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손필사를 하신다구요? 신앙심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No

글 잘쓰는 사람들의 평생 습관: 필사 Q&A 10+1

by 소은성

1 머리에 들어오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익숙해지는데 5번 이상의 훈련이 필요하다. 처음엔 어렵고 정신없는 게 정상. 그냥 ‘별 생각없이’ 놀듯이 여러 번 시도해 보아요. 우리의 뇌를 살살 속여야 합니다.


2 번역된 소설이나 칼럼을 받아쓰면 번역투가 배는 게 아닐까요?

음, 걱정 붙들어 매시길. 당신이 하루 10개씩 필사할 것이 아니면,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쉽게 '문체'를 따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우리 모두 이미 거장일 듯.

믿을만한 출판사의 믿을만한 번역가라면, 잘못 쓴 한국작가의 소설, 칼럼보다 낫다. 이 또한 Better than nothing. 안 하는 것보다 10배 낫다. 당연하다. 정 염려된다면 번역문과 한국책을 번갈아서 필사할 것.


3 독립출판물, 웹 게시물을 받아써도 좋을까요?

글쎄....필사 초보자라면 권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교정교열이 덜 되어있거나 비문이 많은 경우를 본다. 물론 발상과 표현에서는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N사 블로그 게시글은 절대 No. 문법 파괴의 현장에 가지 마세요.


4 문장부호와 띄어쓰기, 토씨 하나까지 똑같이 써야 할까요?

물론이다. 말줄임표 개수까지 똑같이 할 것. 필사를 매일 하면 따로 교정교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바른 문장, 바른 맞춤법이 자연스럽게 익혀지면, 틀린 것을 봤을 때 ‘어색하고 이상한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photo-1532618261731-e3346f1705bc.jpg

5 손으로 써야 하나요?

아아.....89809번은 받은 질문이다. 시중에는 ‘손으로 하는 감성 필사’에 관한 책들이 정말 많더라. 아마도 그 대상독자는 이 책을 읽는 당신은 아니리. 교회나 성당에 아주 큰 성경책 앞에서 필사하는 신자 분들의 신중한 몸짓을 본 적 있는가. 한 자도 틀리지 않기 위해 온몸의 기를 모은다.


그 필사와 이 책에서 말하는 필사는 ‘목적’이 다르다. 전자는 ‘신앙심 고취’를 위해서요. 후자는 글쓰기 구성력, 어휘력, 논리력 등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니까. 1960년대라면 모르겠으나, 노트북 키보드와 스마트폰 사용자인 우리는 평소에 우리가 쓰는 도구로 필사를 해야 한다. 책상 앞에 앉을 시간도 없다면 다음의 방법을 추천한다.

-> 좋아하는 책, 잡지 등에서 한 부분을 프린트해 버스나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메모장에 베껴 쓴다.

-> 그 정도 시간도 없다면? 눈과 입으로만 읽는다. 그 정도로도 확실히 향상이 된다.

-> 물론 손으로 받아 쓰면서 (혹은 다 쓰고 난 후에) 소리 내어 읽어보면 문장의 리듬, 작가가 선택한 어휘의 적절함과 음성적 느낌을 파악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눈으로만 읽을 때와 달리, ‘작가가 왜 이 어휘와 문장구조를 골랐는지’ 자꾸 궁금해져서 공부가 된다.


6 분량은 얼마나?

신입 기자 시절에는 원고지 15매 정도의 기사 한 편을 매일 받아 썼다. (사실은 아니다. 매일 받아쓰고자 노력을 했다는 소리다. 기억은 미화된다) 한 편을 다 쓰면 해당 주제를 다룬 글의 짜임,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요소 등을 단번에 알 수 있게 되어 즉각적으로 효과가 있었다. 나에게 필사는 일종의 ‘빨간펜 선생님’ 이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좀 멋있어 보이기에 나도 종종 잡지를 몇 장 쭉 찢어서 책상 위에 올려두고 퇴근하고는 했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받아쓰면 여러 면에서 좋았다. 맥주 먹고 예능 보는 자연인 000에서 글 쓰는 000으로 자연스레 변환이 되었다. 징그럽게 글쓰기 싫은 날에 에너지 부스트가 되어서 좋았다.


