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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카치카 Nov 06. 2023

국도 끝의 호숫가

Maroño, Àlava

 



 줄 곳 서른둘까지 빠른 속도의 세상에서 살았다. 자라면서는 어떤 방법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지 몸으로 배워왔다. 더욱이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은 그런 우리의 삶의 방식을 더욱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도록 도왔다. 차로 집을 나설 땐 출발하기 전 애플리케이션을 켜서 어떤 길이 가장 빠른지 확인해 본다. 기술은 우리에게 묻지 않아도 빠른 길부터 안내한다.

기술도 시간이 돈인 세상인걸 아는지, 거리가 멀어 기름은 조금 더 쓰지만, 통행료를 내야 하지만 그래도 아마 인간은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를 좋아하리라고 생각하나 보다.

 

 오늘도 우리는 집을 나서기 전 네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곤 찬찬히 안내된 길을 둘러본다. 자동으로 안내되는 길이 고속도로라면 우린 국도의 길을 찾아 안내를 변경한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면 조금 구불구불하고 신호등이 많아 차를 세워야 할지라도, 시간이 더 걸리지만 그 대신 자그마한 마을도 들여다보며 그러다 가끔 아무 곳에나 내려 커피 한잔 마시는 여정이 더 즐겁기 때문이다.

 국도를 따라 집에서 차로 40분, 그 구불구불한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드넓은 초원과 산맥이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며칠 전에 흐린 날 처음 지난던 이곳을 지나다가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날씨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오늘의 맑은 하늘을 보고선 다시 찾아왔다.

 

 집을 나서기 전 가방에는 엄마가 한국에서 챙겨준 것들로 채워진 도시락이 담겨있다. 유부초밥, 무말랭이, 낙지젓. 후식으로 먹을 초코파이와 산이라 날씨가 추울지 모르니 따뜻한 물을 담은 보온병에 호박팥차 티백 하나. 그리고 지난번 프랑스여행에서 사 온 와인 한 병.


국도를 달리는 우리 앞으로는 쏟아지는 햇살아래에 펼쳐진 산과 들판, 가을의 옷을 입은 단풍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아름다워서 카메라를 들지만 그 모습이 렌즈 안에 모두 다 담길 리 없다. 그런 우리 앞으로는 자그마한 캠핑카가 달리고 있었는데, 산아래 구불거리는 길을 달달거리면서 달리는 캠핑카의 모습이 풍경과 너무 잘 어울려서 캠핑카와 길이 갈렸을 때는 내심 아쉬운 기분마저 들었다.


이제 마지막 비포장도록에 까지 들어섰다. 덜컹거리는 차에 몸을 흔들며 도로가 끝이 나는 곳까지 도달했다. 우리는 조용한 이 도로 끝 한켠에 차를 대놓고, 비포장도로를 밟는 자갈소리를 들으며 챙겨 온 음식을 챙겨 호숫가로 했다. 우리가 이곳에 까지 온 이유는 바로 이 국도 끝에 자리 잡은 이 호숫가 때문이다. 이곳을 발견한 건  어느날 침대에 누워서 구글 지도를 둘러보다 산자락에 둘러싸여 있는 파랗고 조그마한 호수가 있길래 확대를 해보다가 알게 되었다.지도에서 보이듯 의심할 일 없이 아름다울 수밖에.

그래서 주변엔 농가 이외엔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사람들 또한 없다.

하지만 우리처럼 이렇게 가끔씩 찾아들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호숫가에는 앞에는 바비큐 굴둑과 세 개의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다.


호수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테이블로 다가가 돗자리를 깔고, 싸 온 음식들을 하나씩 꺼낸다.

유부초밥은 달큼했고 가져온 내추럴와인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유부초밥을 한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으며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은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만화화되어 다가오기도 한다. 호수 건너 초록 들판 위에 너무 귀엽게 얹혀있는 집들, 그 주변으로  솜뭉치를 올려놓은 듯한 느낌의 양과 소. 유뷰초밥을 꿀꺽 삼킨 후 낙지젓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 너무 맛있네. 그리고 너무 평온하네.

우리는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가끔씩 울려오는 소의 울음소리와 워낭소리들을 듣고.

가끔씩 불어왔다 가는 바람을 느끼 고입 안에 가득 채워진 음식과 와인을 마음껏 느꼈다.

챙겨 온 호박팥차까지 야무지게 다 먹으니 코스요리를 먹은 느낌이다.


이렇게 좋은 풍경을, 단둘이서만 앉아서 마음껏 즐기다니. 어느 레스토랑도 이러한 경험은 주지 못할 것을 우리는 안다. 고속도로는 닿지 못하는 국도의 길 끝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숨겨져 있다. 한국인인 내가 이곳에서 이렇게 조금씩 느려져 가는 법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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