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계에서 발을 헛디딜까 불안하다면
소는 불안증 환자다. 처음 학교에 간 해에는 아침마다 다섯 번 정도 화장실에 들렀다. 학교에는 괴물의 검은 입 같은 화장실이 있어서 그 안으로 실종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불안이 아니었으면 대학에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불안에 추격당하며 공부했다. 왜 하는지는 몰랐다. 놀라울 정도로 나아졌지만, 여전히 불안이 있다. 파우치에는 상태별로 쓸 3가지 아로마 오일과 엘 테아닌을 상비한다. 거리에서 쓰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불안을 다루는 데에 에너지를 많이 쓰기 때문에 격렬한 성공은 다른 분들에게 양보하는 정도?
고백은 자유를 준다. 글쓰기 싫어서 체한 것 같을 때마다, 가장 부끄러운 것 하나를 고백하는 습관이 있다. 오늘이 그렇다.
이십대에는 늘 절절맸다. 세상에 쉬운 게 아무 것도 없는데 그게 오래된 불안 때문인지를 알지 못했다. 자신의 병명을 모르면 거대한 의문에 휩싸이게 되니까. “보고서 가져올 적마다 얼굴이 빨개요.” 다정한 선배의 말에 또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전철역과 회사를 잇는 육교가 두동강 나는 상상을 했다. 남보다 빨리 갔기 때문에 죽을 수도, 지각을 해서 죽을 수도 있었다. 떨어지는 조각이 앞일지 뒷일지 알 수 없으니까. 미칠 것 같을 때마다 술을 마셨는데, 그게 매일이었다. 야근이 이어져서 아무나하고 술을 마시다 보니 동료였다. 마시고는 같이 잤다. 관계의 긴장이 끊어지면 불안하진 않으니까. 층계에서 발을 헛디딜까 불안하면 그냥 단숨에 굴러떨어지면 된다.
기자로 전직하려고 글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글쓰기 강의를 들으니 더 불안해졌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어를 매번 써주면 안 된다고? 길게 늘어져서 독자를 잠들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그때 금지와 금지와 금지와 금지로 이뤄진 강의를 들으며 화가 나서 잠이 왔다. 강사는 기성 글처럼 그럴싸하게 형식을 갖춘 글에는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었고 처음 시작해서 머뭇거리는 글은 자세히도 봐주지 않았다. 나는 글의 완성과, 완성 후 공개까지 이어지는 불안으로 팡 터져버릴까 봐서 과제를 하지 않았다. 과제를 낸 날은 혹은 너무 불안해서 합평 시간에 집에 와 버렸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엄청나게 이상한 학생이었다.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글과 글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습관을 버리고나서부터다. 공포가 표현 욕구를 이기지는 못했다. 일기를 썼다. 게다가 나는 좀 관종끼가 있어서 일기도 언제나 만인이 볼 수 있도록 공개된 플랫폼에 쓴다.
블로그에 끼적인 불안일기와 분노일기 몇 줄을 보고 친구가 글이 좋다고 해서 이게 무슨 글이야 손사래를 치니까 친구가 지지 않고 그럼 그게 글이 아니야 그럼 대체 뭐가 글이야 했다. 그러게. 제목이 없으면 글이 아니야? 원고지 10매가 아니면 글이 아니야? 10초만 추어도 춤은 춤이지.
'자기 글을 가차 없이 대해라.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그럴 것이다' 라는 글쓰기 격언이 있다. 그 페이지를 찢어버렸다. <패터슨>을 떠올렸다. 버스기사 패터슨은 매일 시를 쓰지만 다른 사람에게 시를 보여주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한 명만 빼고. 아내.
잘 들어.
누구도 자신의 글을 가차없이 대하면 안 돼.
나든 남이든 마찬가지야.
불안할 때마다 글을 쓰니, 글이 모였고 누가 책으로 내라기에 냈다. 가끔은 지난 세월이 억울해서 자다가 벌떡 일어나곤 한다. 불안할 때 글을 쓰면 된다고 왜 아무도 안 알려줬어요? (그때는 아무도 안 알려줬다. 이명박이 대통령이던 시절이다)
글쓰기 클래스를 하면서 아주 많이 놀랐다. 불안으로 나라가 터져 버리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불안은 일상화되어 있었다. 56색 정도의 다채로운 불안을 만났다.
너무 떨려서 언제나 술을 마시고 과제를 쓴다는 고백이 적힌 이메일도 한둘이 아니었다. 긴 글을 완성할 때마다 울게 된다는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는 안아주고 싶었다. “극도의 불안 상태로 글을 쓰고 그것을 마치면 탈력감에 휩싸여요.” 쓰다 덮어둔 글을 절대로 다시 볼 수가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불안이 거울에 비치면 그 안에서는 공포가 솟는 것이었다.
( 처음에는 사람들의 불안과 두려움, 슬픔을 모두 안고 집에 돌아와, 머릿속에서 그들이 떠나지 않아서 새벽까지 잠을 못 자곤 했다. 물론 곧 집에 오자마자 자게 되었다)
이렇게 불안한 일을 어떻게 이토록 성실히 할까. 글쓰기 수업에 왜 오냐는 질문을 던졌다. 울지 않고 잘 쓰고 싶어서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답은 의외였다. “살려고 와요.”
표현은 다양했으나 뜻은 하나였다. 살려고 와요. 잘 살려고 써요. 취준생으로 한국에서 살면 매일이 어지러울 정도로 불안하고, 그 불안을 일주일마다 직면하고 소화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말이었다. 직장인이든 프리랜서든 아이가 있든 없든 마찬가지였다.
표현은 생존이다. 그리고 생존을 위한 그 표현이 재능이기도 하다. 너의 불안에 이름을 붙여주자, 불안에 언어를 만들어 주자고 다짐하고 권유했다. 수업을 마칠 때마다 콧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불안의 두레. 불안의 품앗이."
'불안 페이'로 초콜릿과 캬라멜, 쿠키를 잔뜩 주문하고 수업날을 기다린다. 불안한 사람이므로 나의 불안에 대해 쓸 때조차 이 글이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리진 않을지 아니면 글을 쓴 후에 울적해지는 건 아닌지 세상만사가 다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그 불안에 맞서기 위한 동작으로서 다리를 달달 떨면서 말랑카우를 열개나 까먹으면서 글을 쓴 기억 때문이다. 수북하게 쌓인 캐러멜 껍질을 앞에 두고 자신의 글을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나갈 때, 우리는 다이빙을 하는 것처럼 결연해진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수영을 떠올린다. 오랫동안 수영을 배우지 않은 것도 불안 탓이었다. 동해 바다에 빠져서 죽을 뻔한 이후로 물 공포가 생겼다. 발밑에서 해일이 몸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어떡하지? 친구는 불안에게 매일 인사를 해 주면 걔도 그냥 평생의 친구 같고 때로 알아서 잠잠해진다고 말했다.
“너무 무서운데 매일 아침 그냥 갔어. 1년 동안 자유형 하나만 했어. 선생님도 나보고 인내심이 대단하다고 하더라. 이제 자유형 하나로 물놀이를 잘할 수 있어서 행복해.”
친구의 말에 수영강습을 등록했다. 매일 불안의 얼굴을 마주해야지 하고 갔는데, 신나기만 했다. 불안을 불안해하는 불안이 더 컸던 것이다.
매일, 단 것을 먹고 차를 마시며, 불안해하자. 그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