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얼굴이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민낯, <얼굴>

영화 리뷰

by 은사자의 SEE네마

프롤로그


9월 한국 영화 기대작, 연상호 감독의 신작 <얼굴>은 미스터리 장르의 외형을 빌려 우리 사회에 깊이 새겨진 ‘낙인’을 응시하는 작품이다.

낙인이란 지워지지 않는 불명예, 혹은 사회가 덧씌운 욕된 평가를 의미한다.

영화는 지워진 얼굴을 통해 단순히 아름다움의 기준을 묻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이 세상을 작동하는 불평등의 이치, 그리고 우리가 외면해 온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

미사여구 없이 묵직하게, 과장된 연출 없이 오로지 배우와 이야기의 힘만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미스터리한 진실을 그린 작품.


오늘의 영화 <얼굴>이다.



지워진 얼굴과 사회적 낙인


영화 <얼굴>은 40년 전 실종된 한 여인을 둘러싼 기억과 그녀의 외모를 평가하는 사회적 시선을 통해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우리는 타인의 얼굴을 통해 정체성을 판단하고, 존재를 인식한다. 영화는 그 얼굴이 지워진 자리에 남은 사회적 낙인으로, 사회적 기준이 얼마나 임의적이며 얼마나 많은 이들을 소외와 불명예 속에 몰아넣는지를 보여준다.



간단한 줄거리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세상을 볼 수 없었던 시각장애인임에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장을 만들어내는 장인 ‘임영규’(권해효)와 그의 아들 ‘임동환’(박정민)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40년 전 실종된 아내이자 어머니 ‘정영희’(신현빈)의 백골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것.

‘얼굴’조차 알지 못했던 어머니가 살해됐을 가능성을 듣게 된 임동환은 아버지 임영규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PD ‘김수진’(한지현)과 함께 어머니의 죽음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40년 전 어머니와 청계천 피복 공장에서 일했던 동료들의 기억을 통해 어머니의 가려진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얼굴’이라는 상징을 통해 단순한 외형이 아닌 존재와 기억, 사회적 시선이 한 인간을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보지 못하는 이의 시선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만난 어머니의 가족들과 청계천 공장 동료들은 한결같이 어머니를 “못생겼다”는 말로 평가한다.

반면 남편이자 시각장애인 전각 장인 임영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손끝으로 새기는 존재로,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시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영화는 이 대비를 통해서 시각 중심의 사회가 규정한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이는 곧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외모 지상주의와 타인에 대한 가치 평가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성찰로 이어진다.

연상호 감독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해묵은 질문을 꺼내 들어 관객에게 “본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사유하게 만든다.



가려진 얼굴, 절제된 연출

이야기의 본질에 집중하다


영화 전반에 걸쳐 어머니 정영희의 얼굴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사회적 편견과 기억의 공백 속에서 지워진 존재를 은유한 의도된 연출로, 그녀의 ‘얼굴’은 기억과 사회적 시선을 담는 상징이 된다.

2억 원의 제작비, 촬영 기간 3주, 20명 남짓의 소규모 스태프로 완성된 저예산 독립영화 <얼굴>은 제한된 환경 안에서 오로지 이야기의 본질에 집중한 작품이다.

이처럼 영화는 어두운 공간, 최소한의 조명, 흐릿하게 처리된 얼굴 등, 보이지 않는 것을 오히려 더 강하게 인식하게 만든다. 이러한 방식은 연상호 감독이 대규모 상업영화에서 보여주던 호흡과는 다른, 날카롭고 실험적인 도전이다.



염세주의 작가, 연상호 감독

1인 2역 박정민, 배우들의 열연


연상호 감독은 데뷔작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에서 이미 사회의 폭력과 계급 문제를 드러냈다.

또한 <사이비>에서는 종교를, <부산행>에서는 재난 상황 속 인간 군상을 통해 한국 사회의 집단 이기주의를 비판적으로 보여줬다.

<얼굴>은 그 연장선에서, 외모와 존재, 기억과 진실이라는 주제를 통해 연상호 특유의 염세주의적 세계관을 이어간다. 그러나 이전 작품들이 집단 속의 사회 문제를 전면에 드러냈다면, 이번 작품은 개인의 내밀한 관계에 집중하며 한층 더 철학적이고 미묘한 사회 비판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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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뛰어난 지점은 배우들의 열연과 연상호 감독의 이야기에 있다.

특히, 노 개런티로 출연한 박정민 배우는 젊은 시절의 임영규와 아들 임동환을 동시에 연기하여, 아버지와 아들을 잇는 세대와 시간의 흐름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노년의 임영규에게 삶의 무게와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낸 권해효 배우의 존재감 또한 압도적이다. 그리고, 얼굴이 보이지 않음에도 목소리와 몸짓만으로 인물의 자취를 남긴 신현빈 배우 역시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충분했다.



지워진 얼굴, 가려진 진실

불편한 우리 사회의 민낯


영화는 우리에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놓인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청계천 의류 공장은 1970~80년대 산업화 시대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노동과 억압, 불평등이 얽힌 역사적 공간 속에서 영화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응시한다.



이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불평등의 구조이다.

연상호 감독은 지워진 얼굴을 통해 그 현실을 상징으로 압축하며, 타인을 규정하는 시선과 낙인의 폭력성을 목격하게 한다.


“우리는 왜 타인의 얼굴을 규정하고, 어떤 기준으로 존재의 가치를 평가하는가.”

한 가족의 미스터리를 넘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 <얼굴>이다.



에필로그


내가 아름다운 거 추한 거
그런 거 구분 못할 것 같아?
예쁜 건 존경받고 추앙받고,
추한 건 멸시받아.

- 영화 <얼굴> 중에서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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