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스타 365 #181
프레드릭 더글라스는 미국 역사에서 빛나는 자유와 평등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인물이다. 노예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부정당한 채 자랐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며 인권 운동가, 작가, 연설가로서 전 세계에 울림을 전했다.
더글라스의 이야기는 노예제 폐지를 외친 것이 아니라, 무지와 억압의 사슬을 지혜와 용기로 끊어낸 한 인간의 얘기다. 그가 읽기와 쓰기를 배우는 과정은 문자 해독을 넘어, 스스로의 운명을 변화시키는 힘을 얻게 되는 여정이었다.
프레드릭이 처음 글자를 배운 것은 주인의 아내, 소피아 올드의 도움 덕분이었다. 소피아는 어린 프레드릭에게 알파벳을 가르치기 시작했지만, 그녀의 남편이 이를 강력히 반대하며 말했다.
“노예가 글을 배우면 자유를 원하게 된다.”
이 말은 어른들에게는 경고였지만, 어린 프레드릭에게는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그는 순간 깨달았다.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갇혀 있던 세계를 해방시키는 과정임을.
그 후로 거리의 백인 아이들과 친해져 단어를 배우고, 버려진 신문과 책을 몰래 읽으며 스스로 글을 익혔다. 한 단어, 한 문장을 해독할 때마다 자신을 억압하던 세계의 틀을 깨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다.
더글라스의 배움은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그의 읽기와 쓰기는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의 강력한 사례다. 자기 효능감은 자신이 어떤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더글라스는 읽기를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깨닫고, 억압적 환경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며 스스로를 변화시켰다.
그는 읽기와 쓰기를 통해 자신을 재구성(self-reconstruction) 했다. 노예라는 사회적 정체성이 아니라, 지혜롭고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간 것이다. 글을 읽고 쓴다는 행위는 더글라스에게 자신의 얘기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 일이었다.
프레드릭 더글라스에게 글자는 감옥의 열쇠이자, 묶인 사슬을 끊어내는 도구였다. 그는 글자 하나하나가 자유로 가는 다리처럼 느껴졌다. 쓰기와 읽기는 그에게 어두운 방 안에서 처음 빛을 본 순간처럼,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재정의하게 했다.
그가 쓴 첫 문장은 어둠 속에서 깨어나는 작은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올랐다. 종이 위에 적힌 글자들은 그의 마음에 새겨진 희망과 의지의 증거였다.
프레드릭 더글라스의 얘기는 우리가 스스로를 가두는 벽을 허물고 새로운 길을 찾는 용기의 상징이다. 읽고 쓴다는 행위는 여전히 삶에서 변화를 만드는 열쇠로 존재한다.
더글라스는 말했다.
“지식은 인간의 위대함으로 가는 문이다.”
이제 남은 질문은 단순하다. 손에 쥐어진 열쇠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삶이 무겁게 느껴질 때, 한 권의 책을 열어 보라. 그리고 더글라스가 그랬던 것처럼, 글자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해 보라. 작은 시작이 마음을 해방시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별처럼 빛나는 눈을 가진 소녀가 있었다.
총성이 울려도 어둠이 내려앉아도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
지식을 향한 열망이 깃들었고
펜 끝에서 흐르는 글씨에는
자유의 숨결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말랄라 유사프자이
침묵을 강요받은 세상에서
그녀는 글을 쓰고 말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배움이 주는 자유를 위해
세상을 일깨웠다.
파키스탄의 스와트 계곡 아침 햇살이 산맥을 넘어 마을을 비추었다.
말랄라는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고 책가방을 둘러멘다. 가방 속에는 자유로 가는 열쇠, 책이 가득했다.
하지만 거리에는 위압적인 공기가 감돌았다.
무장한 탈레반들이 벽에 검은 글씨로 경고를 적어놓았다.
“여자들은 학교에 가지 마라.”
하지만 말랄라는 멈추지 않았다.
학교에 들어선 순간, 친구들의 환한 미소가 그녀를 맞이했다.
칠판 위에서 글자들이 춤추고 책장은 희망의 날개를 펴듯 펼쳐졌다.
그곳은 감옥이 아닌 해방이었다.
책 속에서 그녀는 더 넓은 세상을 만났고 배움이 주는 기적을 경험했다.
그러나 어느 날 어둠이 찾아왔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버스가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덜컹거렸다.
그때였다.
“말랄라 유사프자이, 너냐?”
거친 목소리가 차 안을 가로질렀다.
순간, 총성이 울렸다.
시간이 멈춘 듯 공기는 얼어붙었다.
말랄라는 쓰러졌지만
그녀의 신념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깨어난 순간
배움의 자유를 향한 그녀의 외침은 더 커졌다.
말랄라의 이야기는 인간이 가진 자기 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과 관련이 깊다.
심리학자 데시와 라이언(Deci & Ryan)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때 가장 큰 동기와 만족을 얻는다고 말했다.
배움을 향한 말랄라의 갈망은 자율성(Autonomy), 유능감(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이라는 세 가지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켰다.
말랄라는 주어진 억압 속에서도 스스로 배움을 선택했다. 자율성이다.
배움을 통해 그녀는 강해졌고, 세상을 바꿀 힘을 길렀다. 유능감이다.
그녀는 다른 여성들과 함께 교육의 권리를 외쳤고, 세계는 그녀의 목소리에 응답했다. 관계성이다.
"탄력적 사고(Resilient Mindset)" 개념도 적용된다.
트라우마를 겪고도 다시 일어서는 힘
말랄라는 총격을 당했지만,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전 세계를 향해 교육의 중요성을 외쳤다.
말랄라는 자신의 책 <나는 말랄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아이, 한 교사, 한 권의 책, 그리고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녀에게 학교는 날아오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글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얻었고 세상을 바꿀 꿈을 꾸었다.
책은 그녀에게 날개였다.
묶여 있던 현실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게 하는.
총알은 그녀의 몸을 꿰뚫었지만
그녀의 신념을 꺾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총성은 더 많은 사람들의 귀를 깨웠다.
학교는 희망을 키우는 토양이었다.
그곳에서 배움이라는 씨앗이 자라 자유의 나무로 뿌리를 내렸다.
말랄라는 불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촛불이었다.
어둠이 아무리 깊어도 그녀의 불꽃은 세상을 비추었다.
종종 생각한다.
배움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일까?
책을 펼칠 수 있는 자유
의문을 던지고 새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자유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자유
하지만 어떤 곳에서는
그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말랄라가 총을 맞았던 이유도 단 하나였다.
그녀가 배우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당연한 것들을 너무 쉽게 잊는다.
학교에 가는 길이 얼마나 소중한지
책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말랄라는 말하는 듯하다.
"너는 지금 자유로운가?"
나는 묻는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싶은지도 모른 채
정해진 길을 걷고 있는 우리들은 정말 자유로운가?
말랄라에게 학교는 자유였다.
배움이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가르쳐준 가장 큰 진실은 이것이다.
교육이 없는 곳에는 자유도 없다.
교육이 있는 곳에서는, 어떤 억압도 영원할 수 없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