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jer 의 오렌지 나무 아래에서

Cadiz,Vejer

by 치카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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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이 아닌 공항은 오랜만이다.

짧은 한 시간 남짓의 국내 비행이지만, 이른 아침의 공항은 여전히 설렘이 일렁인다.

짧은 2박 3일의 여행이라 짐은 단촐하다. 가방 안에 든 것은 세안 도구, 잠옷, 챙겨 먹는 약이 전부이다.

Cadiz (카디즈)를 가기 위해 우리는 가까운 공항인 세비야로 향했고, 세비야에서는 차를 렌트하여 카디즈로 향했다.

이번 여행은 친구들을 만나는 목적이라, 가벼운 가방만큼이나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왔다.

남쪽은 북쪽과는 딴 세상이라는 말을 익히 들었지만 정말 눈앞에 펼쳐진 또다른 스페인의 풍경을 보니 마치 딴 나라로 온 여행 같은 느낌이었다.달리는 차 창밖으로 플라밍고가 보이니 말 다 했지.


도시의 건물들은 대게 하얗다. 너무 더워서 그런 건가? 집의 층고도 제법 다 높다. 더워서 그런 건가?

남쪽은 거의 와 본 적이 없으니 덥다는 남쪽의 그 더위도 짐작이 안 간다. 2월 초의 기온은 17-18도였는데 해가 있는 낮이면 사람들은 마치 여름처럼 반팔 반바지를 입고 걸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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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카디즈를 거닐 때 낯설고도 새로운 풍경들에 신이 나기도 했지만, 주말의 도시가 그렇듯 어디든 복작이는 사람들 덕에 나는 금세 피로에 치였다. 역시 점점 도시인의 삶에서 멀어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도 카디즈의 시장 구경은 후회하지 않는다. 북쭉엔 없는 새로운 해산물 구경, 남부의 햇살 아래의 사람들의 에너지로 가득 찬 광장들.해산물 시장 밖으로는 작은 상점들이 쭉 둘러 위치해있는데, 14년 전 매주 토요일이면 치즈를 사러 오던 청년이 14년 만에 다시 돌아가 치즈를 주문하자 그를 기억하며 주인 아저씨는 인심 좋게 더 치즈를 담아준다. 여기저기 시끌벅쩍하고 정신이 없지만 햇살만큼 남부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가 공기에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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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우리는 친구 추천을 따라 카디즈 근교의 conil(작은 어부 마을)과 vejer를 방문했다.

해변가의 좋은 레스토랑들도 추천해 줬지만 나에겐 전통 taberna에 가서 바를 기웃거리며 이것저것 작은 타파스를 시켜 먹는 게 내 취향에 가깝다.conil의 하얀 골목 사이의 오래되어 보이는 타베르나를 골라서 들어갔다. 신기해 보이는 메뉴는 뭐든 다 시켜볼 수 있다. 와인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남부의 튀김 타파스 앞에서는 맥주나 rebujito *를 지나칠 수 없다.


*rebujito는 남부 지방 jerez의 와인 manzailla에 탄산수를 섞은 칵테일. 남부의 여름의 축제 기간이라면 빠질 수 없는 음료이다.



남부에서는 생선 알을 먹는다. 내가 사는 북쪽에서는 생선 알로 만든 요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알탕을 좋아하는 한국인은 입안에서 톡톡 씹히는 알을 우물거리며


"아니 이 맛있는 걸 왜 북쪽에선 안 먹는 거야"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후에 Jesus에게 물어보니 북쪽은 생선 알을 버린다고...(Jesus는 백과사전처럼 뭐든 물어보면 다 대답해 주는 동네 단골 와인바의 주인아저씨이다)

카디즈는 작은 민물새우로 만든 전 tortilla de camarones가 특히나 유명하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감자샐러드 patatas aliñadas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냥 겉으로만 보면 감자샐러드인데, 먹었을 때는 정말 물개 박수가 절로 나왔다. 붉은 양파와 감자, 올리브오일과 파슬리, 그리고 상큼한 맛을 내는 식초 정도가 들어갔을 것 같은데 이게 너무너무 맛있는 것이다. 초민이도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남부의 타파스 중에 하나라고 동의했다.

돌아와서도 두고두고 생각이 났는데, 어쩌면 상큼한 감자샐러드가 맛있었던 이유는 남부의 햇살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으슬한 이 빌바오에서 카디즈의 감자 샐러드를 먹는다면 그때 그 맛이 날까. 조금 더 날이 따듯해지기를 기다렸다가 한번 만들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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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게 타파스로 배를 채우고 30분가량의 황량한 길을 따라 우리는 Vejer로 향했다.

차로 한참을 올라와야 했을 정도로 고지대에 위치했는데, 생각보다 큰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림 같은 새하얀 집들과 좁은 비탈의 골목들. 하얀색 페인트 집은 잘 더러워지는데 매년 색을 다시 칠하나.

아니면 남부에서만 쓰는 특수 페인트가 있는 것일까라고 생각하며 걷다보니 마을의 중앙에 아담한 분수 광장과 함께 바의 테라스들이 줄지어있다.

남부답게 거리의 가로수는 오렌지 나무이다. 오렌지 나무 아래에 테이블이라니. 마치 영화의 스크린을 보는 것처럼 동화 같은 기분이 들었다.오렌지 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은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웃으며 와인을 비워나갔다.

우리도 그 중 한 테이블에 앉았다. 상큼한 띤또콘리몬을 시켜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오렌지 나무에서 오렌지가 턱하니 바닥에 떨어졌던 순간이다. 그래 그럴 수 있겠다. 누군가 따지 않으면 떨어질 테나 말이다. 한참을 오렌지 나무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또 사람들을 구경했다. 오렌지 나무 아래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파랗고 푸르고 상큼했다.미래의 나의 이상의 집 마당에는 올리브나무 아래 테이블이 있어야 했는데, 오렌지 나무도 괜찮겠다 싶었다.


카디즈마냥 사람이 많지 않아 좋았다. 적당히 사람들의 소음이 우리를 외롭지 않게 했지만 걷다가 벤치에 누워 잠깐의 낮잠을 자도 될 정도로 한적했다. 경사진 언덕을 오르락 내리락해도 생각보다 덜 피로했다. 여백이 있는 순간들은 어느새 내 일상에서 필수 존재가 된 것 같다.

늘 그렇듯 해지는 명소가 있을까 싶어 빵집 아주머니에게 물어 추천을 받았다. 자고로 명소는 지역 사람들에게 물어야한다.역시나 지역 주민의 추천은 늘 옳다. 한눈에 아름다운 석양과 경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모히토를 마셨다.나무 한 구루 아래 놓인 테이블은 내 마음을 몽글하게 만드는 풍경이다.

아무 기대도, 정보도 없이 온 베헤르에 나는 한동안 취해있었다. 여긴 다시 돌아와야겠다면서 여행에서 돌아오고나서도 며칠은 이야기했다.구글맵을 둘러보니 내 취향의 호텔들도 가득한 곳이었다. 아 알았다면 그곳에서 1박을 했을터인데...


다음에 가면 우리 테라스가 있는 숙소를 찾아서 그냥 그 숙소 테라스에서 하루종일 경치도 구경하고 석양도 구경하는거야.그러다 배고프면 내려가서 오렌지 나무 아래에서 저녁을 먹는 거지.

밤의 풍경은 또 다르겠지? 해가 지면 골목들에는 오렌지 같은 가로수 등이 켜져 있을 거야.(상상)

그럼 그 아래에서 여름의 바람을 맞으며 와인을 마시자!!

기분 좋은 여행은 다음 여행을 상상하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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