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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Mar 16. 2020

글이 내 가슴을 더 뛰게 못한다면, 그때 한 번 죽겠지

[사적인 리뷰] 방탄소년단 'Black Swan'

방탄소년단이 올해 'Map of the Soul; 7'이란 앨범을 발매하며 본격적인 컴백을 하기에 앞서, 두 가지 곡을 공개했다. 'Interlude; Shadow'와 'Black Swan'. 이 두 곡을 통해 방탄소년단이 이번 앨범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갈망이 사회적 성공을 맞닥뜨린 순간 권태로움으로 탈바꿈되었을 때, 그 순간 예술뿐만 아닌 나 자신을 모두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


이들의 발자취를 음미하고 지켜봐온 한 사람의 팬으로서, 끊임없이 예술가의 길을 멈추고 싶지 않은 한 사람의 지망생으로서 이번 앨범, 특히 'Black Swan'을 듣고 이 이야기는 꼭 남기고 싶다.


a dancer dies twice —
once when they stop dancing, and this first death is the more painful.

- martha graham -


“무용수는 두 번 죽는다. 첫 번째 죽음은 춤을 그만 추는 순간이며 이보다 고통스러운 죽음은 없다.”

 

이 문구는 방탄소년단의 ‘Black Swan’이란 곡의 트레일러 영상을 여는 첫 장면으로 쓰임과 동시에 앞서 공개한 두 가지 곡의 주제를 관통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예술가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 생명의 끝도 아닌, 사람들에게 잊히는 순간이나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순간도 아닌, 내가 내 예술행위에 더 이상 크게 감흥하지 못할 때가 가장 두렵다는 것. 즉, 방탄소년단은 현재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들의 음악이 더 이상 그들 스스로에게 감동을 줄 수 없게 되는 예술가로서의 죽음에 당면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죽음의 순간이 다른 때도 아닌 지금 당장 그들에게 닥친 것을 가장 염려하고 있다.


세상 모든 인간들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존재한다. 그 대상이 이성일 수도, 동성일 수도, 동물일 수도, 물건일 수도, 세상에 존재하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추상의 무엇일 수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꿈꿔 볼 수 있는 추상의 무엇일 수도,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사랑에 빠진다. 평소엔 숨을 쉬듯 자연스러운 심장박동 소리가 고막을 세게 때리기 시작한다. 의식하지 않으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심장의 운동이 가슴에서 시작되어 온몸의 마디마디를 지나 몸의 끝과 끝을 향해 내달리더니 다시 가슴을 향해 되돌아오는 과정을 사무치게 느낀다. 사랑하는 것 앞에만 서면 그렇다. 사랑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실감한다. 이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다. 이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 안달이 나고, 동시에 사랑을 받고 싶어 갈증이 난다.


사랑을 위해 산다.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사랑이 없으면 죽을 사람처럼, 사랑하는 사랑을 곁에 두기 위해 노력한다. 사랑하는 사랑을 곁에 두기에 모자람이 없이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점차 사랑에 걸맞은 사람이 된다. 손에 쥐다 못해 마음대로 굴릴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다. 이 사랑을 만나 이룰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사람이 된다.


그때 추락은 시작된다.


이게 나를 더 못 울린다면, 내 가슴을 더 떨리게 못한다면
어쩜 이렇게 한 번 죽겠지 아마
But what if that moment's right now? (하지만 그 순간이 지금 당장이라면?)


모든 사랑에는 권태기가 닥치기 마련이다. 사랑했던 익숙함이 지루함이 되고, 그 지루함에 질린다. 질리는 것은 보기도, 듣기도, 느끼기도 싫어진다. 똑같이 뛰는 심장이지만 가슴에서도 박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근처에만 서면 서둘러 도망가고 싶어진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존재라는 생각에 우선순위에서 미루고 미루다 벼랑 끝까지 미뤄버리게 될 것이다. 끝내 그 사랑을, 사랑이라고 불렀던 그를, 그것을 손에서, 가슴에서 놓고 만다.


사랑에 대한 이 헌신적인 열정과 냉정한 외면은 사랑하는 대상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다. 사랑은 그토록 헤픈 것이고, 또한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무엇에든, 누구에든 세상 그 무엇과 누구보다도 사랑하기로 맹세했을 때 그 끝은 정해져 있다. 관계의 종말이자 곧 죽음으로.


그가, 그것이 없는 나. 그로 인해 태어난 삶이 나로 인해 끝났을 때. 그것은 또 하나의 죽음이다.


