그곳이 어쩌다 내 거처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 초년 기숙사 생활 이후에 처음으로 집을 떠나, 부모님 곁을 떠나 어쩌다 독립까지 하게 되었다. 지역살이를 꿈꾸는 청년이 많다지만 내가 그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람 일은 참으로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살아지고 있다. 살아내고 있다. 

몸도 마음도 다시 건강을 되찾았고, 세상에 둘도 없는 귀인도 만났다. (이 또한 삼십대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그때 나는 일과 연애를 했던 모양이다.) 

모든게 새롭고, 모든게 소중한 지금이다. 


속초에 산 지 벌써 9개월차다.

새 둥지에서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친교를 나누게 되었다. 

매일 같이 일출을 보고 하루를 시작하고, 바다를 바라보고 호수를 마주하며 산책을 한다. 

길을 가다 예쁜 것을 만나면 어김없이 사진으로 남기고, 하나씩 펼쳐 그림으로 옮겨 담는다. 

비로소 나만의 시간을 누리게 되었고 좋은 나의 벗들을 초대해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이제 여기에 차근차근 '어쩌다 속초!' 이야기를 적어볼까 한다. 


  




* 나를 속초로 이끌어준 벗들에게 감사하며....... 


- 2022. 2. 18. 금요일 해뜰 무렵... 속초에서.... 삼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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