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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Oct 28. 2019

"작가들은 아파야 돼, 여행도 좀 다니고, 많이"

[사적인 일기] 글쓰기 참 싫어지는 몇몇의 순간

작가란 직업은 편견이 많은 직업이다. 확실하게 굳어진 이미지도 많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원하지 않은 조언을 생각보다 많이 듣는 직업이다. 아직 작가가 되지 않는 나 같은 지망생에게는 그 조언들이 훨씬 쉬워진다.


사람들은 "어디 대학교 다니세요?"라는 질문은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웬만큼 친한 사람들끼리도 잘하지 않는 질문인 것은 이 질문이 나름 무례한 질문이 될 수 있다는 걸 암묵적으로 알고 있단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 친하지 않지만 애써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 친해지고 싶거나 저 사람에 대해 무엇이든 궁금해서 질문을 해야겠을 때 쉽게 할 수 있는 질문이 뭘까? "학과가 어디에요?"이다.


"학과가 어디에요?"

"국어국문학과예요."

"아, 그럼 선생님 하려고요?"

"아니요. 저는 작가 되고 싶어요."

"진짜? 작가는 돈 못 벌 텐데..."

"그래서 글쓰면서 출판사도 다니고 싶어요."

"(속으로는 출판사도 돈 못 번다 생각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면서)그럼 미리 싸인 받아놔야 되는 거 아니야? 나중에 대박 작가 되면 나 잊지 말아요?"


가족과 중고등학교 때 친구를 빼고, 사회에 나와 여러 유형과 나잇대의 사람들을 사귀면서 이런 대화가 오가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초면에, 또는 만난지 얼마 안 되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나쁘지 않다. 어렵지도 않고 익숙하다. 근데 딱 여기서 끝난다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절대 이렇게 끝나지만은 않는다.


가족들은 작가가 될 거라는 나를 믿어준다. 알아서 하리라 생각하고 관심은 갖되, 궁금하긴 해도 부담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먼저 언급하지 않는다.


친구들도 작가가 될 거라는 나를 믿어준다. 알아서 하리라 생각하고 관심은 갖되, 자기들도 추구하고 꾸고 싶은 꿈이 더 우선인지라 내게 신경쓰지 않는다. 먼저 보여달라고 하지 않지만 글을 보여주면 솔직하게 평가해주고 존중해준다.


그런데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작가가 될 거라는 내 말에 이미 나를 '작가'라고 생각해버린다. 나는 그들 앞에 이미 '누구'이기 전에 '작가 누구'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그들의 기억 속에 빨리, 오래 살아남는 비결이라면 비결이겠다. 그렇게 '작가 누구'가 되어버린 나는 이들에게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계속 듣게 된다.


어디선가 작가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내게 링크를 보내주거나 메세지를 보내준다. "어떤 작가가 인터뷰 했다는데 네가 보면 좋을 듯?"


어딘가에 글쓰기 공모전이 게시되어 있다. 내게 현수막 사진을 찍어 보내주거나 직접 말해준다. "이런 것도 도전해 보는 거 어때?"


근데, 그래. 이건 날 생각해주고,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설마 내가 모르고 지나치고 후회할까봐 걱정돼서, 이걸 보고 생각난 사람이 나라서 툭 던지고 지나가는 말이라고 치자. 내가 관심 있는 작가의 인터뷰라면 내가 알아서 봤을 거고, 공모전이라면 당연히 내가 알고 있는 건데 굳이 하나하나 짚어주는 거, 썩 좋진 않지만 그렇다고 나쁠 것도 없다. 나도 그냥 툭 거르고 지나가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그런 말.


요즘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어 얘기하다가 문득. "근데 작가는 아파도 볼 줄 알아야 해. 사람이 상처를 받아야지 글이 깊이가 생기더라고. 음악도 만든 사람 경험이 우러나와야 진정성이 보이는 것처럼 소설이나 에세이도 쓰는 사람이 경험이 풍부해야 되는 거야. 그니까 너도 더 아파야 돼. 더 상처 받아야 돼."


한창 여행 가고 싶다거나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누가 여행 갔다더라는 얘기를 하게 되면 또 문득. "너 작가가 꿈이면 여행 많이 다녀. 누구 작가는 진짜 안 가본 데가 없다더라. 작가는 경험이 많아야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 너도 여행 좀 다녀, 주말에 집에만 있지 말고. 너무 일만 다니지도 말고 조금 벌었던 거 모아서 여행 가!"


