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을 쓰려고 마스크 팩을 45개 샀다

10분 동안은 집중하겠지, 싶어서

by 소은성

한 명은 가스불에 구워지는 오징어처럼 몸을 뒤틀었다. 이어 또 한 명이 복식 비명을 질렀다. 누구는 고개를 노트북 화면에 파묻고, 또 누구는 넋이 나간 듯 머리칼을 뜯으며 웃었다. 소글워크숍에서 10분 제한 시간 동안 글을 쓴 후, 옆자리 사람이 자신의 글을(비문과 맞춤법 파괴와 시간이 없어 상투적이 되어버린 표현과 감출 시간이 없어 적나라하게 드러나버린 ‘생짜’ 마음을) 읽어 줄 때의 반응들을 조금 과장한 것이다.


나는 연극톤으로 말하며 마녀처럼 웃는다. “고통스러워요? 그러나 어쩌겠어요? 여러분이 스스로, 이 폭우 쏟아지는 날에, 굳이, 피곤한데, 밥도 못 챙겨먹고, 여기까지 왔잖아요. 주도적으로 맛보려고, 이 고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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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쌩 초고'를 보는 경험으로 용기 얻기

워크숍 커리큘럼을 고안하며 ‘급히 쓴 글을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체험’을 넣은 것은 Y 작가의 말 덕분이었다. 30분 동안 휘갈겨 쓴 생 초고 한 편을 Y에게 보여줬는데 실은그렇게 완성도가 떨어지는 글인 줄 모르고...남 프랑스 여행지에서 꽃향이 나는 꿀과 버터를 바른 바게트에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아침식사의 낭만을 찬양한 에세이였다. 여행자로서의 고양감에 반쯤 취해서 모든 문장이 햇살처럼 찬란해 보였다.


. “은성씨 글 읽고 용기가 났어요. 타인의 초고를 볼 경험이 거의 없잖아요. 책들은 모두 퇴고, 교정, 편집을 거쳐 완성된 글이니까, 내가 쓰는 초고가 몹시 초라해 보이기 십상이구요. 은성씨 같은 작가도 초고는 이렇게 헐렁하구나...이래도 되겠구...싶어서 제 완벽주의를 누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잔잔한 충격을 받았으나 긍정적 방향으로 활용했다. 첫째는 내 초고의 완성에 대한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실수로 타인에게 보여줌으로써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으니 어떻게든 고쳐져 책이 될 것이었다. 둘째는 워크숍에 대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초고’를 보는 경험이 작가로서의 용기를 고양시킨다는 점. 슬픈 이야기지만 실용적 측면이라면, 다독이 다작이 지름길인 것만은 아니다. 훌륭한 책을 읽는 만큼 완벽주의는 커져간다. 독서량이 늘어난다면 그만큼 타인의 실수투성이 초고를 잔뜩 보는 경험을 하자. 그 힘으로 완벽주의를 매일 1cm씩 밟아주기로 하자.


완벽주의가 없어서 편안한 사람은 이쯤에서 이 글을 그만 읽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이 글은 완벽주의 때문에 미쳐서 팔짝 뛸 것 같은 나 같은 사람만 읽었으면 한다. 그만큼 부끄러운 이야기다. 프리랜서 기자를 준비하던 시절 글쓰기 아카데미를 두 곳이나 수강하면서 과제를 딱 한 번 냈다! 머릿속의 환상적인 아이디어가 초라한 한글파일에 앉혀져 실체가 되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완벽주의자라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낸 한 편의 과제는 수녀가 된 친구를 인터뷰한 기깔나게 흥미로운 기사였음에도 ‘졸작이다’라는 생각에, 선생님이 리뷰를 해주기 직전에 집에 와 버렸다.


귀가길 내내 ‘내 글은 대왕쓰레기다....'라는 혼잣말 때문에 귀가 터질 지경이었는데, 글을 평가할 기준과 능력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한 것은 실은 ‘완벽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최고가 되고 싶어 안달난 근거없는 자학이 닥쳐오는 일은 하나도 놀랍지 않다.' 타인이 나를 미워하기 전에 내가 먼저 재빨리 나를 미워할거야! 그러면 충격을 받지 않을테니까!' 자학과 자기혐오는 지나친 자기애의 뒷면이다. 평가에 대한 두려움에 대항하는 '범퍼'다. 물론 효과는 별로 없다.



나는 한국 여성의 완벽주의가 OECE 1위를 차지하리란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글쓰기를 하려는 사람들의 완벽주의 지수를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 ‘아이 둘을 키우며 장녀로서 부모님을 챙기고 매일 10시까지 야근을 하면서, 다음 날 자정까지 야근하기로 하고 평일 하루 저녁시간을 내 글쓰기 수업에 오면서 “좀 더 부지런해야 글을 꾸준히 쓸텐데요…”란 말을 하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OECD에 자학 또는 죄책감 분야가 있다면 그 또한 1위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애를 낳으면 맘충/안 낳으면 애국심도 없는 이기적인 여자/워킹맘이라고? 애의 정서는 어쩌냐/전업주부? 남편에게 기생하는구나/같은 소리의 포화가 쏟아지는 전장에서 나고 자라서 자학이나 죄책감을 체화하는 건 개인의 부족이 아니다.


