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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Sep 14. 2019

날 '쓰리게' 하는 사람

[사적인 일기] 날 '쓰게' 하는 사람 - #2

평범치 않았던 만남 못지않게 이별도 순탄치 않았다. 서로에게 질리고, 서로의 단점을 미워하고, 각자의 미래를 상상하고 싶어 헤어지지 않았다. 이별을 말하는 순간 끝까지, 생을 마치는 그 순간 끝까지 그는 내게, 나는 그에게 사랑을 토해냈다.


어쩌면 그래서 아직도 당신을 잊지 못하는지도.

두 번이나 날 먼저 떠난 당신을 이렇게 애틋하게 그리워하는지도.


"내가 떠나도 걱정은 하지 마. 넌 스스로 잘 해낼 테니까. 널 처음 만났던 그때가 생각나. 어느새 훌쩍 커버렸네 니가. 우리 관계는 마침표를 찍지만 절대 내게 미안해하지 마. 어떤 형태로든 날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때 반갑게 다시 맞아줘."

방탄소년단(SUGA) 'First Love' 中


아이러니하게도 첫 번째 이별을 겪고서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우리였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해 마냥 사랑받고 사랑을 주며 알콩달콩할 줄 알았던 6개월이 지나고, 열여덟의 그는 열일곱의 내게 이별을 예고했다.


"나 유학 가."


이게 무슨 삼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일까 싶었다. 한창 흔해빠진 인터넷 소설에 미쳐있던 사춘기 소녀는 막상 이런 진부한 대사를 듣고 소름이 끼치던 순간의 감각을 잊지 못했다. 분명 그 소설 속에서는 유학 간다는 대사에 슬퍼하는 주인공이 있을 텐데, 어째서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온몸이 싸늘해졌을까.


사실 '나 유학 간다'는 말이 헤어지자는 말은 아니었다. 어쩌면 가지 말라며 붙잡아 달라는 애원인지도 모르고, 차라리 실컷 욕을 하고 두드려 패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고 싶은 바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말했다.


"그럼 거기까지가 끝이네."


배웅도 하지 않을 거란 내 말에 당신의 눈꺼풀과 입꼬리가 처량하게 떨리던 얼굴을 생각해보면 애원이 맞는 것도 같다. 그럼에도 끝까지 그는 웃었다. 미련 없는 내 모습에 상처 받은 자신을 들키지 않으려 애를 쓰며 웃었다.


나는 끝까지 웃지 않았다. 웃다가 눈꼬리가 휘어 울까 봐서, 그대로 울다가 당신이 같이 울까 봐서.


공항에 당도해서야 당신과 나는 말했다. "사랑해." 그 고백이 처음이었다. 처음 사귀자고 말했을 때도, 처음 손을 잡았을 때도, 처음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했을 때도 하지 못했던 고백을 첫 이별에서야 나누고 만 것이다. 어린 그와 어린 나의 사랑은 너무 어려서 서로를 알지 못했고, 마냥 알고 있을 줄만 알았기에 떠날 것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그 오만함이 낳은 이별이 곧 사랑이 됐다.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은 서로를 놓지 못했다.


다시 만나게 됨을 이야기하기 전에 나의 무식함과 어리석음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인생에 다시없을 만큼 사랑한다고 믿었던 당신의 진짜 모습을 나는 전혀 몰랐다. 당신을 알지 못하는 나 자신을 몰랐기에 당신을 지키지 못했고, 결국 당신을 잃었음을 이제는 인정한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내 사랑의 연약함을 몰랐기에 당신을 마냥 사랑할 뿐이었다. 그때는 '사랑'이라는 하찮은 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숭고한 노력이 필요한지 정말 몰랐다.


그는 결코 강하지도, 포근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내 앞에서 보여주는 웃음 뒤에서 그는 상처 난 가슴을 끌어안고 매일 밤 절규하듯 기도했다.


'내일이 오지 않게 해주세요.' 그래,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시절, 그 나이의 유독 예사롭게 민감한 사람처럼 스스로를 불행하다 생각한 사람이었다. 흘러가는 시간의 무게에 남들보다 깊이 짓눌려 일어날 생각도, 의지도 불러내지 못해 스스로를 일으키지 못한 사람. 겪어보지도 못한 죽음을 동경하여 삶의 부정적인 모습만을 가득 안아버린 사람.


그의 부모님은 많이 바쁘신 분들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감당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받느라 집에 오지 못하는 분들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오던 빈도가 석 달에 한 번으로, 반년에 한 번으로 늘어나면서 그에게 부모님은 통장에 찍히는 돈이자 불이 꺼진 거실이었다.


만날 수 없는 부모님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을 들이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뼈저리게. 그러나, 그래도, 그는 슬펐다. 당신이 없었다면 부모님은 마음 편히 갈라서 각자를 위해 살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없다면 쓸모없는 그의 집이 다른 가족들을 받아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왜 살아있어야 할까.'


그 나이의 유독 예민해서 외로움이 사무치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던 그는 감사하게도 나를 만나, 만나는 시간만에라도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오지 않았으면 바랐던 내일이 아닌 영원하기만 바랄 오늘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혼자가 될 집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사랑은 곧 삶이었다.


나는 미안하게도 그런 그를 몰라, 그저 웃는 얼굴에 정신이 팔려 그의 외로움과 눈물을 보지 못했다. 가여운 그는 무식한 사랑의 무심한 이별에 또다시 혼자가 되어 낯선 땅에 떨어져 버렸다. 당연하게도 그는 그 오롯한 삶을 견디지 못했다.


