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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Nov 06. 2019

<조커>를 보고 운 이유; 꿈의 추락, 날아오른 절망

[사적인 리뷰] 영화 <조커, JOKER> 2019

영화 <조커>의 내용이 많이 담길 것입니다. 스포일러에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로 결코 전문성을 띠지 않습니다. 다만 제 감상과 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분들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복학할 때가 되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긴 했나보다. 다른 영화도 아니고 <조커>를 보다가 울었다니, 그것도 펑펑. 집에 와서까지 꺼이꺼이 운 적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이후로 또 오랜만이다. 무슨 범죄영화랑 휴먼다큐를 비교하다니 너무 극단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정도로 많이 울었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이 영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여전히 하고 있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와 작품 자체의 작품성을 극찬하는 사람들, 그 반대편에서 범죄를 조장한다며, 악역에게 너무 자세하고 깊은 서사를 부여한다며 비판하는 사람들. 그럭저럭 재밌었다는 사람들과 그냥저냥 재미 없었다는 사람들 등등. 사실 내가 느끼기엔 마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썩 끌리지 않는 케이퍼 무비일 뿐이지만, 마블 영화에 조금 지친 사람들에겐 꽤 신선한 히어로 무비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 내가 이 영화를 첫 번째 봤던 개봉일 저녁, 나는 이 영화를 이렇게 받아들였다.


'마블에선 상상도 못할, 아니 안 할 히어로물'


단지 엔딩에서 광대가면을 쓴 군중들에 둘러싸인 조커가 왕처럼 군림하듯 부서진 경찰차 위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직접적으로 극중 인물이 신문에 실린 조커의 몽타주를 가리키며 "이 사람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있어) 영웅이야"라고 말한 이유, 자신을 따라 광대가면을 쓴 사람들을 바라보며 주인공 아서가 행복하게 웃음 짓던 이유, 히어로가 수트를 맞춰 입듯 머리를 염색하고 화장을 하고 컬러정장을 갖춰 입은 어깨가 더 없이 넓어만 보이던 그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에 꽤 아프게 공감했을 때, 두 번, 세 번 반복해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몇 번이고 곱씹었을 때 나는 울었다.


그의 비극이 너무 웃겨서. 너무 웃어서 맺힌 눈물을 힘 없이 떨어뜨렸다.

또한 그의 희극이 너무 슬퍼서. 너무 슬퍼서 참아보려 애를 써도 눈물이 하염없이 났다.


출처. IMDB


고작 영화 한 편에 뭘 그리 유난을 떠는 걸까. 뭐가 그렇게 심각할까, 나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범죄자에게 너무 자세하고 깊은 서사를 부여한다'는 점. 그래서 극중 악역이자 범죄자에게 지나친 감정이입을 조장한다는 점은 지적받아 마땅하긴 하다. 이 점 때문에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모방범죄를 우려하는 것일 테고. 영화 속에서도 고담의 시민들이 광대가면을 쓰고 횃불을 들어 거리로 나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려진 이유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나 또한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서 플렉이자 조커라는 인물에게 지나친 감정이입을 (당)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니 울었겠지. 그러나 나의 눈물은 모든 걸 다 엎어버리고 싶다는 갈망도, 극복할 수 없는 계층에 대한 반항심도 원인이 되지 않는다.


꿈을 향해 내가 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던 보잘 것 없는 삶. 내 최선의 삶이 고작 누군가의 농담따먹기(조크)로 전락하고 말았을 때의 절망감. 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던 꿈이 어린아이 우스갯소리로 짓밟혀졌을 때의 수치심을 공감했다. 아니, 통감했다.


희극은 관객을 웃기기 위한 장르이면서 참 잔인한 장르이기도 하다. 관객을 웃기기 가장 손쉬운 방법이 무엇일까? 내가 망가지면 된다. 아니면 상대를 비하하거나.


한 코미디 무대가 있다.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 "나는 가수가 꿈이에요!"라며 희망찬 얼굴로 말한다. 그 옆에선 외모가 뛰어나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멋있어, 예뻐, 사랑스러워!"라며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말한다. 이들 주위에 이들을 향해 현실을 자각시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는 말도 아까워 한껏 찌푸린 인상으로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한 무대에 있다. 과연 이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 입장에서 단 한 번도 웃지 않으리라 자신할 수 있을까?


