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어린 시절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 아예 처음부터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도 좋다.'아홉 살 인생'이나 '벌새'와 같은 영화를 여러 편 재미있게 보았다. 영화를 고르다가 우연히 맛깔나게 연기하는 어린아이들이 나오면 그냥 그 영화로 정한 적이 많다.
재난 영화나 공포, 스릴러 혹은 좀비영화도 담담히 잘 본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의아해하지만 누구나 보이는 것, 짐작하는 것과 다른 면면이 있지 않나? 영화를 보다가 너무 무섭고 떨릴 때나 혹은 영화가 모두 끝난 후 스크린 밖 내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우리 집은 부서져있지 않고, 안팎으로 물이나 불로 쌓여있지도 않으며 문을 두드리는 좀비나 괴물이 없는 여전한 평온함에 안도한다. 그 순간이 나에게 매력이다. 영화에 몰입하지 않는 거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두근거림과 떨림과 스릴과 공포를 나는 스스로 감당할 만큼 조절해서 즐길 뿐이다.
나의 연애시절과 같은 시대의 멜로영화를 좋아한다. '그해 여름'과 '클래식'이 그렇다. 너무 슬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지만 슬퍼서 더 아름답다. 게다가 그 이야기는 내 것이 아닌 영화니까. 어쩌면 어렸을 적 '플란다스의 개'나 '인어공주를 읽고' 훌쩍이던 그 연장에 닿은 듯도 하다. 다만 치정 복수극은 싫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서.
내가 보기 힘들어하는 영화 중 하나는 안타깝게도 내용이 아니라 화면 때문인데, 너무 많이 움직이고 빠르게 돌아가는 것들이다. 고난도 촬영으로 많은 칭찬을 받는 것일수록 나에게는 고역이다. 몇 년 전, 남편이 함께 보길 원했던 '탑건'을 기어코 혼자 보고 오게 했다. 너무 어지럽다.
우리의 취향은 겹치기도 하고 (실화에 기반을 둔 다큐먼터리 류) 다르기도 해서, 한 명이 참고 같이 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둘 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사랑하는 옛날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하나 된다.
나의 영화취향이라고 제목은 달았으나 쓰고 보니 그냥 취향이 없는 느낌이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조그만 활자 속으로 빠져들기에 이제는 내 눈에 힘이 너무 딸려 쓸쓸하다. 영화가 있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