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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Sep 18. 2019

날 '글 쓰게' 하는 사람

[사적인 일기] 날 '쓰게' 하는 사람 - #3

차마 그 편지를 다 읽을 수가 없었다. 한 장 가득 빼곡히 적힌 '사랑해'란 말에 뿜어내는 눈물이 너무 무거워서 다음 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생에 마지막 순간까지 날 생각하며, 내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애를 썼을 그가 눈앞에 선명해서 도무지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은, 누군가의 생명 끝자락에 나도 몰래 서 있던 나 자신의 초라함을 버틸 수가 없었다.


꼬깃꼬깃 접은 편지를 이불 밑에 숨겼다. 그 누구에게도, 또한 내게도 그의 마지막을 보일 수 없었다.


아무 데도 말하지 못했다. 내가 첫사랑을 잃었습니다, 내가 지키지 못한 탓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 어디에도 토로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 사람이 떠난 방식에 훨씬 더 솔직할 수 없던 때였다. 스스로의 삶을 등진 사람들의 뒤통수에 침을 뱉으며 "죽을 용기로 살아봐라, 쓸모없는 인간"이라며 대놓고 욕을 했다. 그를 둘러싼 가족들과 지인들에게까지 손가락질을 하며 "니들이 보살펴주지 않아서 애가 죽은 거야, 늬들도 쓸모없는 사람들이야"랬다. 그 말에 상처 받은 유족들이, 지인들이 오히려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숨겨야만 했던 몹시도 차가웠던 시기였다. 지금도 다르진 않은 것 같긴 하지만.


그의 부모님은 자식을 허망하게 떠나보낸 후 떳떳하게 장례식도 치르지 못했다. 단지 그 자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었다. 자식을 잃은 상실감은 마찬가지일 테지만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들은 자식의 유골을 어디에도 안치하지 못하고 유골함 그대로를 품에 안아 집으로 가져와야 했다. 어디에도 자식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지 않았지만 어떻게 알게 된 사람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새끼를 방치하고 잘못 키웠다며 비난하고야 말았다.


그의 몇 없는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입방아를 피할 수 없었다. 집에 오지 않는 부모는 그렇다 쳐도 친하다는 친구들은 그동안 뭘 했느냐, 친구가 맞기는 하냐, 친구를 잃은 건 다 너희들 탓이다. 친구들은 그 말을 인정했다. 모두 자신들 탓이라며 그들 스스로를 자책했다. 가볍게 내려 찍는 사람들의 입방아를 친구들은 피할 수도 없었고, 피하지도 않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모두 제 잘못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고, 또한 함께 겪어왔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할 수 없었다. 그의 삶과 죽음 그 모두는 떳떳할 수 없었고, 그런 그를 지키지 못했으므로 나의 삶 또한 떳떳하지 못했다. 무서웠다. 나는 아프지만 아플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고, 아무리 슬퍼도 다 나 때문이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끝까지 날 사랑한다던 그의 말이 오히려 내게 비수가 되어 꽂혔다.


날 그렇게 사랑한다면서 당신은 왜 떠났을까? 왜겠어, 내가 당신의 삶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거니까. 살고 싶을 만큼 날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니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나의 언어로 건넨 수많은 고백이 당신에겐 전혀 쓸모가 없었으니까.


마음의 병을 앓음과 동시에 지독한 사춘기를 보냈다. 나 자신은 물론 가족들과 친구들도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나로 인해 안게 됐다. 점점 연락이 되지 않는 나를 불안히 생각해야만 했고, 문고리를 걸어 잠근 방 안을 부수고 들어가야 되는 거 아니냐고 발을 동동 뛰어야만 했다. 허공을 향한 내 시선을 위태롭게 주시해야만 했던 내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내 우울을 마냥 바라만 봐야 했다.


아무도 내 우울의 원인을 알 수 없었지만 모두가 내 우울이 언젠가는 날 집어삼킬 수 있으리란 사실을 알았다. 모두가 내 눈치를 봤다. 내가 죽을까 봐 두려워했고, 또 내가 죽을까 봐 동정했다. 그 모두는 내 입이 언젠가는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들이 날 배려하기 위해 두어 줬던 거리는 오히려 내게 사무치는 외로움이 되었다. 이마저도 외로워서 나는 이렇게 아픈데, 혼자라는 게 이렇게 아픈 것을 당신은 언제부터 알았을까.


