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을 견디는 방법

저 인간을 내 소설에 한번 등장시키자 마음 먹으면 모든 게 참을 만 해요

by 소은성

나의 표정은 진정성 넘친다. 미간의 두 줄 주름은 그의 인터뷰 경력만큼이나 깊게 패어있다. 탁탁탁탁. 열 손가락이 번개처럼 키보드 위로 내려 꽂힌다. 인터뷰이의 말을 한 단어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인터뷰이의 답변에 바로 '아, 그렇군요!' 리액션을 하는 대신, 3초 정도의 기다림을 두는 내공. '당신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는다'는 표시로서, 출퇴근길에 간간히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 왔다. 5초는 위험하다. 자칫, 딴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


나와 인터뷰이 사이의 대리석 탁자에는 마카롱과 케이크가 놓여있지만 먹는 것은 금물이다. 진지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특히나 지금 내 앞에 앉은 사람 같은 경우라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89세의 미술계 원로. 옥노인이라고 칭하자. 아들은 한국 미술계의 1인자. 부와 자가 한 계파로, 한국 미술계를 좌지우지한다는,그런 가문. 마루는 검게 빛나는 대리석. 마당엔 서른 그루의 구불구불 노송. 집 안에는 안전장치가 달린 갤러리가 있다. 어떻게 사람 사는 집이 이토록 차가운 인상을 줄 수 있을까. 귀신도 우아하게 등장할 것 같은 그런 집. 포토그래퍼의 앙증맞은 자동차는 언덕 아래로 미끄러질 뻔 했다.



옥노인의 집은 그 위용만으로 야코를 죽일 법 했다.

그런데 내 알 바는 아니고.

내가 미술계 꿈나무도 아니고.

잘 보일 필요 없었다.

그저 내 인터뷰이일 뿐. 어쩌면 내 글의 등장인물일 뿐.

기자에게는 100세 노인이건 7세 아이이건, 모두 평등한 존재일 뿐.

아마도 이런 생각이 내 표정에 배어나와 그를 자극했던 듯 하다.


"자네는 어떤 학과를 나왔는가?"

"네.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자신감있게 답했고, 옥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말을 알아는 듣겠어?"

"네? 무슨 뜻이죠?"

(이때 아무 말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걱정이 태산이구만. 국문과 졸업생을 보냈어? 미대를 안 나왔다니. 끄응."

(졸업한 지 10년이 넘었기에 나도 가물가물한 전공을 가까스로 기억해냈다)

"네. 제가 미대 전공생보다 잘 알아듣겠습니까? 하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첫 질문은 가볍게 던질 때가 많다. 그저 요즘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냐 물었다.

"하루? 하아루우? 하루가 무엇인지 아는가. 하루와 일년을 다르게 볼 수 있는가?"


갑자기 나에게 호통을 쳤다. 이게 말로만 듣던 선문답인가. 화도 나고 하품도 나왔다. 이유없이 역정을 내는 선생님의 지루한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강신주나 김어준 같은 스타일? 난데없이 승질 부리는 부류들. 그래, 한국사람들은 이런 '역정 내는 현자' 스타일 사랑하지.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 후로 3시간. 워드 창에는 그냥 내 할 말을 썼다. (다음의 핑크색 글씨들이다)

똥소리, 똥소리, 똥소리.


"나는 세상 부귀영화에 한 점 관심이 없어. 예술가가 재물에 욕을 품으면 그게 예술가인가. 예술은 공과 허로부터 나오는 것. 무슨 말인지 알아는들어? 듣고 있어?"

'여기 평창동 한옥인데. 이 집 시가가 20억은 넘을 텐데... '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기에 인터뷰 거절하려고 했지. 뭘 알아는 듣겠어?

서울대, 홍대 미대 출신이 아니면 내 말을 못 알아듣지.

'미친 학벌주의자. 한국사회의 병폐. 000, 바로 그 이름.'


나무 한 그루 같은 마음으로 사는 거야. 그저 자연의 일부처럼.

'저 정원의 노송들, 엄청나다. 정원사 월급으로만 수백은 될 거 같다. 자기 손으로 다듬어보긴 했을까.'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렸지. 남북 통일평화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그은 선이야 이게. 알아들어?

'일제 때 그 정도 사셨으면 100% 친일파. 과거를 부정하고 싶겠지.

그러나 당신의 존재가 바로 그 증가. 친 투 더 일 투 더 파.'



"하루를 고심하고 다다다다다다다, 달려가는 거야. 화폭 앞으로.

그렇게 점 하나를 찍지. 영혼의 힘으로 그리는 게 그림이지. 무슨 말인지 알아는 들어?"


순간 내 눈에 눈물이 맺힌 게 화근이었다. 새하얀 비단 한복을 입은 초로의 화가가 하루를 고심해 점 하나를 찍기 위해 달려나가는 액션을 보면서, 정말 뭉클했다. 내 감정의 상당 부분은 주책스럽게 비어져 나온다. 눈치도 없이.


