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괜찮은 당신에게

두 번째 편지

by 유은강

‘우리는 꼭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걸까?’

‘무언가 되려는 욕망은 누가, 언제 내 마음에 심어 놓은 걸까?’

‘무엇이 되는 일이 그토록 중요할까?’

요즘 제가 자주 하는 생각입니다.


저는 항상 ‘무언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적 꿈은 변호사, 작가, 화가 등등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고,

대학에 다닐 때도, 졸업을 하고 나서도

‘무언가’ 되기 위해 부단히 애썼습니다.


그럴 듯한 무언가,

사람들이 알아주는 무언가,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

나를 채워줄 무언가.

그 ‘무언가’가 제게 너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할 때마다

저는 너무나 아팠습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는 ‘명문대’에 제 모든 존재 가치와 삶의 의미를 걸어야 했고,

남들이 알아주는 예술가가 되겠다는 저의 욕심은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연기하고, 글을 쓰는 그 모든 즐거움을 앗아갔습니다.


무언가 되고 싶다고 욕망할 때마다 어떤 함정에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바위를 산꼭대기로 올리면 떨어지고, 올리면 또 떨어지는 시지프스 신화처럼

소위 ‘꿈’이라고 통칭되는 ‘무언가 되려는 마음’은 저를 가장 높은 곳으로 데려가

온갖 화려한 것들을 보여주고는 바닥으로 떨어뜨려 제 모든 것을 산산조각 냈습니다.


우리는 일찍부터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너무나 너무나, 정말 너무나 많이 받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 생일에 받은 그 ‘돌상’부터 발로 차서 엎어버렸어야 했습니다.

그 어떤 어른도 제게 지금 당장 무엇이 하고싶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은 항상 제게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었고,

그들은 그 질문을 함부로 휘두르며 매 순간 저를 ‘무엇’에 아직 닿지 못한 ‘미완의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는 그 순간, 우리는 모두 현재를 빼앗기고 아무 것도 아닌 ‘未’의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제게 무언가가 되라고 합니다.

셀프 인테리어를 하는 제게 인테리어 사업을 하라고,

요리를 곧잘 하는 제게 작은 가게를 내라고,

글을 쓰는 제게 책을 만들라고,

연기를 하는 제게 오디션을 보라고,

그러면 저는 그 말들에 엉덩이가 들썩이고, 귀를 팔랑이며

또 다시 그 무거운 바위를 산 꼭대기로 올릴 준비를 합니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끔찍하고 지겹습니다.


저는 이제 너는 할 수 없다는 말만큼이나

너는 할 수 있다는 말도 싫습니다.

그 말이 지금까지 저를 너무 힘들게만 했습니다.

그 말은 지금까지도 제게 따라붙어

저를 욕망하게 하고, 자꾸만 노력하게 하고, 비교하게 하고, 좌절하게 만듭니다.


편지가 점점 길어집니다.

그만큼 제가 이 문제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는 것이겠지요.

조금만 더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년에 친구의 추천으로 <인간실격>이라는 드라마를 본 일이 있습니다.

드라마 초반, 주인공 이부정(전도연 扮)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울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부지 나는 아무 것도 못 됐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 것도 못 됐어. 결국 아무것도 못될 것 같아요.”


2년전 배우가 되겠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저는

여러 학원을 전전하며 모아둔 돈을 전부 써버리고,

두 번의 입시에 실패했고,

2년 동안 단 세 편의 공연을 올렸습니다.


노래는 혼자 코인노래방에서만 부르고,

글은 이렇게 가뭄에 콩나듯 쓰다가 말아버리고,

그림을 마지막으로 그린 게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인간실격> 부정의 대사처럼

저는 아무 것도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요즘 무언가 되려고 안간힘을 썼을 때보다

훨씬 편안합니다. 잠도 잘 잡니다.

저는 요즘 그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오전 알바를 하고,

집에 돌아와 밥을 차려 먹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혼자서 영화를 보고,

많이 걷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아무 것도 아닌 채로 아무렇지 않게 지냅니다.

이제서야 아주 조금씩 조금씩 그 ‘무언가 되려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알 것 같습니다.


아무 것도 되지 못했다며 서럽게 울던 부정은

마지막 화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나는 이제야 아버지가 제게 세상에 태어나

무엇이 되는 것보다 무엇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내내 눈으로 몸으로 삶으로 얘기해왔었다는 걸

아주 조금씩 천천히 깨달아가고 있어요”


저는 오늘 아침 까페 문을 열어 손님들을 맞이하고,

점심으로 김밥을 먹었습니다.

오후 두 시에 새로 일하게될 동료들과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습니다.

또 이렇게 편지도 한 편 썼네요.


당신은 오늘 무엇을 하나요?

무엇을 하고 있나요?

제가 묻고 싶은 것은 그것 뿐입니다.


2022.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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