당신은 언제부터 삶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을까.


혼자 남겨진 시간 동안 그에 대해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그가 느꼈을 외로움을 가늠해보았고, 그가 감내했을 아픔을 감당해보고 싶었다. 그를 만난 4년 남짓의 시간보다 그를 잃고 겪은 반년 동안 그를 더 많이 헤아리고 그리고 사랑했던 것 같다. 우리는 왜 서로를 잃고 나서야 사랑을 키워나가는 걸까 하며 생각만 하면 실없이 웃기도 매번 느닷없었다. 그렇게 웃다가도 문득 거대해지는 빈자리를 느꼈고, 그 자리를 채우던 상실감이 허공 위를 얄밉게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면 또 문득,


사랑하는 사람의 삶이 되어주지 못한 내가 살아남을 자격이 있을까? 끊임없이 이어진 질문은 날 열아홉으로 만들었고, 그가 넘지 못한 십 대의 끝으로 내 등을 떠밀었다. 


그 무렵 나는 어떠한 글도 써내리지 못했다. 그 흔한 일기조차 쓰지 못했다. 그를 만난 이후 온통 그로 채웠었던 글이었다. 소설 속에서도 행복한 우리의 사랑에 살을 입혀 새로운 사랑을 그려갔고, 교과서 귀퉁이에 적었던 짧은 시로 그를 향한 그리움을 새로운 단어와 문장들로 써내렸다. 돌아선 그를 붙잡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던 내가 썼던 편지는 당연히, 오로지 단 한 사람, 그를 향해서만 사용되었다. 그래서 나는 키보드를 놓고, 펜을 놓았다. 


나를 쓰게 했던 그가 없었기에, 내가 쓰고 싶은 그가 없었기에. 함께 살고 싶었던 그를 살려내지 못한 글이기에 더는 쓰고 싶지 않았다. 평생 그럴 줄만 알았다.


그의 영국인 친구가 한국에 들어와 하나 제안을 했다.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던 친구의 장례식도 가보지 못했는데, 우리끼리만이라도 장례식을 치르는 건 어떻냐면서 각자 그를 위해 추도사를 준비해 오자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그가 내 인생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전하는 연설문임과 동시에 그의 생에 찬사를 보내는 편지를 말이다. 정말 쓰고 싶지 않았지만 타국까지 와 친구의 장례를 치르고 싶어 하는 내게도 소중한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다시 펜을 들고, 하얀 종이 위에 다시 한번 그를 위한 글을 써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랑해. 아니, 다른 말. 그러나 또, 사랑해. 사랑해, 나한텐 처음부터 너 하나뿐이었어. 당신은 이 글 뒤를 어떻게 장식했을까.


그가 마지막 편지에서 내게 건넨 고백을 도무지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이불을 들춰 차마 다 읽지 못한 편지를 다시 꺼내 들었다. 꾹꾹 일렁이는 가슴을 눌러 담으며 꾸역꾸역 그의 단어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의 편지는 장을 넘길수록 상세하게 내게 나를 자랑했더라고. 그리고 그런 나로 인해 그 자신을 얼마나 아끼게 됐는지도.


'네 글은 내 감정을 들여다봄과 동시에 내 삶을 꿈꾸게 해. 네 소설 속의 나는 벌써부터 작가에게 사랑받을 준비를 하며 설레고 있어. 네 글 속의 내가, 편지 앞에 선 내가 너무 자랑스러워.'


'널 둘러싼 풍경들이 널 닮아 예쁜 건지, 네가 예뻐 둘러싸인 풍경들이 예쁜 건지. 중요한 건 네가 너의 삶을 아주 예쁘게 꾸려나간다는 점이겠지. 믿을 수 없겠지만, 난 네게 사랑받아 널 사랑한 만큼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됐어. 넌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알아야 해. 내가 네 덕에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어갔으니까.'


'난 더 이상 내가 살아 겪을 상처에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이대로 너에게, 나에게, 그저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혹시라도 네 탓이라며 자책하지 말았으면 해. 난 이제 슬프지 않을 거야. 너도 그랬으면 해. 내게도, 네게도.'