그는 정말 성이 나서 자기 아내를 보며 나를 손가락질했다.

"졸아? 내가 이야기를 하는데 졸아? 저....저....한심하군. 한심해."

현실에서 쯧, 쯧, 쯧 혀를 차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만화 주인공처럼 혀를 찼다. 쯧, 쯧, 쯧.


억울해서, 항변했다.

"아닙니다. 감동해서 눈물이 납니다. 정말 감동했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옥노인은 나를 더욱 적극적으로 미워하기 시작했다. 미움이 화살처럼 날아와 꽂히기에, 이 정도로 마무리해도 좋을 것 같다, 기사로 쓸 내용이 풍성하다고 웃으며 말했으나.

"어딜? 앉아. 더 들어. 2시간 가지고 뭘 알아들었겠어."

엉거주춤, 다시 앉았다. 3시간이에요. 울고 싶었다. 집에 가고 싶다.


조용히 타자를 쳤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 제때 죽어서 남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아야 한다.”




사근사근한 포토그래퍼가 그를 데리고 정원에 나갔다. 무려 1시간 동안 갖가지 포즈로 촬영했다.

"노인의 얼굴. 뭣을 하러 찍으려나. 아무 의미 없는 것을. 잡지가 글이 좋으면 그만이지."

말과 행동이 너무 달랐다. 촬영을 그만두게 하지도 못했다. 조금 더, 조금 더 찍자고 했다.


거동이 불편하다면서 아내의 손은 뿌리치고 젊은 여성 비서에게 부축을 하라고 시켰다.


청소를 하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그럴 수 없어, 단 것이나 먹었다.


테이블에 남은 케이크를 모두 먹어치웠다. 부잣집이라 그런지, 유기농 케이크인 것 같았다. 단맛이 깔끔하고 크림도 느끼하지 않았다.



“글을 왜 쓰세요?”라는 수강생의 질문에 답을 하다가 문득 저 기억이 떠올랐다.

“뭐...세상을 구할 것도 아니고..” 망설이다 말했다. “저를 구하기 위해 씁니다.”


내게 글쓰기는 때로 비명이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숨쉬기였다. 화가 나서 누군가를 때리거나 소리치는 대신, 이맛살을 찌푸리고 마음을 썼다.

그것이 책이 되지 않았어도. 그것이 내 명예를 드높이지 않았어도.


그 덕에 글쓰기로 밥을 벌어먹은지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쓰는 일을 하루하루 더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나의 구원이므로.




촬영과 취재를 모두 마치고 나왔다. 차문에 키를 꽂으면서 포토그래퍼가 씨익 웃었다. 서울말씨를 버리고 고향 말씨를 쓰는 그녀.

“기자님, 내 다 봤데이.”


온몸이 간질거리면서 웃음이 폭발하려고 했다.

“봤어요?” 능글맞게 물었다.

야아, 이제 우리 자유다. 높은 언덕을 천천히 내려가면서 차 안을 험담으로 수북히 채웠다.


“아이고. 내 간땡이 똑 떨어질 뻔 했데이. 기자님이 얼마나 노트북을 부술 듯이 내려 치는지. 화가 사모님이 바로 옆에 앉았는데, 보이면 어쩔라구.”

“아, 보면 보는 거지.” 나는 호기를 부렸다.


“그치. 보더라도 어떻게는 못할 거야. 자기네 쪽팔린 일이니까?”

“그쵸. 그런 사람들 쪽이 좀 비싸?.”


아무말이나 씨부렁거려도 되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고된 근무 후 집에 돌아와 브라를 벗어던지고 수면바지를 입을 때같은 해방감이었다.


기자님, 우리 다음에 만나서 소주 마셔요.

네. 꼭 마셔요, 그동안 치욕스러웠던 것 다 모아서 욕하자.



그날 알게 된 것은 두 가지였다. 나에게 ‘저장 강박’이 있다는 것. 장 포토의 말로는 세 문장 쓸 때마다 저장 버튼을 누르더라나. “이 치욕을 반드시 에세이로 쓰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원고료를 받지 않는 글은 일기도 안 쓰던 때라, 실제로 글로 작성하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저, 그래야 견딜 수 있었다. 박완서 작가님이 '박완서의 말'에서 하신 말씀대로,


무례하고 무신경한 인간을 만나면 생각했다.

저 인간을 언젠가 내 글에 등장시키겠다 마음 먹으면 치욕도 견딜 만했다.


다른 하나는 한국 드라마 속 전형적인 커리어 우먼 스타일의 장 포토가 이미지와 달리 굉장히 따스하고 구수한 사람이었다는 것. 나의 ‘욕 원고’를 그녀에게 들키지 않았다면, 우리가 도보 15분 거리에 살며 반찬과 과일을 나누는 사이로 살지 않았을 거라는 거다. 내 솔직한 마음을 글로 쓰면 누군가는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




검색해 보았더니 여전히 생존해 계시네.

내 욕을 많이 드셔서 몇 살 더 사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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