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에 대한 박 병태의 詩 4편
恩山 박병태
끝내줍니다. 어머니, 더 없어요?
마실 온 형 친구들은 우리 집에서
항상 동치미를 찾았다.
어머니는
부족한 살림이라 소금 말고는 넣은 게 없다며
겸손을 담은 큰손으로
고구마와 동치미를 한 광주리씩 내놓았다.
그런데도 먹성 좋은 형 친구들은
두세 번씩 어머니를 더 찾았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내일 당장 우리 식구 먹을 게 없을지라도
한결 같이 수북하게 내놓으셨다.
일제강점기,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어 소학교만 나오셨지만
6.25 동란 피난골인 우리 마을에서
어머니는 제일 유식하셨다.
전후 복구, 새마을운동, 신작로, 지붕개량......
개척 기를 온몸으로 맞이하며
야학당처럼 동네 부녀회를 이끄시고
자식들 공부 잘해봐야
부모들 뼈골만 빠진다는 비아냥을
못 들으셨을 리 없으련만
어머니는 자식들 교육에는 한없는 투자를 하셨다.
새댁 시절 꿈이었던 분가(分家)를 위하여
새벽부터 16시간씩 일을 하고도
내 땅이 생기는 재미에 힘든 줄 모르셨다는 어머니
나이 들어 늘그막에는
자식들 학비에 허리가 끊어져라 일을 하고도
졸린 눈 비비시며 찢어진 달력 쪼가리라도
하루 기록을 남겨
고층 아파트처럼 쌓아두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삐딱이처럼 허리가 휘신 뒤에도
온 마을에서 기억력이 가장 좋으셨다.
누가 보는 이 없을지라도
아침저녁으로 제일 큰 장독대에 정안수 올려놓고
동서남북 합장으로 가족 평안을 위하셨고
한겨울 동지섣달
꽁꽁 언 우물 깨어 정갈하게 목욕하시고
모두들 잠들 녘과 잠 깰 녘에 지성으로 바쳤던 기도소리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멈출 줄을 몰랐다.
앞으로 그리고 우측으로 허리가 꺾이셨을 즈음
뒤늦게나마 서울로 모셨을 때도
변함없이 똑같은 생활 습관에
내공까지 쌓이셔서
무량 천도 최고 수장 도령으로 추대되셨다
직장생활에 취한 날 밤에는
어머니 곁에 잠이 들었고
그때마다 들려오던 기도소리에
나는 고향 꿈을 꾸었다
지금도 어쩌다 고향 꿈을 꾸지만
어머니의 기도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조만간 시간을 내어
어머니 산소에 가봐야겠다.
恩山 박병태
누님, 오디 기억나세요?
그땐 참 뽕나무가 숱하기도 했어요
어머니 성화에
누님과 누에 밥 따러 갈 때면
달달한 오디가
새까맣게 떨어져 있었지요
누님은 오디를 주워
하나 둘 예쁘게도 담았지만
전 혓바닥과 입술이 까매지도록
오디를 주워 먹었지요
지금이야 오디가 흔하지 않고
어쩌다 재래시장 귀퉁이에 나오기도 하지만
어디 그 맛만 할까요?
누님, 요즘 세상 참 웃겨요
옛날 누님과 배고파 먹던
오디며, 산 버찌며, 뱀딸기까지
다 웰빙식품이래요
새까맣게 내려앉은 파리 떼 쫓아내고
쉰내 없애려고 찬물에 헹구어 먹던 꽁보리밥이
고가의 웰빙식인 거 아세요?
저도 어느새 옆구리 살 나오는
중년 직장인으로
회사 사람들과 보리밥집을 갈 때가 있지요
그래도 가기만 갈 뿐
보리밥을 못 먹고 흰밥 시켜먹어요
세상 음식 다 먹을 줄 아는데
보리밥만 못 먹어요
어렸을 때 너무 질리게 먹었나 봐요
제사나 명절 때만
먹을 수 있었던 흰밥이 지금도 좋아요
누님도 보리밥 안 좋아하지 않으세요?
세월 많이 흘렀지요?
하긴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때니
오디도 보리밥도 50년 전 이야기네요
허리 아프다고 하신 거 같은데
일어설 때 조심하고
오래 서 있는 거 하지 마세요
누님, 우리 아파트 옆에
아담한 집 하나가 있는데
그 집주인 아저씨도 저와 비슷한가 봐요
조경나무로 뽕나무를 심었어요
오디를 주시길래 효소를 담았는데
오염된 오디라며 애 엄마가 못 먹는대요
누님께 드리고 싶었는데
다 부질없는 거였어요
버리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뿌듯하네요
누님, 어제 보게 되어 반가 왔어요
편안한 귀갓길 되세요
恩山 박병태
장인어른은
나를 항상 Mr. Park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그것이 특별한 감정이란 걸
나중에 알았다
장인어른은
미 8군을 평생직장으로 두셔서
빵과 커피를 많이 즐기셨다
키는 작았으나 눈썹은 누구보다 짙고 길었다
평상시는 말 수가 적었지만
속정이 깊으셨다.
천둥과 번개가 치던 날
이태원의 어느 길 가에서
스키드 마크 소리가 어둠을 찢을 때
머리에 구멍이 뚫리고
붉은 비가 거꾸로 내렸단다
그 후로 장인어른은
비가 한쪽으로만 내렸는지
편마비 증세셨지만
어색하지 않은 동작으로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소보루 빵을 나눠주거나
길거리 쓰레기를 하루 종일 치우거나
좋아하는 것과 싫은 것을 분명히 가르셨다.
그러다가
나만 보면 허허하거나 춤을 추셨다
얼마 전 선영 방문 길에 만난 김천의 어르신들은
“자네가 상수 사위인가?”
“자네 장인이 큰 일을 많이 하셨다네”
여기저기 칭찬일색이다
큰일을 많이 하신 분인데
내가 처갓집 식구들 몰래
추가로 하나 더 준비한 것은
커피 한잔과 소보루 빵 한 개였지만
생전에 가장 즐겨하셨던 것이니
부족하지만 충분했으리라 믿으며
그분의 허허로운 춤사위를 떠올려 본다
恩山 박병태
맺힌 땀방울은 스치는 바람에
둥지를 틀지 못하고
폭신한 산책길엔 미소 가득 산책객들이
활기차게 산보하는 곳
비스듬히 누운 남산의 저녁 길은
사뭇 신선하구나
명동역을 나와 골목길 중턱쯤에서
줄지어 기다리는 저녁식사와
솔잎 몇 개 함께 띄운
목멱 산장 차 한잔은
으스름 달빛과 함께 추억을 부른다
높다랗게 치솟은
서울타워 옆에는
꽉 찬 만월이 복점처럼 붙어있고
그림 같은 풍광에 함께 잡힌 여인
밤에 피는 장미처럼
빛나는 그대는
저녁 산책길에 손잡고 따라나선
아름다운 아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