이런 마음은 고스란히 글쓰기를 방해한다. 한국 사회가 여성을 교육시킨 방식 중에 '수치심 강화'가 있다. '지가 잘난 줄 아는 여자'는 험한 꼴을 당한다는 서사가 스미지 않은 매체가 없다.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믿으면 바보 취급 받을 거야." "썼는데 수준이 낮으면 상처받을 테니까 그만두는 게 낫겠다..."라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수치심이 탐구심과 기대, 갈망 등이 좌절시키고 좌절이 수치심을 배가하는 환상의 상호작용! 이 마음은 본디 창작 작업과 아주 긴밀한 사이다.


수강생들은 '잘 써나가다가 문득 '불만족스럽고' '부끄럽고' '바보같다'는 마음이 든다'고 고백해 온다. 예술가의 창작 작업에 언제나 따르는 마음이라 이상할 것은 없는데 문제는 이 마음이 여성에게 더 쉽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완벽주의, 자학, 죄책감을 가뿐 뛰어넘을 글쓰기 주제를 고르기 위해 고심한다. 자다가 일어나서 혹은 달려가서 글을 쓰게 되었을 때의 감정을 물었다. 분노와 억울함, 답답함 같은 감정이 가장 많았다. 분노 감정과 발언 욕구를 활용해 과제를 여러 개 만들었다. 타임와치가 울리면 무조건 키보드에서 떼도록 하면서 말했다. "이렇게 시간이 없으니, 이 글은 우리의 최선이 아니에요. 그저 우연히 10분 동안 생각난 글일 뿐인 거에요." 영화든 그림이든 마찬가지다. 예술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다만 멈출 뿐. 글도 마찬가지다. 끝은 없다. 어떤 시점에서 그저 손을 놓고, ‘다 됐다’고 선언할 뿐. 스스로 선언하지 않으면 죽는 날까지 ‘완벽’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워크숍 동안 10분씩 연습한 '완벽주의 부수기'가 그들이 집에 돌아가 홀로 쓸 때도 작용하기를 기원한다. “손 떼요. 다 됐어요.”라는 나의 카랑한 목소리가 들리길 음흉히 바라면서.




한번은 ‘이전의 대화 중에서 미처 할 말을 다 하지 못해서 답답했던 순간을 떠올리고, 하고 싶은 말을 넣어 새로운 대화로 완성하기’ 라는 주제로 함께 썼다.


완벽주의가 다 뭐냐, 글감 찾기의 어려움이 다 뭐냐. 우리들은 마음 속에 쌓아둔 위대한 글쓰기 책 더미를 단 1초만에 불태워 버리고, 키보드를 부수었다. 10분 동안의 전투가 요란했다.


H는 ‘이런 집에 사는 애가 무슨 디자이너가 된다고’라는 말을 한 친척 할머니를 떠올렸다. 열 살로 돌아간 그녀는 선명한 목소리로 저항했다. “동네사람들, 이 할머니 좀 보세요. 어린이의 꿈을 짓밟는 이상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할머니. 이런 가난한 집에 왜 와서 과자를 축내세요. 자기 집 가세요.” 강의실 문을 나서며 그녀가 내게 속삭였다. “시원해서 죽을 것 같아요.” 내면의 어린아이에게 위로를 전한 H의 눈빛에 강인함이 깃들어 있어서 기뻤다.


M은 명절 때마다 ‘못난이’라고 어린 자신을 놀린 삼촌에 대해 썼다. “저는 제 외모가 좋은데요. 삼촌은 나날이 늙고 있지만 저는 나날이 눈부시게 성장하니까 질투가 나서 그따위 말 한 것 알아요. 어린 조카에게 무례한 말을 한 것 사과하세요." M은 마침표를 찍으며 껄껄 웃었다.. “추석이 내일 모레라서 설레요. 삼촌 만나서 사과하라고 할 거예요.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상관없어요. 기억 못하겠지만 저야 상관없고요. 제가 오늘까지 매일 매일 그 말을 떠올렸다는 게 중요해요. 글로 써도 이 정돈데 직접 말하면 얼마나 통쾌하겠어요.”


쓸 것이 터져나오는 순간의 황홀함을 한번 느끼고, 절대로 잊지 말 것.

매일 ‘글쓰기 무서워 죽을 것 같은 순간’에 꺼내어 볼 것. 완벽주의를 부수는 방법 중에 하나는 이것이다.



PS

완벽주의로는 강사인 내가 수강생들을 너끈히 이길 정도로 세계 최고인데, 불행히도 아무도 나에게 수업을 해주지 않으므로....마스크팩 45장을 샀다. 이 글은 이니스프리 마스크팩 로즈향을 10분간 붙임으로서 시작되었다. 10분 동안 아무 말이나 쓰기 시작했고, 정신차려보니 2시간이 흘러갔다. 창작욕구와 창작공포의 전쟁 속에서, '마스크팩을 붙이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함'을 이용해 완벽주의를 오늘은 그럭저럭 부수었다.







<소글워크숍 맛보기 원데이 클래스>
일시 및 장소: 3월 29일 저녁 7:30-9:30 합정동 씀씀작업실(합정역 도보 7분)
강의료: 3만 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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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안내 블로그 https://blog.naver.com/purple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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