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문이 쪽문이 아니야.
주말에 비가 온다더니, 오늘 아침 파랗고 쨍한 하늘을 보니 기분이 좋다. 비록 베란다 앞으로는 키 큰 아파트가 버티고 있어, 로망이던 푸르른 자연과 바로 마주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 나지막한 대덕산자락이 보인다. 쾌적하고, 깨끗하고, 새소리가 들리고, 보너스로 버스정류장이 가장 가까운 아담한 새 아파트에서 감사하며 살고 있다. 나는 임대아파트의 입주민이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양시와 서울의 상암동이 맞닿은 덕양구 끄트머리 한강변 덕은지구는 몇 브랜드 민간 아파트들이 규모 있게 배치되어 있다. 공원의 조경과 각 단지별 놀이터도 전통적인 것과 신문물 같은 다양한 놀이기구들로 채워져 있고 유치원이며 초등학교 중학교도 밝고 환한 어여쁜 색으로 단장되어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의 연령대가 낮아 유모차를 태우고 다니는 젊은 엄마들이 많고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종종 노래처럼 울려 퍼지는 활기찬 동네이다.
덕은지구 중에서 제일 먼저 입주가 시작되었던 아파트의 나는 바로 앞 단지가 빨리 차기를 기다렸다. 이삿짐차가 들어오고 껌껌했던 창에 하나씩 불이 켜질 때마다 반가웠고 마음속으로 환영했다. (23년 2월의 글, 사람들 덕분에)
나는 우리 집 바로 앞 민간아파트가 좋았다. 왜냐? 같은 보도블록 위를 함께 오고 가며 스칠 인연들이며 버스정류장에서 가장 많이 볼 이웃이니까! 그리고 펜스에 심긴 장미내음이 너무 좋았으므로...(23년 5월의 글, 장미펜스)
큰 규모답게 정문과 측문이 있지만 중간쯤 위치한 곳의 주민들은 막힌 길을 돌아서 오려면 불편하겠다 싶던 어느 날, 설치된 펜스 일부가 철거되는 것이 보였다. 아하! 다른 단지들처럼 쪽문을 만드는군! 별로 대단한 공사 같지 않았는데 몇 주나 진전이 없어 내가 더 안타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다가 깜짝 놀랐다. 보도블록을 향하는 지름길을 여는 쪽문이 아니라 각 아파트 동의 출입구에나 있을법한 비밀번호를 눌러야 여닫는 버튼식 유리문이 길거리(기존의 울타리 뜯긴 자리)에 세워지고 있었다. "아니, 이게 뭐람??"
어차피 정문과 측문이 뻥 뚫려있건만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이 길을 함께 이용하는 사람들은 임대 주민들 뿐인데... 쪽문으로 이유 없이 들락일까 봐? 이게 무슨????? 지름길로 너희 단지를 급히 갈 일은 없답니다. 관리비를 이렇게 사용하시는군요! 황당하고 씁쓸합니다요.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펜스 곁에 장미를 심은 것은 향을 나눔이 아니라 장미의 가시 때문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