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재첩국

작고 투명한 기억의 물결

by 은파랑




물비늘이 부서지는 지리산 자락 끝, 섬진강은 한 편의 시처럼 흐른다. 이 강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조용하고 순박한 고장 하동이 제 몸을 드러낸다.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 사이로 작고 투명한 생명이 자라난다. ‘재첩’이다. 재첩국은 이 고장 사람들의 숨결을 품은 음식, 강과 삶이 함께 끓여낸 투명한 국물이다.


작은 조개의 조심스러운 몸짓이 담긴 이 음식은 맑디맑은 국물 속에 담담히 펼쳐진다. 부추가 푸르게 스며들고 마늘의 향이 살짝 어깨를 기대듯 어우러진다. 국물은 투명하지만 깊다. 반들반들한 재첩살이 혀끝에 톡 하고 터지면 짭짤한 바다의 기억과 시린 강물의 서늘함이 입안에 퍼진다. 팔팔 끓는 냄비 속에서 사르르 흔들리는 재첩살은 꼭 누군가의 속삭임처럼 다가온다.


“지글지글… 팔팔… 보글보글…”


아직도 그 강가를 걸으면 재첩을 채취하던 아낙들의 손길이 들리는 듯하다. 허리춤에 바구니를 달고 조심스럽게 물을 가르던 모습. 어느덧 작은 손짓은 한 그릇의 국이 되어 식탁 위에 올랐다. 그릇을 들면 바람이 스며든다. 고향의 냄새가 난다.


하동 재첩국의 유래는 아주 오래전 강이 강답고 마을이 마을다웠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마가 지나간 뒤 강이 맑아지면 마을 사람들은 앞다투어 재첩을 잡으러 나섰다. ‘첫 재첩을 잡으면 한 해가 복이 온다’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그 국을 끓여 이웃에게 나눠주었고 누군가는 먼 길 떠나는 아들에게 보온병에 담아 쥐여주었다.


이 국을 마시고 나면 속이 뜨끈하다. 뜨겁지 않은데도 속이 데워진다. 텅 빈 마음에 조용히 내려앉는 햇살처럼. 재첩국은 마음을 적시는 음식이다. 그것은 시처럼 조용히 읽히고 노래처럼 가만히 흘러간다.


하동 재첩국. 그것은 추억이고, 강물이고, 고향이다.

작고 투명한 것들이 모여 만든 깊고 잔잔한 위로.

한 모금 마시면 어머니의 숨결이 따라온다.

그리움이 목을 넘고 고요가 가슴에 내려앉는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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