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쳐 나온 장소로 되돌아가기, 내 이야기 쓰기와 심리상담의 공통점
명절이다. 열세 살의 나는 마루 벽에 등을 붙이고 부엌을 노려보고 있다. 엄마, 엄마, 엄마. 세 번을 불렀지만 엄마는 듣지 못한다. 엄마, 그만해. 그만하라고. 하지 말라고. 나는 혀가 말려 들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빼앗긴 목소리 대신 흐르는 소리들. 텔레비전에서 쏟아져 흐르는 노랫소리, 박이 터지는 소리, 두 개의 프라이팬을 메운 기름 끓는 소리, 할머니의 가래 끓는 소리, 아버지가 할머니 방의 문을 닫고 들어갔다가 잠시 뒤에 나와 유리가 깔린 식탁을 쳐서 스테인레스 쟁반을 떨어뜨리는 소리. 물방울 같은 전들이 바닥에 뒹군다. 끓는 기름과 아버지의 등을 번갈아 바라본다.
‘어린 시절의 부엌을 떠올리기’라는 글감 찾기 액티비티가 있었다. 손사래를 쳤다. “나 금붕어야. 기억력이 없어. 이십대 이전은 도무지 기억이 안 나.” 눈을 감았고 모든 것을 기억해냈다. “엄살이야, 괜히. 왜 거짓말 해.” 친구들이 웃어댔다. 아이보릿 빛 벽지가 점점 노랗게 물들던 것, 탐구생활 과제로 키우던 거북이가 실종되었다가 한 달 뒤에 발견되었던 창틀(살아있었다), 뺨을 대고 엎드려 있던 책상 위 차가운 유리. 햇볕이 부서지는 날이면 반짝이며 떠오르던 먼지. “먼지가 다 돈이면 좋겠네.” 엄마가 멍하니 읊조리던 것.
기억들은 어딘가에 고요히 앉아 있었다. 온전히 존재하면서, 발견되기를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감는 것. 그리고 장소를 떠올리는 것. 한동안 그것이 ‘분신사바’처럼 짜릿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시켜 보았다. 누군가는 눈을 감자마자 30년 전의 후추 냄새를 기억해 내기도 했다. 엄마가 만들어 준 떡볶이에선 언제나 싸한 후추 냄새가 났어. 하교하면서 현관문을 열고 그 냄새를 맡으면 행복해졌어. 그에게 장소에 묻은 기억은 행복이었다. 질투가 났다.
눈을 감을 때마다 같은 이미지가 떠올랐다. 엄마의 등. 미쳤나, 내 나이가 몇인데 애처럼 엄마 타령이야. 스스로를 혼내봐도 상황은 심화됐다. 하루 세 번, 새로운 메뉴로 밥을 짓기 위해 엄마는 늘 싱크대 앞에 서 있었다. 왜 늘 마루 벽에 등을 대고 앉아 부엌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학교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두서없이 떠들고 싶었다. 엄마가 웃을 수 있는 이야기만 고르는 일에는 신물이 났다.
상장을 받거나 좋은 점수를 얻은 것은 이야기했지만 길 잃은 강아지를 보고 심장 부근이 욱신거린 일, 떠드는 아이 입에 청테이프를 붙이는 교사에 대한 분노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걱정이 되어선 안 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누가 나의 슬픔과 분노에 대해 물어봐 주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늘 마루에 앉아 있었다. 마루는 내가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싸움이 나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게.
이미지는 상징이었다. 엄마.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중압감. 그 무게에 짓눌려 스스로의 감정을 외면하는 것. 그리고 언어에 대해 골몰하기 시작했다. 언어가 없어서 할말로 가득찬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던 시간들이 자꾸만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의 역사를 쓰는 것은 심리치료와 비슷했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장소는 바뀌었는데 인물은 같았다. 한번은 길에서 지폐를 주운 기억을(인생을 바꿀 순간이 당신에게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액티비티였다) 썼다. 1억 짜리 지폐를 주운 중학생의 나는 유럽으로 날아가 공부를 시작한다. 단 5분 동안 쓴 글이었는데도, 기어코 엄마에게 유럽행 비행기 티켓을 보내 집에서 탈출시키는 결말을 냈다. 지긋지긋했다. 친구들은 1억밖에 안되는데 그냥 혼자 잘먹고 잘살지 그러냐며 웃었다.
