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광고회사를 잘~다니다가 제품 디자이너의 포부를 갖고 덜컥! 나와 제조회사에서 근무한 지 얼마 안 됐을 쯤이었다. 디자인과 기획서 제작에는 자신이 있었으나 광고회사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의견만 피력할 줄 알았지 광고나 디자인 회사보다 훨씬 규모가 컸던 제조회사(업계에서 국내 손꼽히던) 대표에게 기획안 PT라는 것을 하려니 걱정이 앞섰다. 입사하고 나라는 사람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첫 발표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내가 야심 차게 기획한 것이 실행될까 염려하기 이전에 나의 기획안을 회사에서 가장 까다롭고 마주하기 어렵다 하는 대표에게 여유 있게 발표하며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지 나 자신이 못 믿어 운 마음이 더욱 컸다.
바짝바짝 다가오는 발표를 앞두고 학생 시절부터 늘 내게 멘토가 되어주셨던 아버지께 이 불편한 감정을 털어놓게 되었다. 학생 시절 아버지가 회사에서 많은 직원들을 앞두고 강당에서 여유롭게 강의하시던 모습을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는터라 솔직히 아버지의 유전자가 내게도 있음을 깨우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자료를 준비하고 자신 있게 기획했는지 그러나 대표가 얼마나 까다롭고 매몰차며 대단한 성미인지 그런 대표 앞에서 쪼그라들 내 자신을... 아버지와는 달리 그런 소심함이 숨어있는 딸이라는 쓸데없이 올라오는 자존심을 뒤로하고 솔직히 말했다.
내게 늘 뫼 같은 존재인 아버지는 그날도 이 한마디로 나를 키워주셨다.
그래 아무리 대단해야 사람이란다. 나도 사람이고 그도 사람이고, 다르다 해봐야 사람 대 사람이란다.
순간 나를 짓누르던 1톤의 무게가 깃털 같아지며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후광!!! 한순간 생각이 탁! 하고 전환되며 차일 후 있었던 나의 발표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대표는 그 후로도 나를 끝까지 신뢰하며 나의 기획안은 애지간하면 실행할 수 있도록 결제하곤 했다.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영웅, 귀재, 인재 특별한 사람들에게 붙는 호칭이 있을 정도로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걸러내는 단어가 그들로부터 나를 작게 만들지만 내가 주인공이 되는 긴장되는 상황을 앞두고 있다면 꽤나 신통한 마법의 문장이다.
"그래 봤자 사람이야!"
아버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