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 아침, 문득 창밖을 보니 서리가 유리창을 흐리고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온 안개가 눈가에 맺힌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이유 없이 눈물이 차오르고 작은 말 한마디에 마음이 휘청거린다. 몸은 멀쩡한데 세상이 무겁게 내려앉은 듯한 느낌. 우리는 그것을 마음의 감기라고 부른다.
감기처럼 그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특별히 약한 사람만 걸리는 것도 아니고 삶이 나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햇빛 아래서 환하게 웃던 사람에게도, 늘 단단해 보이던 어른에게도, 사랑을 주던 사람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스며든다. 왜 우리는 이토록 쉽게 마음의 감기에 걸리는 걸까?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은 학습된 무기력감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의 마음이 쉽게 좌절하고 무너지는 이유를 설명했다. 반복되는 실패와 통제 불가능한 상황은 뇌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신념을 심어주고 이는 우울감과 불안, 자기 비하로 이어진다.
또한 현대 심리학에서는 감정이 ‘느낌’이 아닌 인지적 평가의 결과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건보다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마음의 상태가 달라진다. 누군가의 무심한 한마디가 나를 향한 무관심으로 해석될 때 마음은 감기에 걸린다. 현실보다 해석이 아픈 것이다.
정신의학에서는 마음의 감기를 ‘우울증’ 또는 ‘불안장애’라는 이름으로 분류한다. 정체는 매우 생물학적이다. 뇌에는 감정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 예컨대 세로토닌(serotonin), 도파민(dopamine),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이 있다. 이 물질들의 균형이 무너지면 이유 없이 슬프고 무기력하며 작은 자극에도 과도하게 반응하게 된다.
의사들은 이것을 ‘뇌의 감기’라 부르기도 한다. 독감처럼 뇌의 회로에 일시적인 염증이나 기능저하가 발생하는 것이다. 감기에 걸리면 몸이 아프듯 이 감기에 걸리면 마음이 아프다. 치료는 약물과 상담이라는 백신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으며 무엇보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현대과학은 스트레스가 호르몬 체계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한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뇌는 코르티솔(Cortisol)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 호르몬은 단기적으로는 집중력을 높이고 몸을 각성시키지만 장기적으로는 면역체계를 약화시키고 뇌의 해마(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부위)를 손상시킨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뇌의 구조를 변화시키고 감정 조절 능력을 떨어뜨린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평가받는 환경은 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과도하게 분비시켜 마음의 면역력을 점점 갉아먹는다.
철학자 파스칼은 말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가장 연약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가장 고귀한 사유의 주체라는 의미다. 이 말처럼 인간의 마음은 태생적으로 깊고 섬세하며 쉽게 흔들리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문학 속 인물들은 종종 아무도 모르게 무너지고 다시 조용히 일어선다. [페스트]의 리외처럼, 아무런 확신 없이도 버텨야 하는 시간이 있고,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무감정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되묻기도 한다. 마음의 감기는 존재적 허무와 실존적 고통의 표면에 피어오르는 증상이다.
감기는 바이러스가 침투해서 생기는 것이지만 마음의 감기는 외부 자극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연약함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사랑하고 잃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감기에 걸린다. 즉, 살아 있다는 증거로서 마음은 아프다.
마음의 감기에 걸렸다고 해서 당신이 나약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당신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다만 우리는 이 감기가 깊어지지 않도록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 마음이 아프면 쉬고 말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감기처럼 마음의 감기도 치료될 수 있고 지나갈 수 있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마음 한구석이 저릿하다면 당신도 아마 살짝 감기에 걸린 것일지 모른다. 괜찮다. 누구나 그렇다. 그러니 너무 오래 혼자 앓지 않기를. 창문을 열고 햇살을 들이듯 당신 마음에도 빛이 들기를. 감기는 지나간다. 그리고 마음도 다시 피어난다.
그건 과학도 철학도 의학도 설명하지 못하는 인간만의 회복력. 그 이름은 희망이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