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모든 생명의 마지막인가, 혹은 또 다른 시작인가. 우리는 저마다의 신념으로 이 질문에 답하며, 종교는 신념에 길을 내준다. 삶이 끝나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인류는 오래전부터 그 너머를 상상해 왔다.
불교에서는 윤회의 굴레 속에서 영혼이 끊임없이 새로운 몸을 찾아 나선다고 한다. 한 생에서의 선업과 악업이 다음 생의 형태를 결정짓는다. 티베트의 사원에서 스님들이 낭송하는 <사자의 서>에는 죽음과 환생의 길이 적혀 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깨어남의 순간이며, 어둠의 터널 너머에는 새로운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영혼은 생전의 선택과 믿음에 따라 심판을 받고, 영원한 안식으로 혹은 끝없는 어둠으로 인도된다. <신곡> 속 단테는 지옥의 심연과 천국의 찬란함을 노래하며, 신의 사랑이 죄인들에게조차 한 가닥 빛이 되어 스며든다고 말한다.
이슬람에서는 죽음이 곧 알라의 뜻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심판의 날, 모든 영혼은 다시 깨어나고, 믿음을 지킨 자들은 축복받은 정원의 문을 통과한다. 영원한 생명과 기쁨의 세계, 그곳에서는 강물이 꿀처럼 흐르고, 향기로운 바람이 살결을 스친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죽음이 곧 긴 여행의 시작이었다. 죽은 자는 오시리스 앞에서 심장의 무게를 재야 한다. 깃털보다 가벼운 마음을 가진 자만이 아루의 들판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 피라미드의 벽화에 새겨진 신화들은 죽음을 맞이한 영혼이 미로 같은 어둠을 지나 마침내 빛 속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사후 세계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과학은 영혼의 실재를 증명하지 못했고, 죽음 이후의 경험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묻는다.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은 어디로 가는지.
삶과 죽음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번져 있다. 죽음이란 삶의 끝자락에서 서서히 퍼져 나가는 먹물 같은 것. 하지만 먹물이 번져야 한 편의 그림이 완성되듯, 죽음이 있기에 삶은 더 선명해진다. 종교가 전하는 다양한 믿음들은 저마다의 색으로 그림을 채운다. 천상의 노래로, 업의 윤회로, 심판의 순간으로, 혹은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는 낙원으로.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순간을 지나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를 향한 상상과 신앙이 있기에, 살아 있는 동안 더 진실한 삶을 꿈꾼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