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메밀국수

들풀처럼 순하고 바람처럼 시리게

by 은파랑




강원도의 품

푸르른 산맥을 안고 흐르는 작은 고장, 평창

눈이 내리고 녹는 자리마다 메밀이 피어난다.

하얀 꽃밭 너머, 햇살 한 줌에 말린 바람과

맑은 물 따라 흐른 정성이

메밀 국수가 되어 입 안에 스미고


평창의 여름은 유난히도 청명하다.

해발 고도 높은 산간의 맑은 공기

그리고 그곳에 뿌리내린 메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이 작물은

억척스러운 강원도의 품성을 닮았다.

그렇게 태어난 국수 한 그릇은

겸손한 마음의 밥상이다.


메밀가루에 물을 조금 넣고 조물조물

삶는 동안 퍼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뽀드득. 소리 나며 잘게 끊어지는 면발

면발 위로 푸른 김가루가 흩날리고

반으로 갈라진 삶은 계란이

새하얀 산골길의 달처럼 떠 있다.


시원한 육수는 멸치, 무, 다시마가 만나

맑고 깊은 맛을 냈다.

첫 입에선 얼얼한 시원함


둘째 입에선 고소한 메밀 향이

혀끝에 사르르 녹는다.

‘후루룩’ 소리에 마음도 따라 흘러간다.


그 맛은 바람이다.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여름 오후의 기억


메밀국수의 유래는 오래되었다.

함경도에서 시작되어

강원도 산골로 내려온 메밀의 여정

일제강점기 시절, 밀가루를 대신해

더 귀한 밥상이 되었고

6·25 전쟁 이후

서민의 위로가 되었다.


평창의 할머니들은

장터에서 손수 메밀가루를 빻아 국수를 뽑았다.

손등엔 메밀가루가 하얗게 묻었고

손은 늘 따뜻했다.

온기가 면발을 타고

지금 우리 식탁에 이른다.


평창 메밀국수를 먹을 때면

무언가 울컥 올라온다.

그건 아마

잊고 지낸 순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흙냄새, 바람소리

푸르던 어린 시절의 오후들

그때 먹던 국수는

이렇게 시원하고 따뜻했다.


메밀국수 한 젓가락에

평창의 산과 바람이 실려 있다.

그리운 이를 떠올리는 맛

마음을 씻어내는 맛

그리고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조용한 용기의 맛이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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