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기억의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상처가 날카롭게 다가왔다. 날카로운 칼날로 마음을 베어내던 친구의 배신, 말없이 조용히 스며드는 어둠과 같았다. 여전히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따뜻한 말과 웃음 속에 감춰진 날 선 가면, 그날의 숨결은 차갑고도 잔인했다.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를 지탱하던 시간들은, 한순간 부서져 내렸다. 해 질 녘의 붉은 노을이 한순간에 어둠으로 물들듯, 그토록 환하게 빛나던 기억은 어둡고 고요한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배신은 오해나 작은 실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쌓아 올린 성을 무너뜨린 바람 같았다. 바람은 영혼 깊은 곳까지 흔들어 놓았다.
나는 질문했다.
'어째서였을까?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대답은 오지 않았다. 대신 침묵이 찾아왔고, 침묵은 내 안에 거대한 틈을 남겼다. 세상이 멈춘 듯한 그 순간, 스스로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
시간은 흐르고, 상처는 희미해져 갔다. 하지만 자주 잊고 살던 어느 날, 문득 지나가는 바람 속에서 그날의 냄새가 스쳐 지나가곤 했다. 그러면 나는 여전히 아픔을 느끼며 다시 마음의 파편을 긁어모았다. 파편 속에는 여전히 빛나던 순간들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우정이란, 처음부터 깨지기 쉬운 유리잔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배운다.
배신이 남긴 아픔은 나를 단단하게 했고, 우정을 더 깊이 이해하게 했다. 나의 세계는 다시 다듬어졌고, 고요한 평화를 찾았다. 배신은 나를 쓰러뜨렸지만, 결국 그 속에서 다시 일어났다.
파도는 바위를 깎아내지만, 바다는 바위를 품는다. 그렇게 배신의 흔적 속에서 나를 발견한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