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일기장을 하나 발견했다.
그 안에서, 내 삶을 간절히 원했던 한 남자를 만났다.
그건 20년 전의 나였다.
가끔 사람들은 내가 아주 오래전에 했던 말들을 꺼내곤 한다.
"네가 그때 이렇게 말했잖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사실은 기억난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할 법한 말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마치 다른 사람이 쓴 문장을 읽는 것처럼.
그제야 깨닫는다.
20년 전의 나는, 이제 타인이다.
만약 오늘 우리가 어느 카페에서 마주 앉는다면, 서로를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다.
쓰는 단어도, 세상을 보는 눈도 너무나 달라졌으니까.
그때의 나는 주말마다 술을 마셨다.
그게 나를 꽤나 근사하고 흥미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믿었다.
지금의 나는 술 냄새만 맡아도 속이 메스꺼워진다.
그때의 나는 잠도 못 잘 만큼 누군가를 지독하게 사랑했다.
지금은 낡은 사진첩을 들춰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저 낯선 이의 일생을 훔쳐보는 듯한 묘한 호기심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네가 한 말이니 책임져야지."
하지만 이제 내 것이 아닌 것을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생물학은 더 정교하게 답을 한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끊임없이 죽고 다시 태어난다.
피부와 뼈, 장기들을 이루는 세포가 하나둘씩 교체되다 보면,
대략 7년에서 10년 뒤의 우리는 물리적으로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20년이라는 세월은 내가 이미 몇 번이나 다시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20년 전에 저지른 일들은,
단지 내 이름을 우연히 함께 썼던 '누군가'가 한 일일 뿐이다.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게 아니다.
하루하루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5년, 10년, 20년의 세월을 건너 뒤돌아보면
옛 일기장이 마치 낯선 이의 기록처럼 읽히는 순간이 온다.
'내가 정말 이런 생각을 했다고?'
'이런 게 정말 나한테 중요했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임계점을 넘어버린 것이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이미 반대편 기슭에 도착해 있다.
20년은 완만한 대체다.
느리고, 조용하며, 완전한.
가끔 아버지를 생각한다.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언어로 대화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여전히 '당신을 자랑스럽게 해드리고 싶어 했던 아들'에게 말을 건다.
하지만 그 아이는 이미 세상에 없다.
다만 나는 그 아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만을 기억할 뿐이다.
오래된 인연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5년 전 절친했던 누군가와 다시 마주 앉아본다.
어떻게든 연결 고리를 찾아보려 애쓰지만,
서로 사랑했던 그 사람들은 이미 그 방 안에 없다.
그저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이제는 몸에 맞지 않는 오래된 연극 대본을 억지로 읽고 있을 뿐이다.
책임이라는 단어는 '연속성'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20년은 단절이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래도 네가 뱉은 말이잖아. 의미가 없다는 거야?"
글쎄. 법적으로는 그렇겠지.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무너질 테니까.
하지만 그 밑바닥에 흐르는 '진짜 감정'에 대해 묻고 싶다.
왜 우리는 18살, 25살, 35살의 나를
마치 어제와 같은 사람인 양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걸까?
20년 전의 나는 지금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결정을 내렸고,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 것들을 사랑했으며,
지금 보면 아주 사소한 것들을 두려워하며 떨었다.
만약 그 시절의 내가 지금 이 방으로 걸어 들어온다면, 나는 그에게 해줄 말이 단 한마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상을 바라보던 그 특유의 눈빛만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곡되고 파편화된 기억 속에만 머물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나를 지금의 모습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 충분히 먼 길을 걸어와 주었다.
오늘 누군가 나의 옛 실수를 들춰낸다면, 나는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 사람은 여기 없어요."
"이름만 같을 뿐, 다른 사람입니다."
나는 그가 저지른 일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가 이룬 성취를 축하하지도 않는다.
그저 인정할 뿐이다. 그는 여기 있었고, 이제는 떠났다는 것을.
20년은 당신을 천천히 지워간다.
너무나 느려서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그러다 어느 날 뒤를 돌아보면 깨닫게 된다.
우리가 건너온 다리는 이미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발자국만은 여전히 선명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