긴 글 한 편을 모두 받아쓰면야 당연히 좋다. 첫문장, 마지막 문장 쓰는 법은 물론 여러 가지 모양의 글의 구조를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뭐든 Better than nothing. 하루에 5문장, 혹은 일주일에 한 편 같은 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계획해 지켜보자.


7 독서와 필사는 어떻게 다른가요?

오랜 기간, 여러 종류의 기사를 쓰는 ‘프리랜서 기자’로 일했다. 어제는 요리 기사를 오늘은 여행기사를 내일은 인터뷰 기사를 썼다. 잡지사 경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양도 많고 주제도 어려운 기사를 할당 받았을 때는 다급히 ‘샘플기사’를 모아 여러 번 받아쓰며 구조와 요소를 익혔다. 요리기사라면 다양한 맛 표현을, 여행기사라면 여정과 감상 등을 자연스럽게 배치하는 법을 ‘필사’로 스스로 익힌 것이다.


단순히 내용만 파악하고 넘어가는 읽기, 감정적으로 감상하기 등을 넘어 글을 부분별로 나누어 보기, 작가가 글을 쓰는 프로세스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된다. 당장 당신이 써야 하는 글의 ‘샘플’을 모아서 베껴쓰며 익히는 게 최고! 우리는 모방의 동물이다.

photo-1551029506-0807df4e2031.jpg

8 어떤 글을 고를까요? 추천 리스트가 따로 있을까요?

나의 관점과 감각으로 베껴 쓸 글을 고르는 게 필사 공부의 시작이다. 우연히 한겨레 안수찬 기자의 기사를 여러 번 고르고는, 그가 집필한 책들을 모두 산 적이 있다. 롤모델을 찾은 것이었다. 규칙적 필사는 내가 따라하고 싶은 글 스타일을 찾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기본적으로, 내 관심분야라면 (예: 여행, 영화, 책, 야구)효율이 무척 살아난다. 두 번째는 나의 세계관과 너무 다르지 않아야 한다. 당신이 페미니스트라면, 아무리 문장력이 좋다해도 여성혐오를 일삼는 소설가의 글을 베껴 쓸 비위가 없을 것이다.

세 번째는, 내가 잘 쓰고 싶은 스타일의 글을 고르는 것. 당장 시적인 산문을 잘 쓰고 싶다면 김소연 시인이나 박준 시인의 산문을 받아쓰면 된다.

네 번째는 내게 모자란 부분을 강화할 수 있는 글을 고르는 것. 자신에게 논리가 부족한지 감성이 부족한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논리 구조가 탄탄한 칼럼이라면 김찬호, 정희진 칼럼니스트의 글을 권한다.


9 창의적인 것을 좋아해서 필사가 지루하게 느껴져요.

공부는 원래 지루하다. 하지만 정 힘들다면, 필사로 익힌 문장구조에 다른 어휘를 넣어서 내 문장을 새로 만드는 방법을 써보라. 사실은 이것이 필사의 최종 목표니까. 예컨대 인기있었던 책 제목들에 내 주제를 넣어 새로운 제목을 지어보는 것이다. 재미가 있다.


예: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 아들을 잘 키운다는 것,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0 필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괜찮나요?

잘하고 있습니다. 박수를 드려요. 글을 세세히 분석하며 받아쓴다면 당연히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저자가 왜 이런 첫문장을 썼을까, 왜 이 단어를 골랐을까, 글이 어떻게 흘러가는가, 마무리는 어떻게 했는가 등 질문거리를 표로 만들어 적어보면 더 좋다.


11 제목이나 첫 문장만 따로 받아써도 되나요?

당신은 우등생이다. 아주 좋은 질문이다. 취약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받아쓰고 스크랩하면 당연히 효과 있다. 제목을 잘 못 짓는다면 내 마음에 드는/인기있는 글의 제목 100개를 골라 받아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첫문장 100개, 끝문장 100개, 소제(중제) 200개 스크랩하기 등을 권한다.









여성전용 글쓰기 강의 '소글워크숍'입니다.

무엇이든 쓰게 됩니다.

사소한 것을 오래 바라보면 글이 됩니다.


카카오 플러스 친구 '소글'을 친구추가하면 매달 정규강의 수강알림, 원데이 클래스 수강알림이 배달된답니다.

http://pf.kakao.com/_xaMKLC

수업안내 블로그 https://blog.naver.com/purplewater




keyword
작가의 이전글콧노래란   완성할 필요가 없어서 즐겁지-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