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나는 바르셀로나를 처음 방문했다. 그때쯤 <꽃보다 할배>의 두 번째 시즌이 전파를 탔다. 그 시즌의 메인 여행지는 스페인이었는데, 나는 그 방송을 보고 ‘가우디’라는 건축가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 방송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르셀로나에 가게 되었고, 방송을 보고 꼭 가고 싶었던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보러 갔었다. 투어는 신청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따로 공부를 해간 것도 아니었다) 그냥 유명하다는 구엘공원과 사그라다 파밀리아만 보고 왔다. 나의 첫 번째 가우디에 대한 감상은 “아, TV에서 보던 거랑 똑같네. 멋지다! 굉장하네. “ 이상 끝.
그런데 가우디의 대표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유난히 계속 맴돌았다. 성당 안에서 보았던 햇빛에 비친 스테인드 글라스가 자꾸 기억에 남았다. 그때의 잔상은 종종 나의 첫 유럽 여행을 돌이켜볼 때 떠오르는 가장 첫 장면이 되었다.
5년 후, 스물여덟의 내가 바르셀로나를 다시 가기로 결심하고 제일 먼저 알아본 것은 가우디 투어. 가우디를 다시 한번 제대로 보고 싶었다. 물론 예전처럼 무작정 찾아가서 볼 수도 있지만, 이번엔 좀 더 알고 나서 보고 싶었다.
카사 바트요는 현재 츄파츕스 회사의 소유이다
가우디 투어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다. 투어는 보통 가우디의 대표 건축물들을 반나절 동안 돌면서 핵심을 쏙쏙 짚어주는 족집게 강의처럼 진행된다. 우선 ‘카사 바트요’ 앞에 집결해 제일 먼저 가우디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이 건물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다. 카사 바트요는 보는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 별명으로 불리는 건물인데, 이 곳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가우디의 건축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카사 밀라
카사 밀라
다음은 ‘카사 밀라’. 당시 최신식 시설을 자랑하는 입주식 아파트였지만, 흉측한(?) 외관 덕에 입주는 처참히 실패했다. 엄청난 공사 비용으로 건물주마저 빚을 떠안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가우디도 세간의 혹평을 피할 수 없었던 건물이었다고 한다.
이쯤에서 가우디가 어떤 사람인지 슬슬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건물에도 신앙심을 표현할 정도로 가우디는 굉장히 신실했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고, 사용한 재료나 기법에서도 자연과 최대한 조화로울 수 있게 많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세상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 본인만의 철학이 확고했던 사람이었다는 게 건물에서도 느껴졌다.
구엘공원의 명물 '도마뱀 동상'
구엘 공원
버스를 타고 시내에서 좀 떨어진 ‘구엘 공원’으로 향했다. 5년 만에 다시 찾은 구엘 공원은 설명을 곁들이니 전엔 안보였던 것이 보였다. 가우디는 요즘 말로 ‘배운 변태’였다. 건물을 이루는 토대 하나하나 디테일했다.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철저히 계산되어 지어졌는데,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처럼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다가 나중엔 헛웃음이 나왔다. 대단한 사람.
구엘 공원 '마켓'의 천장
구엘 공원 천장의 장식
구엘 공원 테라스에 올라 바라 본 전경
*가우디의 최후의 순간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조각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분량상의 이유로 생략합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검색을 해보시길 추천드려요!
사그라다 파밀리아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가족 성당)’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성당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가우디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의 마지막은 그의 찬란했던 역사와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그가 바라던 마지막 순간도 아니었을 것이며, 그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이었으리라. 당대의 건축가 가우디는 (그의 명예와 달리) 초라하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전경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도착해 성당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을 수 있었다. 디테일이 하나하나 살아있는 성당 외관의 조각들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교했다. 성당은 외관 조각을 통해 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그것을 몸소 느끼게 해 준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성당으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빛은 그 빛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가만히 감싸준다. ‘신이 우리를 안아준다면 이런 느낌일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괜히 위로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아, 이것 때문이었구나. 이 정체모를 위로감이 나로 하여금 이 성당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게 하는 이유였다.
사그리다 파밀리아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내부 모습
건물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가우디가 바라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가우디는 이곳을 찾는 이들이 국적이나 종교에 상관없이 이런 위로를 받고 나가기를 소망했을까? 그의 생각과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위로를 받은 것은 확실했다. 두 번째 방문임에도 첫 번째로 방문했을 때처럼 큰 감동이 밀려왔다. 5년 전엔 정교한 건축물이 대단해서, 지금은 그 건축물을 만든 가우디라는 사람이 경이로워서 감동을 받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햇빛이 들어오는 모습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내부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아직 공사 중이다. 후세의 건축가들이 가우디의 뜻을 받들어 공사를 이어가고 있다. 언제 이 성당이 완공될지는 모르지만 (2026년 예정) 완공된 후 다시 찾아와 완성된 모습을 보고 싶은 소망이 내 버킷리스트에 추가되었다. 올 때마다 다르게 감동을 주는 가우디는 이 곳을 다시 찾은 내게 또 어떤 감동을 줄까 기대도 된다.
나는 감정이 풍부한 편이기도 하고, 내가 감동을 쉽게 받는 유형의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평소에 건축물을 보고 감동을 받은 경험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가우디의 간절했던 진심이 내게도 전해져 감동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가우디는 그의 손길에 진심을 담았고, 그것은 건축물로 남아 그의 작품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전했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무언가에 진심을 다한다면 언제가 되었든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방에게 진심이 전해지긴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