이때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사가 치료법을 주는 것인 줄 알고 시작한 것이었으나, 내담자가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다. 가장 두려워하는 장소로 매번 돌아가야만 했다. 덮어도 덮어도 솟아오르는 상처는 조개들이 바위에 붙어있는 듯 특정한 장소에 붙어있어서, 나는 시간여행자처럼 이곳과 저곳을 날아다녔다.
창에 비춘, 싸우는 가족들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던 골목 앞이나 어떤 일이 생겨도 내가 지켜 주겠다며 남동생을 끌어안고 웅크렸던 작은 방. 문제집을 집어던지며 오열하던 내 방 안. “지금은 여기 있잖아요.” 소리가 들리면 상담실 안을 둘러봤다. 2019년, 어른이 된 나는, 여기에 있구나. 내 손으로 돈을 벌어 상담을 받는 어른. 나의 상담 날마다 작고 달콤한 케이크를 구워놓고 차를 우리며 기다리는 가족이 기다리는 내 집. 나는 이제는 약한 아이가 아니다, 내 힘으로 새 가족을 만들었다, 현실로 돌아오는 주문처럼 되내었다.
과거의 장소에 돌아갔다 나올 때마다, 산을 넘는 것 같았다. 넘는 만큼 강해졌다.
한때 <헝거>를 성경처럼 늘 지니고 다녔다. 지구의 어딘가에, 나처럼 상처가 연관된 장소를 날아다니는 여행자가 있다는 사실은 구원 같았다.
어떤 페이지를 펴도 그녀는 때로 안쓰러워 만류하고 싶을 만큼 용감했다. 모두가 자신을 ‘걸레’라고 부르는 중학교로. 가까스로 유지해 온 몸에 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절대 채워지지 않는 허기의 구멍에 피자와 프라페와 프렌치프라이를 밀어넣었던 기숙학교로. 위절제 수술 영상을 관람한 후 아직까지 사망환자는 한 명 뿐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클리블랜드의 병원으로. 자신의 체중을 감당하던 의자가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부서져 버렸던 강연장으로. 좋아했던 남학생이 패거리들과 함께 자신을 윤간했던 열두살의 어느 숲속으로. 내가 헐벗고 연약하고 때로는 추한 존재였던 장소들. 내 몸이 있을 곳이 없었던 수십개의 장소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던 곳들로. 돌아가 냄새와 촉감과 온도까지, 모든 것을 기억해내고자 했다.
사투였다. 과거의 기억이 붙어있는 장소로 되돌아가는 것. 애써 도망쳐 나온 장소로 다시 돌아가는일. 그 일을 유예한다면 한 줄도 쓸 수 없는 일이,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장소도 나를 지배하도록 두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세상의 무엇으로부터도 숨지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장소를 바라보는 일은 자기 직면이었다.
시인 존 헤인스가 말했다. '예술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장소를 표현하기 위해, 무모함과 위험, 항복,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작가 배리 로페즈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장소에서 상처를 받아야 한다.'
상처를 받은 장소로 되돌아가 다시 한번 상처를 받기 위해 글을 쓰고 상담을 이어나갔다. 매번 고통스러웠다. 무언가 끔찍한 것이 숨어있을까 봐 몸이 굳었다. 나라는 괴물이 숨어있을까봐 벌벌 떨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왜 과거의 장소를 방문하려 하는지 알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너 지금 어디있어?’ 라는 핀잔을 듣곤 했다. 힘들 때마다 멍해지거나 딴청을 부렸다. 그때 제대로 겪지 않은 것들을 다시 나의 관점에서 서사로 만들어야만 했다. 고통스러울 때 사람은 기억을 은폐한다. 다 잊었다고 말하지만, 누구도 고통을 다 잊을 수 없고 그 단절은 현재에 영향을 준다.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이슈는 어떻게든 현실로 넘실거린다.
문을 열고, 또 다른 문을 열었다. 과거의 나를 방문했다. 잘 있었니, 내가 구해주러 왔어. 누가 널 고통스럽게 하면 내가 함께 맞서 싸워줄게. 어른이 된 내가 아이였던 나를 구원하러 갔다.
상처는 더 이상 열어보면 눈이 타버릴 것 같아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 두려움의 심연을 마주보았다는 것만으로, 온세계를 여행하고 온 것처럼 삶의 에너지를 느꼈다.
자신이 점점 강해진다는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을 얻게 만든 용기를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긍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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