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왔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유독 고초가 심했다는 점에서 이미 유명했던 작품,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The Man Who Killed Don Quixote가 제작을 시작한 지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한국 스크린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아담 드라이버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기대를 했던 작품이기도 하고, 국내 개봉이 현지보다 한참 늦어진 까닭에 국내 개봉이 이루어지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는 느낌 또한 듭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미 지난 9일에도 시사회가 한 차례 있었는데요. 저는 16일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시사회를 통해 작품을 감상하고 왔습니다.
국내에서는 5월 23일에 개봉 예정이고, 러닝타임은 133분 정도로 길지 않습니다. 포스터 이미지를 보면 진중한 역사극 같기도 하고 신화적인 이야기나 멋진 모험 이야기를 다룰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게감도 없고 스토리도 어렵지 않고 해서 쉽게 머리 식히며 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비중을 가진 두 인물인 하비에르 역의 조나단 프라이스나, 토비 역의 아담 드라이버 모두 관객들에게 친숙한 배우들이기 때문에 작품 또한 여러분에게 더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영화는 코미디 영화로서는 그 역할을 충실해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쉽고 크게 생각이나 분석이 필요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코믹한 장면들을 보여줍니다. 허우대 멀쩡해 보이는 인물 토비가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 들어가며 수난을 겪게 되는 것, 누가 봐도 정상적이지 않은 인물인 하비에르가 멀쩡한 상황에서 자꾸만 이상하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 등 이런 점들은 옛날의 코미디 영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런 점에서 테리 길리엄 감독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작품 <몬티 파이썬의 성배>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사도 한 줄 한 줄 정성을 다해 쓰였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등장인물 중 토비의 대사에서 이러한 점이 크게 두드러지는데요. 두 단어 간의 발음의 유사성을 활용한 언어유희적 대사들이 수차례 등장합니다. 물론, 대사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많이 생략이 되고 그 기능을 잃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원어 대사가 정말 재치 있게 쓰였다는 점에서, 영어에 익숙하고 영어 듣기에 능하신 분들은 자막으로만 대사를 받아들이는 분 들 보다도 더 많이 즐기고 오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상당히 옛날 영화 같다'는 것입니다. 좋게 말하면 클래식이고, 나쁘게 말하면 구시대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촬영 기법이었습니다. 목적에 따라 상이한 샷 활용이 두드러지는데, 장면 장면이 영상물에 대해서 공부할 때 촬영기법의 예시로 써도 좋을 정도로, 정석과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은 스토리나 배경이 그다지 복잡하게 설정되지 않았습니다. 요즘 인터넷에서 '밑밥 깔기' 혹은 '빌드업'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결과물을 위해 탄탄히 배경 설정을 하는 것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이는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와 상황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돈 키호테의 여정처럼, 한 번 스쳐 지나갈 상황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배경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자세한 설명 대신에 배경과 상황을 롱 샷을 통해 보여주는 것을, 그 상황에서 구체적인 인물의 감정 변화는 타이트 샷을 통해 짧고 간결하지만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을 택합니다. 이 외에도 의도적으로 화면을 회전시키는 등 영상 촬영은 매우 세심하게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인 두 인물, 하비에르와 토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나머지 캐릭터들은 단순히 스토리를 위한 하나의 '영화적 장치'에 불과하다는 느낌 또한 듭니다. 요즘은 주인공이 아님에도, 악역으로 등장하는 인물일지라도, 그 캐릭터의 서사나 성격 때문에 사랑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작은 역할을 받았음에도, 그 역할이 의미가 있고 충분히 매력이 느껴질 때 팬들도 크게 반응하고 영화에 더욱 애정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 점에서 영화의 약점이 두드러집니다. 영화에는 총 3명의 이름이 알려진 여성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가장 먼저, 안젤리카(조아나 리베이로)는 주인공의 각성 혹은 목표 설정을 위한 캐릭터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의 역할을 맡습니다. 두 번째 인물은 재키(올가 쿠릴렌로)로, 토비에게 난관을 선사하는 캐릭터입니다. 작품에서 일이 잘 풀려나간다 싶을 때마다 간간히 등장하여 갈등을 유발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나머지 한 명은 멜리사(팔로마 블로이드)로, 자꾸만 잊히는 캐릭터입니다. 영화 속 그 누구도 이 인물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해주지 못합니다. 존재감이 없다는 점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캐릭터입니다. 여러 캐릭터들이 영화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저 목표를 주거나, 웃음을 주기 위해 잠시 등장했다가 퇴장하곤 합니다. 단순히 기계 부품과 같이 존재한다는 느낌까지도 줍니다. 이런 점에서 캐릭터들이 세심하지 않고 쉽게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스토리와 관련하여 각본에 대한 비판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토비의 회상과 꿈, 현실이 계속해서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영화의 주된 스토리가 꿈과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꿈처럼 어떤 인과관계도 성립되지 않는 것일까 싶기도 했고, 이런 점에서 소설의 '자동기술법'까지도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오신다면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데?"라고 말하고 싶으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테리 길리엄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되돌아보시면 조금은 납득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이 작품의 엔딩 시퀀스가 끝나고 한참 멍 했던 것 같아요. 혼란스러운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면서 '아, 이게 뭐지? 감독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하며 생각해봤는데, 감독의 전 작품 <12 몽키즈>나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등을 생각해보니 '아, 그냥 이 양반은 이런 사람이었지' 하며 납득하고야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영상물 등급이 가장 의아스러운 점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내용이 내용인지라 많이 혼란스러워서 감상하는 내내 잊고 있던 점인데요. 이 작품은 '12세 이상 관람가'입니다.
영상물 등급 위원회 등급 분류 검색 http://www.kmrb.or.kr/data/searchMovieView.do?rcv_no=2138346&orseq=1
보시다시피, 모방 위험을 제외하고는 모든 항목에서 보통을 받았는데요. 딱히 이 분류 결과에 공감하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선정성에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영화 스토리의 초반부부터 성적인 상황이 꽤나 거름 없이 묘사되고, 짧지만 수 차례 반복해서 이런 장면이 등장합니다. 만 12세 이상 관람가라고 하기에는 수위가 꽤 높다고 생각이 듭니다.
영화에 대한 제 감상이 '호'인 것은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아요. 혹시나 다른 사람과 함께 이 작품을 관람하기로 결정하셨다면, 이 점을 고려하고 상영관에 들어가시면 좋을 듯합니다.
요즘 매주 시사회에 참석하는 까닭에, 본의 아니게도 주 당 한 편씩 성실히 영화를 감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극장에 가도, 집에서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서 영화를 보려고 해도, 딱 봐도 그게 그거인 듯하고 딱히 볼 만한 영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좋은 기회가 되어서 좋은 영화를 감상하고 온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가벼운 코미디 영화는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업영화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마치며, 반드시 작품을 완성시키고자 했던 그 집념을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잃지 않은 테리 길리엄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