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와 소망

by 고아함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하얀 눈이 펑펑 내렸다. 컹컹 개 짖는 소리와 까치소리가 정적을 깨는 한적한 마을, 쌓인 눈 위를 걷노라면 뽀드득 소리와 함께 발이 푹푹 빠지던 날, 나는 친구들과 신나게 눈을 굴렸다. 커다랗게 둥글둥글해진 눈덩이를 여기저기 모아 두고 눈사람도 만들어 나뭇가지로 눈, 코, 입을 꾸미고 헌 모자도 씌웠다.


그때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까만 교복의 중·고등학생 언니 오빠들

“눈 많이 뭉쳐 놓았네. 우리 이걸로 에스키모인 집 만들자!”

그래서 우린

“좋아요!”

하고 더 많은 눈을 뭉치고 굴렸다. 눈덩이는 커졌다. 언니 오빠들은 빠른 손놀림으로 신명 나게 그 눈덩이들을 쌓아 올려붙였고 텔레비전에서 본 에스키모인 집처럼 비슷하게 이글루를 었다. 그리곤 저녁이 되면 이곳에서 크리스마스 축제를 열자며 그때 모이라고 했다.

시내 거리엔 캐럴송이 흥겹게 울려 퍼졌다.

"징글벨 징글벨-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

문구점엔 평소 볼 수 없었던 트리와 예수님 탄생 그림 카드들이 반짝였다. 친구가 좋아할 것 같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정성스럽게 골라 서로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눴다.

드디어 저녁이 되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마을은 새하얀 눈으로 덮여 은은한 신비로움마저 들었다. 대문 벨이 요란하게 울리고 언니 오빠들이 시끌벅적 외쳤다. 크리스마스 축제를 시작할테니 빨리 이글루로 오라고.

이내 우리 꼬마들과 중․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이 촛불을 들고 이글루로 모였다. 막대 초에 불을 켜 눈덩이 여러 군데 꽂고 흐릿하고 벌겋게 보이는 얼굴들을 보며 서로 웃었다. 그림을 잘 그리던 우리 동네 화가 오빠, 딱지치기하다 울 오빠와 싸운 옆집 오빠 얼굴도 보였다. 축제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한동안 떠들다 한 오빠가 기타를 치면서 축제는 시작되었다, 그 기타 소리에 맞춰 신나게 우리는 언니 오빠들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기타는 창창, 어깨는 들썩들썩, 엉덩이는 움찔움찔, 흔들고 비비며 크리스마스이브 축제는 그렇게 무르익어 갔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이글루 덕분에, 그리고 신나게 어울려 춤추고 논 덕분에 그 해 크리스마스는 춥지 않았다. 더구나 축제를 끝내며 언니 오빠들이 안겨 준 학용품과 과자 선물은 크리스마스가 기쁜 날이라는 더 느끼게 다.


예수님을 믿건 안 믿건, 교회를 다니건 안 다니건 크리스마스는 평상시와 다르게 즐겁게 보내는 날이었고 서로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는 훈훈한 날이었다. 머리맡에 용돈이 두둑이 든 양말이나 장난감이 없어도 행복한 크리스마스였다.

축제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선 곤하게 잠들었다. 꿈나라 여행을 하며 꿀잠을 자는데, 어느 순간 꿈인 듯 생시인 듯 아련하게 들리는 찬송가 소리.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품에 안겨서 감사 기도드릴 때, 아기 나셨도다. 아~기 나셨도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아라!~”


크리스마스이브면 어김없이 집집을 돌던 ‘새벽송’ 팀이 것이다.

엄마는 화들짝 놀라 잠자리에서 일어났고 준비해 둔 간식거리를 챙겨 대문으로 나갔다. 나도 덩달아 따라나섰는데 , 그때 올려다본 새벽하늘, 어쩜 그리 별이 맑고 초롱한가!

엄마는 손전등을 비추며 대문 빗장을 열었고 그 불빛 사이로 상긋 웃는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오빠 언니들을 보았다. 웃음과 미소는 어찌나 착해 보이는지 어린 마음에 우리 집을 축복하러 온 천사라고 생각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메리 크리스마스! 복 많이 받으세요!”


합창 축언이 찬 공기에 하얀 입김으로 피어올랐고 엄마는 감사하다고 화답하며 간식거리를 정성껏 건넸다.

돌이켜 보면 순수하고 소박한 크리스마스였다.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 없이, 꾸밈과 거짓도 없이 수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살던 시절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정을 나누고 풍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물질을 나눴다. 그러면서도 행복해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코로나 19 확산으로 연일 마스크를 쓰고 답답하게 근심 걱정에 휩싸인 나날을 보내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희망을 품고 다시 평온이 오길 모두 소망하기에 크리스마스트리는 여기저기서 불빛을 반짝인다.

아파트 진입로 화단에도 작은 소나무들이 빨강, 파랑, 초록으로 빛을 깜박이고 석등은 금빛과 은색 빛을 조화롭게 발하며 은은함과 화려함을 드러낸다. 커다란 수레 화분과 광장의 작은 나무들도 어둠 속에서 꽃처럼 피었다 지기를 반복. 눈이라도 오면 더욱 멋진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다.


죄와 사망에서 인류를 구하기 위해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다. 기뻐하고 찬송하며 경배를 드려야 하건만, 사람은 항상 현실적인 문제에 마음 뺏겨 근심 걱정 염려로 살아간다. 그리고 내세가 아닌 현재 이 세상에서 안락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어 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인생에 불어닥친 파고 앞에서, 힘겹고 어려운 고통을 예수를 의지하여 힘을 내고 좋은 날을 소망하며 살라고 위로하는 같다.

어느 누구도 지금까지 살아오며 순탄한 대로만 걷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은 일 나쁜 일 순환하는 가운데 숨 쉴만한 날도 있었고, 고통 속에 속절없이 눈물 흘리며 산 날도 있을 것이다.

우울하지만 크리스마스와 함께 쉼과 평화가 마음에 임하여 희망 잃지 않고 모두 살아가길 소망한.

*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