아서에겐 자신만의 유머코드가 있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독특한 유머코드를 갖고 있지만 언젠가 자신은 자신의 유머를 가득 쓴 노트를 쥐고 늘 동경하던 토크쇼 진행자의 옆에서 당당하게 코미디언으로서 세상에 데뷔하길 바라는 사람이다. 사실 그에겐 누구를 웃기느냐가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개그를 들려줬다는 것, 내게 이리 재미난 유머를 사람들에게도 뽐냈다는 것, 지금은 한낱 일용직 광대일 뿐이지만 언젠가 꼭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는 게 아서의 삶의 중심이자 존재의 의미다. 나아가 날라리 청소년들에게 일방적인 구타를 당할지언정 자신의 중심만은 꼭 감싸 지키던 것은 그에게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 있다는 것이다.


출처. IMDB


그런 자존심이 짓밟혔다.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의 우상이자 생의 목표였던 토크쇼 진행자 머레이에게 말이다. 코미디 무대에서 개그를 하는 대신 내내 우스꽝스럽게도 웃음을 멈추지 못하던 아서의 영상을 TV에 내보내 관객과 함께 비웃고, 사람들이 아서를 재밌어하자 대놓고 조롱할 작정으로 섭외까지 했다. 함께 마주 보고 쇼를 진행할 때는 아서에게 개그를 해보라고 하더니 아서가 입을 열 때마다 깐족대며 그를 깎아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 "당신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끼나? 당신은 아무도 아니야."라며 쐐기를 박았을 때, 아서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머레이의 이마에 총구를 겨눴다.


그런 아서를, 조커를 사람들은 영웅으로 떠받들었다. 아서가 연행되는 경찰차를 전복시키고, 아서의 몸을 빼내어 군중의 앞에 데뷔시켰다. 광대분장을 한 그를 따라 광대가면을 쓴 대중들은 소수의 특권층들의 아래에서 사회를 돌아가게 만드는 부속품으로 살고 싶지 않아 일상을 벗어난 사람들이다. 그들 모두 가슴 속에 품은 자신들만의 꿈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하루만이라도 낮잠을 잤으면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평소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사람을 가면 뒤에 숨어 정말 죽이고자 할 것이며, 다른 어떤 이는 얼굴을 가린 김에 부끄러웠던 버스킹을 할 지도 모른다. 그런 사소한 꿈을, 남몰래 꿈을 꾸던 사람들이 있다. 매일매일 살기 바빠, 살아남기 급급해 생을 보내던 사람들이 있다. 그런 그들에게 조커란 존재는 바로 그들의 익명성을 보장해주는 가면이자 일상으로부터의 자유를 실현시켜주는 구원자였을 것이다.


내가 고담시에 살았다면 과연 나는 광대가면을 쓰지 않았을까?

내가 아서였다면 과연 나는 머레이의 앞에서 어떻게 반응했을까?


아서는 분명한 범죄자다.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불필요한 범죄자. 그러나 그런 극단적인 면이 아닌 인간적인 면, 내 옆집에 사는 이웃이 이처럼 개그맨이 되는 꿈을 간직하며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함께 살아가는 입장에서 생각이 정말 많아졌다. 그리고 또 많이 아팠다.


그처럼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자존심과 같은 꿈이 있고, 그럼에도 아무 것도 이뤄낸 것이 없어 타인의 앞에서 내 꿈을 당당히 드러낼 수 없다. 내겐 너무 소중한 꿈이기에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도 꿈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루리라 생각한다. 막연한 기대이자 희망이지만 그래도 꿈을 이루는 꿈을 매일 꾸어본다. 나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 꿈을 비웃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누구라도, 설령 내가 인생의 목표로 삼은 우상이라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날고 싶은 마음에 아무리 날갯짓을 해대도 날 수 없는 오리는 발을 열심히 동동거릴 뿐이다. 살기 위해.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 매순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수면 밑으로 가려진 발길질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이 발길질은 보이지 않고, 아무도 보려 애쓰지도 않는다. 궁금해하지도 않고, 궁금해주지도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발길질에 수면이 찰랑일 때까지 끊임없이 발을 움직여야 할까? 아니면 날 때까지 날갯짓을 해야 할까? 아니면 아예 잠수를 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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