귓가엔 느린 심장소리만 bump bump bump
벗어날래도 그 입속으로 jump jump jump
어떤 노래도 와닿지 못해 소리 없는 소릴 질러


예술을 만난 순간을 기억한다. 잠에서 깨어나 꾸었던 꿈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어린 마음에 예뻐서 산 수첩과 생일선물로 받은 연필로 서둘러 도망가는 꿈을 글자로 잡아냈다. 꿈에서 나오지도 않은 장면들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생각을 거치지 않은 단어들이 노트 위를 춤췄다. 연필을 받친 중지 손가락이 아파왔지만 지금 당장 이 글을 쓰지 않아서 꿈을 놓치면 내 가슴이 너무 아플 거라 확신해 연필을 놓칠 수 없었다. 그렇게 완성된 소설은 형편없지만 그때의 그 마음을 잊지 못한다.


그때만큼 열정적으로 글을 쓴 적이 없었다. 나는 그때가 나의 예술을 만난 순간이라 생각한다.


그때부터 줄곧 내 안에서는 소설가의 꿈이 키워졌다. 생각나는 문장들과 떠오르는 장면들, 함께 살아가고 싶은 인물들과 그들이 마주할 수많은 흥미로운 사건들을 적어내렸다. 언젠가 꼭 소설을 완성하고 싶다는 열망만으로 나의 이야기들을 수집했다. 그렇게 쌓인 소설의 소재들만 셀 수 없이 많다. 얼른 소설을 하나라도 완성하고 싶다.


일단 학교부터 다녀오고. 일단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조금 놀고, 씻고 난 다음에, 시험공부부터, 급한 게 우선이니까, 대학 입시는 치르고 봐야지, 과제가 먼저야, 알바도 가야지.


그럼 난 글을 언제 써?


바쁘다는 이유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로만 모아놨었다. '나중에' 시간이 되어 드디어 글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되면 '언젠가' 이 메모들을 가지고 멋진 소설을 쓸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렇게 시간이 난 순간, 휴학을 하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자고 마음을 먹은 순간 내게 글은 부담이 되었다. 연재할 기회가 찾아와 열심히 글을 쓰던 적도 잠시뿐이었다. 매주 글을 연재하기 위해 마감일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글을 쓰면 조금씩 나아질 줄 알았다. 내 몸이 저절로 글을 쓰게 되는 바이오리듬이라도 생길 거라고 기대했다. 결국 좋아서 쓰던 글이 억지로 써야 하는 글이 됐고, 쓰고 싶지 않아도 쓸 수밖에 없는 글을 써야만 했다.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절대 놓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던 글이었다. 이렇게 너무 당연하게 최우선에서 미뤄내고 억지로 써버려 애증하기까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 그렇게 생각했다.


천천히 난 눈을 떠, 여긴 나의 작업실 내 스튜디오
거센 파도 캄캄하게 나를 스쳐도
절대 끌려가지 않을 거야 다시 또 Inside I saw myself


진짜 예술가도 아니면서 유난도 잘 떤다. 하지만 예술은 대단한 게 아니다. 또 다른 나를 나만의 방식으로 창조해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예술이 하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없이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 글이 쓰고 싶다. 내가 내뱉는 단어들의 조합으로 내가 그리고 싶은 세상을 세상에게 보이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내 소설 속 인물들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삶을 살게 하고 싶다.


그렇기에 더는 내 삶 그 자체인 글이라는 존재를 내 안에서 몰아내고 싶지 않다. 가장 최우선의 사랑이자 가장 소중한 삶이기에 그 누구보다 진심을 다해 하나하나 소설들을 완성하고 싶다. 나의 창작 행위가, 나의 예술이 더 이상 내 가슴을 뛰게 하지 못한다면 나는 죽어도 좋다. 어쩌면 무용수는 춤을 그만 추는 순간, 그 순간만큼은 살고 싶지 않는다는 다짐으로 춤을 출 것이다. 어쩌면 그 무용수는 춤을 그만 추게 되는 순간, 그때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칭하고 싶지 않다.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가가 되고 싶다. 되어야 한다. 되고 말 것이다. 내 창작물이 제대로 된 예술작품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나의 움직임이 예술적 행위로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내가 선택한 단어 하나하나로 하여금 예술적 영감을 퍼뜨릴 수 있기를.


나의 열정이 언제나 헌신적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한 나의 권태가 언제고 여전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글이 쓰기 싫어질 정도로 답답할 때가 있을 것이고, 때로는 글을 쓰지 않으면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날이 있을 것이다. 글이 내 가슴을 뛰게 하지 못하는 순간, 그때 한 번 죽더라도 글 속에서 또다시 나를 살려낼 것이다. 그것이 내가 예술을 하는 이유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나를 살려낼 의무가 있다.


창작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내 안에서 숨 쉬는 무언가를 창조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부디 대단하진 않더라도 떳떳한 예술가가 되기를.


귓가엔 빠른 심장소리만 bump bump bump
두 눈을 뜨고 나의 숲으로 jump jump jump
그 무엇도 날 삼킬 수 없어. 힘껏 나는 소릴 질러


살아있는 한 끝을 알 수 없는 예술가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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