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전국 1등이 되고 싶은 건 아니라서
“먹히는 글은 나 자신이 아닌 독자의 눈높이를 정조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먹히는 글은 나의 만족과 무관하다는 이야기다. 좋은 글이 자기 만족적인 이기적 성향을 갖고 있다면 먹히는 글은 타인을 만족시키는 이타적 성향을 띤다.”는 문장을 읽었다.
한 작법서에 나온 것을 리트윗으로 보았다. 동의하지 않는다. 좋은 말, 맞는 말, 옳은 말, 만고에 지당한 말. 그런 말에 화가 난다면, 이유를 짚어봐야 한다. 하나하나 뜯어보겠다.
우선 ‘먹히는 글’이라는 워딩이 천박하다고 생각한다. ‘천박하다’는 단어가 지나치다면? 품위가 없다고 하겠다. ‘먹히는’ ‘정조준’처럼 대단히 한국적인 워딩이 싫다. “먹히는 글을 써서 독자의 마음을 저격하세요” 같은 제목의 강의가 인기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먹히는 글은 나의 만족과 무관하다”는 문장을 쓸 수 있는 쓸데없는 단호함도 싫다. 그리고, 거짓말이다. ‘먹히는 글’을 대체 왜 쓰려고 하는가? 물건을 팔아야 하나요? 브로셔 문구? SNS 홍보글? 그러면 먹히는 글을 쓰면 된다. 독자에게 먹히는 글 써서 책 팔아서 부자 되려고요? 그 꿈은 깨는 게 좋다.
당신이 커머셜 라이팅(상업적인 글)으로 밥을 벌고 있다면, 인정한다. 그렇게 하라. 직업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계정관리자라면 '독자를 정조준'해야 한다. 논문, 업무용 글도 독자가 중요하겠다. 그렇다면 저 작법서에서 ‘글’을 주어로 삼으면 안 되었다. 대체 어떤 글이 독자에게 철저히 복무해야 하는지 밝혀야 한다.
언제나 최초의 독자는 나다. 내가 만족하는 글이 무엇인지 관찰해야 한다. 특히 소설, 에세이, 여행기, 일기, 저널, 논픽션 등은 우선 작가가 만족해야 하지 않나. (현실은 그렇지 않으나) 논문, 업무용 글, 신문기사, 잡지기사도 궁극적으로는 그랬으면 좋겠다. 글은 자기만족을 위해 쓰는 것이다. 그래서, 쓰는 이의 자기만족을 ‘이기적’이라고 칭하는 둔함도 싫다.
묻고 싶다.
뭘 쓰면 기분이 좋으세요?
뭘 쓰고 싶어 안달이 나죠?
뭘 쓰면 마음이 개운한가요?
뭘 쓰면 행복하지요?
뭘 쓰면 눈물이 나죠?
뭘 쓰면 싸우고 싶어져요?
뭘 쓰면 당신이, 진짜 당신이 된 것 같나요?
그 감정을 따라가라고. 그게 당신의 지도라고. 감히 말한다.
솔직히 말하자. 독자를 ‘후려치는’ 스타일의 작법서에 질렸다. 화려한 글감옥에 들어가라느니(네가 감옥 들어가면 집안일은 누가 하고?), 시를 쓰려면 시처럼 살으라느니(그러니까 밥은 누가 버냐고)하는, 구름 위에 둥둥 뜬 신선같은 작법서에도 질렸다. 너무 많이 샀다.
독자를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로 여기고 혼쭐내는 작법서도 봤다. 그런 작법서, 그런 강의를 듣고 상처를 받은 사람도 보았다.
“자기만족하는 글이다” “이 글 쓰레기네.” “지루하네.” “자질이 없네” 같은 합평이 난무하는 글쓰기 수업도 있다고 들었다. 혹평을 이겨내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자학을 극복해야만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오해. 나는 또 고개를 젓는다. 가짜 권위에 고개를 젓는다.
후일담식 작법서도 질렸다. 와세다 대학에서 매년 강의하면서 '나는 와세다에서 얻은 게 와이프밖에 없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쿨한 태도도, 쿨에 열광하는 독자들도 별로다. 작가들의 무용담은 그저 재미를 위해 들으면 된다. (매우 좋아하는 1인)
작법서에 줄을 치다보면, 글쓰기로부터 멀어지기도 한다.
모든 스킬을 익히기 전에 전장으로 나가면 안 될 것 같다. 비난을 받을 것 같다.
완전한 불행보다 불완전한 행복으로
영어 공부를 하면서 글쓰기 공부와 무척 비슷하다고 느꼈다.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고, 공부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통번역 대학원에 가서 영어 동시통역가가 될 것이라면,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어를 쓰면서 행복하고 싶다면, 그런 엄격한 태도는 방해만 된다. 미드를 영어로 볼 때 행복한지 여행에서 영어로 친구를 사귈 때 행복한지 관찰한다. 발음과 억양을 신경쓰느라(글쓰기에서 독자의 만족을 고려하느라) 말할 때마다 긴장이 되고 주저된다면, 차라리 행복하고 불완전한 영어를 하는 게 낫다. 언어는 자기 표현이니까.
글쓰는 ‘나’의 만족은 관계없이, 독자만 중요한 글쓰기가 있을까. 창작은 그럴 수 없다. ‘먹히는 글은 쓰는 사람의 만족과는 무관하다’는 말을 30포인트로 써서 책상에 붙여놓아보자. 단 한 줄도 쓰지 못할 것이다. 저주와 같다. 방금 내가 그러했다. 가끔 ‘독자 입장에서 쓰자’고 심기일전할 때가 있다.
10년 정도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보니, 잡지를 팔기 위해 클라이언트의 눈에 들기 위해 편집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쓰는 글에 진절머리가 난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쓰고 내가 우는 글만 쓰고 있다. 내 기분이 좋아지는 글만 쓴다. 글쓰기로 전국 1등을 할 것도 아니니까.
내가 행복한 글을 쓰고 있다고 해도, 독자가 사랑해주지 않기를 바라지는 못한다. 사랑받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니까. 작가라면 이 모순을 평생 끌어안고 살 것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자꾸만 고개를 젓는다. 그 모든 엄격한 강령을 잊으려고 고개를 흔드다. 쓰는 동안만은,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완벽한 구조를 갖추지 않아도 되고,
미완이어도 되고,
어떤 형식이 없어도 된다는 것.
길어도 되고 짧아도 되고
서툴러도 되고 이기적이어도 된다는 것.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떠올린다. 무언가를 갈구하듯 미친듯이 춤을 추던 빌리. 왕립발레학교에 가고 발레의 엄격한 룰을 따르기 전의 빌리를 떠올린다. 어떤 룰도 없는 Angry Dance. 그 광기.
오늘의 글쓰기는, 그런 느낌만으로 충분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mDscdLNCAr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