유학을 떠난 지 한 달 남짓이 지났을 때 그는 무작정 다음 학기 등록금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끊었다. 그리고 내 눈 앞에 또 나타났다. 인사 대신 그는 울었다. 길 한복판에 서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때 처음 알았다. 다 안다고 생각했던 그의 그림자를 봤다. 너무 힘들고 외롭다며 외치던 그의 절규를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언어도 정서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던 그를 말로만이라도 붙잡지 않았다. 왜 왔냐고 묻지도, 적응하지도 못하고 무작정 왜 돌아왔느냐 화를 내지도 않은 채 수중의 돈을 털어 그가 털어 쓴 다음 학기 등록금과 돌아갈 비행기표를 쥐어준 부모님을 말 뿐이라도 원망하지 않았다. 다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보였음에도 웃으며 그를 보내주었다.


용기를 내어 곁으로 돌아온 그에게 내 미소는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그 누구에게도 아닌 내게 가장 큰 상처를 받은 것이다. 어차피 붙잡지 못할 거 시늉이라도 해봤어야 했는데, 그때의 나는 너무 어리고 어리석었고, 그때의 당신은 너무 어리고 연약했다.


당신이 열아홉이 되고, 내가 열여덟이 됐다. 그동안 기숙사를 함께 쓰며 친해진 한 영국인과 유일한 친구가 됐고, 매일 밤 나와 스카이프로 영상통화를 했고, 지독히도 영상이 끊기는 날엔 비싼 국제전화라도 이어갔다. 연락을 할 때는 거의 그 영국인 친구가 함께 있어 같이 전화를 하게 되느라 덩달아 나도 영어 공부가 되던 때였다. 그 친구와 함께 영어로 말을 나눌 때는 뭣도 모르고 재밌어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빠지고 둘만의 시간이 되면 그의 얼굴빛은 어김없이 어두워졌다. 그가 처음 내게 눈물을 보인 날을 기점으로 그는 자신의 상처를 더 이상 숨기지 않게 됐다. 힘들면 힘들다, 속상하면 속상하다, 외로우면 외롭다 가감 없이 말했다. 그리고는 어느 날부턴가 한숨과 함께 '죽고 싶다'를 입에 달게 됐다. 정말 무서웠다. 정말로 죽어버릴까 봐.


그 시기부터는 그에게 더없을 사랑을 고백하는 대신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렇게 죽어버리면 누리지 못하고 가버리는 삶이 얼마나 아까운가를 말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시시콜콜한 일상을 일기처럼 쓰기도 했고, 마냥 아름답기만 한 소설을 써 보내기도 했다. 이메일로 적어 보낸 편지는 점점 기계적인 생활이 되어갔다. 손수 글씨로 적어 내릴 때보다 덜 생각해 쓰게도 됐고, 기억에 남지도 않을 무심한 말들을 거르지 않고 적어나갔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내 이메일을 읽지 않았다. 그때가 4월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죽음을 시도했다. 욕실에서 피투성이가 된 그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데려간 친구는 그의 책상에서 세 장의 종이를 손에 넣었다. 친구는 온통 한글이 빼곡히 적힌 종이를 내게 보여주고 나서야 그것이 유서인 줄 알았다.


유서는 날 향해 있었다. 온통 날 원망하기만 하는 비난이 담겨있었다.


'널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데, 넌 나에 대해 가장 중요한 걸 몰라. 내 죽음이 너에게 진짜 나를 알려줄 수 있다면 좋겠어. 그럼 넌 절대 날 사랑하지 못할 텐데. 넌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 넌 날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으니까. 네가 아니었다면, 네가 내 인생에 없었다면 난 덜 아팠을지도 모를 거야. 좀 더 일찍 날 포기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널 만난 게 너무 후회돼.'


난 당신을 얼마나 몰랐던 걸까.

난 당신의 사랑하고 싶은 모습만을 사랑했던 걸지도 모른다.

당신은 그런 내 사랑의 편식을 가장 원망했다.


유서를 모니터 너머로 보게 된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살면서 그렇게 울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이러다 숨통을 토해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저 슬펐다. 내 존재를 후회한다는 당신의 글이 너무 미안하기만 해서 울었다. 내 사랑을 삶의 무게만큼 버겁게 느끼게 해 미안해 슬펐다. 당신의 유서를 본 내가 지레 상처 받아 돌아서기만 바랐던 그의 의도에서 벗어나 내 사랑이 잘못되어 바로잡아야 하겠단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그만큼 사랑했던 사람이기에 놓칠 수 없었다. 우리의 사랑에 잘못하고 싶지 않았다.


꾸준히 메일을 보냈다. 병원에서 일어난 그가 다시 학교에 나갔다는 소식을 친구에게 듣고, 마치 4월의 그 일이 없던 일처럼 태연하게 지내더란 안부를 친구에게 듣고, 그 친구와 영상통화를 할 때 열리는 문소리와 곧장 닫히는 문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받지 않는 전화도 매일 걸었고, 보지 않는 메일도 매일 보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 돈도 없고 어린 나는 곧장 그에게 날아갈 수가 없었기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에게 나를 전했다.


나는 끝까지 닿지 못했다. 그게 9월이었다. 두 번째 이별에서야 그에게서 마지막 편지를 받았다. 전에 받았던 편지보다 양이 세 배 많아졌다. 똑같이 내 이름을 걸고 시작되는 편지가 전보다 훨씬 독하게 날 비난하는 내용이 담겨있을까 봐 읽기가 두려웠다. 그러나 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사랑해. 처음부터 나에겐 너 하나뿐이었어.'


당신과 나의 이별은 또 이렇게. 사랑한다면서 또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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