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함
간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다. 추석이 중간에 끼는 바람에 9월 24일이 병원을 가는 날이었고, 하필이면 간수치 상승으로 인해서 소화기내과 교수님의 권유로 조직검사 일정을 잡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조직검사를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조직검사'라는 말만 들어도 무서웠고, 자가면역간염이 의심된다고 했는데 만약 맞기라도 하면 앞으로 건강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두려웠다. 최대한 미루고 싶었지만 교수님의 권유를 마냥 미루기가 어려웠다. 어쨌든 간이라는 것이 CT나 초음파 등으로 아는게 한계가 있는데 조직검사를 미뤘다가 훗날 큰일나는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자가면역간염이 맞다면 빨리 치료를 해야 예후가 좋다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10월 3일에 입원하기로 했다. 학교가 못해도 9월 말 안에는 들어가야 했는데 조직검사가 갑자기 잡혀서 영국 출국을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다. 또한, 중간에 자꾸 검사가 걸리고 약도 장기처방을 받지 못하는 바람에 어학연수나 프리세서녈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영어회화에 대한 걱정이 많은 편이다. 특히 영국의 경우 억양이 아주 다양하고 국내에서는 잘 들어보지 못한 영어라 적응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실제로 석사를 간 사람들을 보면 첫 3개월은 적응 시간으로 보내는 것 같았다. 영국과 같은 교육 시스템은 토론 수업도 많은데 교수님 말이나 다른 학생들 말을 잘 듣지 못해서 말 한마디도 못할까봐 너무 걱정이 되었다. 더군다나 코스가 1년 밖에 되지 않으니 한 과목이라도 누락되는 순간 박사 입학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좋은 성적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영어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우선 부딪혀 보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올해 입학은 포기한 상황이다.
조직검사는 개천절에 입원해서 진행되었다. 전날에 금식한 후 4일 오전에 검사를 하러 갔다. 그리고 결과는 10일 정도 걸린다고 했다. 나는 조직검사 결과가 궁금해서 온라인으로 의무기록사본을 떼서 미리 확인했다. '온톨'이라는 앱을 이용하면 인공지능이 알아서 번역해준다. 다행히 결과는 자가면역간염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가면역간염은 진단 자체가 매우 어려운 병이라서 기존의 병을 배제하는 식으로 진단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점수제를 통해 17점 이상이면 자가면역간염으로 진단한다. 현재 내 조직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해서 보면 점수제 기준으로 13점 or 15점 정도가 나와 '의심' 수준은 된다. 자가면역간염의 경우 조직검사를 하면 백혈구가 달라붙어 있는 계면간염이 보인다고 한다. 내 조직검사 결과에는 이건 없지만 염증이 달라붙어 있다.
우선 조직검사 결과로는 "지방간염"으로 나왔다. 참 이해할 수가 없는게 지방간은 살을 빼면 자연스럽게 좋아진다고 알고 있다. 나는 이미 4kg나 감량을 한 상태인데 왜 지방간이 더 악화되어서 간염까지 가게된 것인지 이해가 안간다. 간 섬유화스캔에서는 섬유화가 좀 더 진행된걸로 나왔는데 조직검사 결과로는 아직 초기로 나왔다. 지방간염을 진단할 수 있는 여러 특징적인 소견이 함께 나왔다. 그리고 결과를 들으러 갔을 때 피검사를 진행했는데 다행히 AST와 ALT는 낮아졌다. 다만 GPT는 아직 높은 편이다. 교수님께서는 다행히 자가면역간염은 아니었다며 약을 처방해줄테니 다음번에 보자고 하셨다.
자가면역간염이 아니라는 얘기에 안도가 되기는 했지만 이거 하나 검사하겠다고 입원까지 한게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결과가 "지방간염"이라고 나오니깐 허무하기도 했다. 차라리 더 심각한 병이었으면 모를까.. 입원 비용을 60만원 넘게 지불했는데 결과가 지방간염이라니..!! 그래도 이건 고칠 수 있는 병이니 다행이긴하다. 어쨋든 체중 감량하고 탄수화물 조정하면 낫는 병이니 현재 아주 빡세게 식단 관리를 하고 있다. 만약 이번에 간수치가 낮아지지 않는다면 다시 자가면역간염을 의심하긴 할 것 같다... 보니깐 B형 간염이랑 자가면역간염이 같이 있을 수도 있고 지방간이랑 자가면역간염이 같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게 속편할것 같다. 이미 간수치는 하락 추세에 접어 들었기 때문에 다음번 피검사에서는 정상이 나오지 않을까하고 기대한다.
아직까지 유학에 대한 소망은 놓지 못했다. 류마티스 내과에서는 간수치 상승 때문에 약을 장기처방해주지 않고 있다. 기껏해야 3개 타오는 정도인데 이제 간수치가 안정화되면 장기처방(3개월치)를 해주실 것 같다. 화농성 한선염은 휴미라가 효과를 본 뒤로 아직까지 재발이 단 한 번도 없다. 마지막으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은게 5월달이니 약 4개월 넘게 재발이 없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 상태면 아주 좋을 것 같다. 화농성 한선염은 정말 올라오기 시작하면 최악의 고통이라 이대로 유지만 되었으면 좋겠다. 건선성 관절염의 경우 요즘 들어 어깨가 아프고 아킬레스건염이 또 시작이라 가끔씩 경구약도 먹고 있다. 그래도 이건 외국에서도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하기 때문에 엄청 걱정은 안된다.
예전에 엄마가 호주에 가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적이 있다. 호주에 대해 아는거라고는 워킹홀리데이밖에 없었고, 대륙 자체가 유럽이랑 떨어져 있어서 싫다고 했었다. 그런데 요즈에는 호주도 고려하고 있다. 그 이유는 호주가 영국보다는 한국이랑 가깝기 때문이다. 멜버른이나 시드니 쪽으로 가면 대도시라 병원가는 것도 편할 것 같고, 한국가는데도 시간이 줄어 급하면 비행기 타고 서울 오는게 편할 것 같다. 문제는 석사 과정이 호주가 영국에 비해 너무 길다는 것이다. 이제 나도 나이가 있는데 석사를 길게 하고 싶지는 않다. 유학원에서는 영주권을 취득하는 과정이 따로 있어서 그건 최소 2년에서 3년은 해야 한다고 한다. 내가 가려고 하는 학과는 우선 3년 과정이 많았다. 솔직히 영주권을 신청하진 않을 것 같긴 한데 사람 인생은 알 수 없는거지 아예 제외하는 것보다는 포함하는게 나을 것 같기는 하다. 나는 영국이 좀 더 좋기는 하지만... 호주의 경우 입학만 하면 장학금을 주는 곳도 있다. 등록금은 영국이랑 비슷한 수준인데 3년이면 거주하면서 드는 집세나 생활비를 감안해야 한다. 장점은 일도 가능하다는 것. 특히 호주는 임금이 높아 한 주에 조금씩만 일해도 생활비는 커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호주는 날씨가 좋다. 멜버른은 좀 별로지만 시드니나 퍼스만 하더라도 한국의 봄, 가을 날씨가 연중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차라리 내가 살기에는 나을 수 있다.
아직 영국을 포기하지는 못했으나 아쉬운건 등록금이 향후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나라는 매년 등록금을 올리기 때문이다. 장학금 기회도 좀 더 알아봐야 한다. 대부분 학교가 장학금이 없다. 이것저것 비교를 해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텐데 부디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