정말 많이 듣는다. 그리고 솔직이 기분이 나쁜 걸 넘어서 화가 날 때도 있다. 다들 딴에는 내 생각해줘서 해주는 말이란 거 아는데, 그래도 화가 나는 걸 어쩌겠는가.


무슨 말인지는 안다, 당연히. 아파야 한다는 말은 감수성이 풍부하면 좋다는 말이다. 한 세계를 만들어내어 그 속에서 인물을 움직이는 소설작가라면 당연히 감수성이 풍부했을 때 감정선을 맛있게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한다는 말은 경험이 많으면 좋다는 말인데, 작가가 아는 지식이 많을 때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폭이 그만큼 커진다고 생각한다. 내 언어의 세계가 넓어지는 만큼 내 글의 깊이 또한 깊어지는 것이지.


그러나 나는 감수성이나 경험이 단순히 아플수록, 여행을 많이 다닐수록 풍부해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일생이 순수하게 행복했던 사람은 감수성이 돋아나지 않는가?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은 더 기똥찬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아픈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감정선이 평이해진다면? 한 번도 비행기를 타지 않았는데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이렇게 조목조목 따지면 또 "꼭 그러라는 게 아니라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라고 말하겠지. 쳇.


내가 유별나게 조언 듣는 걸 싫어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유난히 예민하게 구는 거라고 말해도 인정할 수 있다. 단지 내가 바라는 건 작가가 되기 위해 꼭 갖춰야 할 조건처럼 말하지 않았으면 할 뿐이다. 그리고 솔직히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 말들이 얼마나 무심하리만치 폭력적인 말이 될 수 있는지 알아줬으면 좋겠다.


"작가는 좀 아파봐야 돼." 이 말이 "넌 좀 맞아야 된다"는 말이랑 뭐가 다르냐 이 말이다. 날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라면서 내가 아프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가? 작가들은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날 때 영감을 받나? 난 눈물나게 예쁜 노을을 보고 너무 행복할 때 글이 쓰고 싶어진답니다.


"여행 좀 다녀." 자꾸 그렇게들 말하는데, 내가 여행을 그렇게 미치고 환장하게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나만의 여행방식이 있다. 관광지를 다 돌아야 직성이 풀리거나 그 나라 그 지역 맛집이라면 줄을 1시간을 서도 먹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나는 여행을 가더라도 마음에 드는 한 장소에 오래오래 있는 걸 선호한다. 오죽하면 여수 여행을 갔을 때 아쿠아리움이 너무 좋아 개장시간에 들어가 폐장할 때까지 하루종일 있었더랬다. 대형 수족관 앞에서 가져간 노트를 끝까지 다 써서 참 행복하게 여행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남다른 사연을 가진 작가들을 비하하는 게 아니다. 세계를 돌고 돌아온 경험을 살려 책을 낸 작가들을 내가 어떻게 비꼴 수 있겠는가. 그들만의 개성으로, 그들만의 작품성으로 승화시킨 값진 경험과 감정들로 낸 글을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이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각자의 성격과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듯 작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마치 작가 자격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작가라면 모름지기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경험이 있어야 하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하며, 필요한 역량이 있어야 한다고들 말하는데. 솔직히 작가가 달리 작가인가? 재밌는 글을 잘 써야지 작가 아닌가? 물론 내가 지금 재밌는 글을 잘 쓰는 작가는 아니지만, 그래서 내게 자꾸 동정하는 마음에 아낌없이 조언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내 알아서 쓰고 싶은 글 마음껏 쓰고 있다. 누군가 봐주길 원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우선 내가 글로 쓰고 싶어하는 모든 생각과 상상들로 가득 찬 소재가 차고 넘친다. 난 내가 알아서 되고 싶은 작가로서의 모습을 향해 열심히,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아무렴, 작가라는 꿈을 꾼지 15년 가까이 되는 나보다도 나의 꿈에 대해,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깊게 고민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공모전에 내가 나갔으면 하는 그들의 마음보다 공모전에 나가서 인정받고 싶은 내 마음이 더 활활 타오르지 않겠어?


그러니까 제발 그만. 이러쿵저러쿵 어디서 주워들은 선입견으로, 어디서 슬쩍 본 남의 경험담을 내게 무심코 던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내 말은,


알아서 할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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