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곰탕

뼈와 시간을 우려낸 고요한 품격

by 은파랑




나주는 말이 느린 도시다.

호남평야가 펼쳐진 넉넉한 들판처럼

이곳의 음식도, 사람도

천천히 우러난다.


그 중심에는

흰 국물 속에 담긴 깊은 품격

나주 곰탕이 있다.


곰탕은 '시간'이다.


사골과 양지, 사태, 잡뼈까지

한 솥에 담아

밤을 지새우듯 고요히 끓여낸다.

기름을 걷고

또 걷고

투명한 듯 뿌연 국물이 나올 때까지

보글보글

그리도 오래 묵묵히 끓인다.


한 그릇에는

탱글탱글하게 썰어 올린 소고기

가느다란 대파 몇 가닥

소금 한 꼬집

절제된 고명 속에서

진짜는 국물의 깊이로 말한다.


나주 곰탕의 핵심은

좋은 쇠고기와 맑은 물

그리고 시간이다.

잡내를 없애기 위한 생강도

잡스런 향을 덧붙일 양념도

과하지 않게

고기의 결을 살리고

국물의 투명한 깊이를 존중할 뿐이다.


밥과 따로 나오는 것이 나주식

흰 밥을 곰탕에 툭툭 말아

한 숟갈 떠보면

은은한 고소함과 진한 단맛이

입 안에서 천천히 퍼진다.


옛날 나주는

호남을 잇는 교통의 요지

장터와 물길이 모이던 도시였다.

장사치와 나그네들은

길고 피곤한 하루 끝에

속을 풀어주는 따뜻한 국물을 찾았고

그때마다 나주 곰탕이

말없이 그들을 안아주었다.


쇠고기를 넉넉히 쓰는 것은

나주가 예부터 소의 고장이기 때문

농경 사회에서 소는 귀한 자산이었지만,

잔칫날 경사 날

소 한 마리 잡아

온 마을이 곰탕으로 함께 나눴다.


국물 속에는

고기를 아끼지 않던 나주의 인심이 담겨 있고

한 뼘의 자부심이 따뜻하게 스며 있다.


나주 곰탕은

큰 소리 내지 않는 음식이다.

자극도 없고

색도 진하지 않다.

그러나 숟가락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묵직한 여운이 있다.


아무 말 없는 국물 속에서

우리는 마음을 덥히고

잊고 지낸 시간을 되새기며

천천히 자신을 위로한다.


나주 곰탕을 먹는다는 건

뜨거운 무게가 아닌

깊은 배려를 받아들이는 일


하얀 그릇 안에서

고기와 시간, 마음과 역사

모든 것이

오늘도 조용히 끓고 있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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