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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Jul 08. 2021

키우기로 했습니다, 고양이.

육묘 일기:D-14~D-1

D-14


"이제 결정할 때가 됐다. 우리 집에 새 식구를 들일지 말지에 대해 제대로 논의해보자꾸나."


결혼식도 끝났겠다, 9박 10일간의 긴 신혼여행도 마쳤으니 매번 미루고 미뤘던 이 사안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해봐야 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안건은 우리 집에 새 식구를 들이는 일.


5년의 연애 동안 반동거와 다름없는 생활을 했던 우리는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하지만 그때는 둘 다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살고 있던 오피스텔이나 자취방은 '애완동물 금지'조항이 있었다. 그러니 나중에 '우리만의 집'이 생긴다면 반려동물을 꼭 데려오기로 결심했었다.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 우리는 결혼을 했고, 그러다 보니 우리가 꿈꿔오던 '우리만의 집'이 생겼다. 집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며, '애완동물 금지'조항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 (물론 은행과 공동소유, 현관문까지만 우리 것이지만...)



2003년생 고양이, 페니




귀엽고 사랑스럽겠지. 하지만 정말 단점도 많아.



나의 본가에는 18년을 산 묘르신이 계신다. 이름은 페니, 당시 남동생의 짝꿍이 지어준 이름이다. 내 고양이는 수컷인데, 페니는 여자 이름이었던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초딩일 때 만난 이 묘르신은 어디 아픈 곳 없이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털이 길고 무지하게 빠지는 장묘종의 페르시안 고양이랑 함께하는 삶이란 귀여움만으로는 극복해야 할 산이 정말 많다. 우선 고양이 털과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외출한다고 보면 된다. 화장실을 잘 가리던 아이가 뜬금없이 바닥에 내려놓은 가방에 오줌을 싸서 그 가방은 버려야 했고 (물론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은 내 잘못이다), 매일 그루밍을 하다 몸안에 헤어볼이 만들어져 그것을 카펫에 토해내면 토사물을 치우고 카펫을 빨아야 한다. 엄마 아빠가 큰맘 먹고 산 가죽소파는 이미 그 아이의 스크래쳐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 모든 단점들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어쨌건, 나는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을 살아본 경험이 있고, 나의 반려인은 동물과 함께 살아본 경험이 전무하다. 그래서인가 처음엔 나보다 반려인이 더 적극적이었다. 나는 유튜브에서 '고양이의 단점'만 찾아서 보여줬고,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만 찾아서 보여줬다.


"까만 옷은 이제 못 입을 거야. 내 화장실도 치우기 귀찮은데, 고양이 화장실은 매일 치워줘야 해."

"까만 옷은 돌돌이 하면 되고, 화장실 그까짓 거 치울 수 있어!"


내가 나이가 들 수록 나의 늙은 고양이도 나이가 든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 눈빛을 보며 가슴 한편으론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 엄마에게 전화해 페니의 안부부터 묻고, 영상 통화로 아이가 건강하게 놀고 있는 모습을 봐야 마음이 놓인다. 이별을 준비한다면서 찰나의 순간도 놓치기 싫어하는 이 아이러니란. 


한 생명이 내 삶에 온다는 것은 이런 일이다. 내 인생의 반을 넘게 함께 살아온 이 아이가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사리 인정하기 어려운 것. 그렇기에 나보다 수명이 짧은 새로운 생명을 또다시 내 삶에 들인다는 것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미뤘던 것 같다. 고양이가 주는 행복감은 엄청나지만, 벌써부터 이별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묘생길(유기묘 또는 길고양이 입양 홍보 페이지) 인스타그램을 계속 훑어봤다. 사실 신혼여행 때부터 자꾸 눈에 밟히는 4남매 아기 고양이들이 있었다. 그 당시 나이로 막 6주가 된 이 아이들은 태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었고, 눈도 뜨지 못한 상태에서 다행히 마음씨 좋은 분들에게 구조되어 임시보호를 받고 있었다. 신혼여행지에서도 남편에게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며 어떠냐고 물어보고, 엄마한테도 보여주고, 임보하고 계신 분 인스타에 들어가 입양이 되었는지 안되었는지 염탐(?)도 계속했다.


계속 질척이며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끙끙 앓는 나를 보며 남편은 그럴 거면 키우자고 했다. 같이 잘 키워보자고. 쉽지 않을 거고, 어려운 일도 많겠지만, 둘이서 같이 잘 이겨내 보자고. 


"그래. 우리 키우기로 하는 거야. 고양이. 대신 처음부터 공부도 제대로 하고, 정말 행복하게 해 주는 거야."


결국 가족회의의 안건은 통과했고, 나는 바로 사진을 들이밀었다. 


"나는 얘네. 연락해볼까? 입양되었냐고."


남편에게 물어봄과 동시에 나는 이미 임시 보호하고 계신 집사님에게 DM을 보내고 있었다. 다행히 입양이 결정 나지 않은 아이가 있었고 (사실 네 마리 중 누구여도 상관없겠다 생각했다.) 그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입양신청서를 작성하고 집구석 구석 영상을 찍어서 보냈다. 



D-13

집사님에게 연락이 왔다. 한번 만나서 대화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D-12

남편 퇴근 후 집사님을 만나 뵙고 왔다. 아이의 임시 이름은 크림이고, 크림이 사진과 영상을 왕창 구경했으며, 크림이는 먹보라는 이야기도 듣고 왔다. 먹보인데 참 깔끔하게 먹는다고 했다. 



(구)크림이 사진





그리고 그날 집에 돌아와 잘 준비를 하고 누웠는데, 집사님의 카톡이 왔다. 



크림이의 집사가 되신 것을 축하드려요!



와 미친! 남편과 나는 난리가 났다. 우리는 집사가 된다. 크림이라는 먹보 아기 고양이의 엄마 아빠가 되는 거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묘연이라는 게 정말 있나 보다. 내가 입양신청서를 보냈던 그때, 임보자(임시보호자) 분은 크림이를 입양 보낼 곳을 거의 결정해놓으셨고, 그 집 가정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고 하셨다. 


내가 하루만 늦었더라면 우리는 크림이와 함께 살 수 없었다니!


D-11

필라테스 끝나고 다이소에 들러 방묘창으로 쓸 네트망을 사 왔고, 방묘창을 설치했다.


D-10

크림이의 이름을 정했다. 나는 엘리, 남편은 승리, 그리고 고양이는 '젤리'. 듣기만 해도 말랑하고 달콤하고 쫀득한 이름. 크림이는 젤리가 되었다.


D-9

아이들이 그렇게나 좋아한다는 묘래박스 화장실을 샀는데 생각보다 너무 커서 반품했다. 크림이는 아직 아가인데, 우리 마음이 급했다. 


D-8 ~ D-1

임보자분과 틈틈이 연락하며 젤리의 주식 캔, 건식 사료 등 필요한 물품을 준비했다.




* 젤리의 일상을 다루는 VLOG 채널을 개설했다. 궁금하신 분은 여기 링크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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