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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Oct 26. 2022

어느 날 나와 마주한다면,

토요 글쓰기 모임 [끄적이는 소모임] #9

22.10.17




어느 날 나와 마주한다면 난 어떤 마음일까?


고등학생 때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친구는 어느 날 밤 가위에 눌렸는데,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의 신체 옆으로 누가 옆에서 스르르 나타났다고 했다. 눈동자를 힘겹게 돌려보니 바로 자기 자신과 똑 닮은 사람이 옆에서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친구는 끔찍한 악몽이라고 말했다. 나와 똑 닮은 사람이 어디선가 나타난다면 나는 무서워할까, 신기해할까? 분명 재밌고 신기한 상황일 것 같은데, 귀신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이 분위기를 잡고 말했던 친구가 생각이 나, 어쩐지 나도 꽤 소름 돋을 것 같다. 나랑 눈코입이 똑같은, 나랑 생각도 행동도 똑같은, 그런 말도 안 되는 무언가가 나타난다면.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또 다른 나와 마주하는 상황에 대해 상상해 보지 않았을까? 나는 사실 예전에 자주 했던 말이 있다. 나는 나 같은 사람이랑 친구가 되고 싶다고.

그 당시에는 나 스스로 나 자신의 성격을 칭찬하며 했던 말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나 스스로 배려심이 깊고 주위를 잘 챙긴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조금씩 달랐던 타인에게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성향도 성격도 비슷한 나 같은 사람이랑만 친구 하고 싶다는 생각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귀여운 나르시시즘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지금도 어디에는 또 다른 내가 있길 바란다. 또 다른 내가 나타나면 나는 위로를 받을 것 같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로도 마음속 깊게 따듯한 위로를 받을 것 같다. 피로 이어진 사람들과도 이해하지 못하고 사는 이 생소한 세상에서, 수많은 다양성들이 서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이 번잡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와 같아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위로해 줄 사람이 이 지구상에 존재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살아온 ‘나’라는 사람의 생각을 거스르는 일은 아주 힘겨운 일이다. 최근에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다 느꼈다. 두 분의 헌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인데 나의 행복을 바라지만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가끔 보면 조금은 이 다름이 매섭다.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르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함께 지내왔던 이들의 이면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되거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눈에 보일 때면 무심코 놀래버린다. 무척 당연한 건데도 그렇다. 그렇다면 내가 접하지도 못한 수많은 세상의 사람들은 나와 얼마나 다른 것이며, 나와 얼마나 서롤 이해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에 미치면 삶이라는 게 참 피곤하구나 싶다. 


그럼에도 분명 다르기 때문에 좋은 점들도 많을 것이다.

의견이 다르기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느낌이 다르기에 함께하는 것이고, 가치관이 다르기에 배워나가는 것이니까.




사실 이 주제를 음미하기엔 너무 피곤한 일상을 보냈다. 밤에 글이 가장 잘 써지는데 밤만 되면 바로 자기 바빴다. 그래서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짧은 글 토막 꺼내 두는 것을 의의로 둬본다. 


덧붙여서 최근의 나는 매일같이 또 다른 내가 한 명만이라도 더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인데, 특히 아침 출근길에 더 그렇다. 월수금은 그 친구가, 화목은 내가 회사에 출근하고 싶다. 회사 가는 게 이틀뿐이라면 영혼을 바쳐서라도 나라는 사람 한 명을 더 찾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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