이 이기적인 사람의 글을 끝까지 읽고 나서야 나는 비겁하게 웃을 수 있었다. 끝까지 당신은 날 위로하고 싶었단다. 역시나 당신의 끝을 자책하며 아파하고 있을 나를 애초부터 알아내어 죽어가는 순간에도 날 살리려 했다. 끝까지 날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자기 말로, 내가 자기에게 그래 줬던 것처럼. 그리고 끝까지 나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게 살아남도록. 불행하게 사는 것보다 사랑받으며 죽는 것을 택한, 사랑하는 나쁜 자식.


추도사를 쓰면서, 비로소 다시 글을 쓰면서 어금니를 꼭 물어 생의 목표를 다졌다. 자랑스러운 사람이 될 테다.


당신, 그는 부끄럽지 않기 위해 자기 나름의 선택을 내렸다. 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 가장 소중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받지 못할 사랑보다도 다시없을 스스로의 상처를 가장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내린 선택이었다. 그 선택에 아플지언정 내가 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 선택이 자랑스럽지 못할지언정 내가 부끄러워할 이유 또한 없다.


그가 자기만의 방식대로 스스로를 사랑했던 것처럼,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사랑하면 된다. 그리고 또한 그는 자기만의 방식대로 날 사랑해주었으니,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그를 사랑할 것이다. 그의 상처도, 눈물도, 사랑도, 추억도, 그의 모든 시간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그를 부끄럽게 생각되지 않게 할 것이다. 그를 몹시도 사랑했던 그 자신과, 그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 날 위해서.


억지로 사랑받으려 노력하지도, 억지로 사랑하려 노력하지도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자. 세상 모두가 날 싫어한대도 단 한 명, 생의 마지막 순간에까지 날 사랑하던 사람이 분명히 존재하니까. 이제 그 사람은 어디도 가지 않고, 변하지 않고, 끝없이 날 바라봐줄 테니까. 살아가는 것에, 살아남는 것에 두려워하지도 말고, 머뭇거리지도 말자.


그로 인해 사랑을 알아,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을 배웠다. 그런 나, 사랑을 받은 만큼 사랑을 줄 수 있는 나로 인해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사랑받는 사람이라 지금 참 행복해. 그러니 미안해. 행복해서 미안해. 이젠 아프지 않아서 미안해. 아니, 아플 때도 있지만 아프지 않아 웃는 날들이 더 많아져 미안해.


더 이상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 잘 살아 미안해. 그러니 어딘가에 당신이 있다면 끝까지 날 바라봐줘. 언제고 당신을 다시 만나더라도 날 자랑스러워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살게.


이제 나는 앞으로 쓰게 될 모든 시도, 소설도, 수필도, 일기도, 사소한 메모까지도 그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나란 사람이 완성되어 가는 나날에 만난 사람을 잊기란 불가능하기에. 그러니 나의 모든 글은 당신에게로 향하고, 당신을 위하고, 당신으로부터 흘러나올 것이다. 단순하고 개인적이기만 한 소재가 아니기에, 이제 나는 모든 글에 책임을 다해 써야만 한다.


내 오른손과 펜과 종이와 모든 글자들로 당신을 찾을 것이다. 언제라도 어디선가 나와 내 글, 그리고 그 속의 당신을 기다릴 거란 그 말이 날 지금까지 살게 하니까.


그가 내게 남겨간 모든 시간과 정성과 사랑을 다 바쳐 내 안의 모든 글을 완성할 것이다.


당신과 함께 살고 싶던 시간들 속 행복,

당신이 느꼈어야 할 초라함과 외로움,

당신으로 인해 느꼈던 사무치는 상실감과 충동적이었던 자기 파괴욕,

그리고 시간이 보듬어준 나의 상처와 보듬어주고픈 나보다 어린 당신의 상처.


이 모든 것을 남기고 간 당신은 이제 내게 사랑이자, 추억이자, 영감을 주는 뮤즈가 됐으니까. 그런 당신에게 자랑스러울 글을 쓸 테니.


그래 그래 그때 기억해. 지치고 방황했었던 절망의 깊은 수렁에 빠졌던 그때 내가 널 밀어내고 널 만난 걸 원망해도 넌 꿋꿋이 내 곁을 지켰지, 말 안 해도. 그러니 절대 너는 내 손을 놓지 마. 두 번 다시 내가 널 놓지 않을 테니까. 나의 탄생, 그리고 내 삶의 끝. 그 모든 걸 지켜볼 너일 테니까.


방탄소년단(SUGA) 'First Love'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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