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손길이 도시락으로
남해안 끝자락
바람이 짠내를 안고 불어오는 항구 도시, 통영
그곳에서 김밥은
무언가를 가득 넣는 것이 아니라
비워냄으로 완성되었다.
이름은 ‘김밥’이지만
속은 텅 비어 있다.
밥과 김,
단출함으로 말하는 도시락
그러나 빈 속을 탓하지 마라.
참된 맛은
곁에 놓인 작은 반찬 접시에서부터 시작되니까
새하얀 오징어는
매콤한 양념에 물들어
살짝 씹으면 쫄깃하고 은근히 단맛이 배어난다.
오도독,
무김치는 시원하고 아삭하게 혀를 깨운다.
그리고 그 곁에
작고 소박한 김밥들이 조용히 놓여 있다.
김은 바다의 살갗처럼 반들거리고
따뜻한 밥은 손끝으로 꼭꼭 눌러 쌌다.
밥알 사이사이
통영의 해풍이 스며 있는 듯한
정갈한 온도
입안 가득
짠맛과 단맛,
매운맛과 부드러움이 한순간에 밀려온다.
그 맛은 꼭
섬마을의 파도 같다.
물러서지 않고
서로를 감싸 안으며 번져가는 풍경
충무김밥은 원래
시장통에서 일하던 어머니들이
김밥의 변질을 막기 위해 속을 비우고
반찬을 따로 담아 만들기 시작한 지혜에서 비롯되었다.
김밥이 아닌 삶이었다.
시간과 노동 속에서 태어난
맛의 방편이자 따뜻한 배려.
작고 얇은 김밥 조각 안에
김이 눅눅해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싸던 손길은
지금도 통영의 바람 속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작은 도시락은 말한다.
“비워서 채우는 법도 있다”
“간소함 속에서도 감동은 깊어질 수 있다”
충무김밥은
음식이자 시(詩)이다.
속을 채우지 않아
도리어 곁에 놓인 반찬 하나하나에
마음을 기울이게 하고
입에 넣는 순간
통영의 바다와 사람
그리고 시간이 천천히 씹힌다.
그것은 떠나는 이를 위한 도시락이었고
남겨진 이를 위한 마음이었다.
충무김밥은 ‘비움’이 주는 깊은 맛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절제된 정성
허기보다 마음을 채우는 음식
지금 내 앞에 놓인 한 줄의 김밥이
어쩌면 가장 다정한 안부일지 모른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