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남프랑스에서 이민자로 살며 마무리 없는 일기를 씁니다
디스트레. distrait 이 단어를 검색하면 아래와 같은 그림이 이해를 돕는다. 유의어는 '구름 속에 머리가 있다'는 문장이다. 보통은 '정신이 산란(산만)하다'고 나온다. 그러니까 결코 칭찬일 수는 없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민자들에게 무료 불어 교육을 제공한다. 프랑스인 파트너와 함께 온 나는 배우자 비자로 생활한다. 한국에서 불어 학원을 다녔고, 100시간의 의무 교육을 부여받았다. 말도 못하고 귀도 막혔지만, 문법을 공부해 왔기 때문이었다. 우리 반에는 400시간을 받고 몇 달째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말을 할 줄 알고 들을 줄도 알지만, 문법을 전혀 모른다. 태어나서 글자를 처음 써보는 사람도 있다. 교실은 여러 개의 언어로 일렁인다. 미얀마, 칠레, 한국, 아프가니스탄, 수단, 소말리아, 에리트리아, 알제리, 모로코. 쉬는 시간이면 나는 자주 바벨탑을 떠올렸다.
언어의 카오스 안에서 넋을 놓고 갑자기 한국어가 방언처럼 터지면, 태어나서 이 언어를 처음 들어보는 친구들이 나를 유령 보듯 보았다. "너 뭐라고 말하는 거야?" "너희들 모두 바보라고 말했지!"
한번은 불어 수업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업무 카톡에 답장하다가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았다.
"너는 디스트레하구나!"
쉬는 시간에 나는 중얼중얼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선생님 불어를 하나도 못 알아들어서 그래요! 다른 친구들은 대충 알아듣잖아요? 제 귀에는 하나도 안 들리는 걸요."
선생님은 영어로 바꾸어 가이드를 주었다.
"처음이니까 안 들리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들리는 것만 들으려고 하지 말고, 들리지 않는 것에도 집중을 하려고 노력해 봐요. 들리지 않는 것에도 계속 정신을 모으면 언젠가 들릴 거예요. 그게 공부, 아닌가요."
옳거니. 그 이후로 나는 좀 다른 방식으로 디스트레했다. 수업 시간에 집중을 하려고 귀에 힘을 주는 것은 차츰 나아졌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있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3시간 동안 이어지는 불어 설명은 나에게 의미를 가진 언어라기보다는 어떤 소리였으므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조개 속에 들어앉은 듯 골이 울렸다.
나는 몸 움직이기를 택했다. '불어 발음을 검색해봐야지'하는 마음이 들면 바로 손을 들고 질문했다. "선생님 발음 좀 부탁드려요!"
펜을 떨어뜨리면 스스로 줍지 않고 뒤에 앉은 친구 (늘 무릎 위에 폰을 놓고 고국 친구들에게 메세지를 보내곤 했다)의 후디를 잡아당겼다. "친구들에게 이 학교가 얼마나 멋진지 전하고 있어? 펜이나 주워 줘." 학교에는 커피머신은커녕, 정수기도 없었다. 식사 공간이 폐쇄되자 학생들은 기찻길이나 계단에서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철자를 가까스로 그리고 있는 친구의 노트에 침범했다. 한국에서의 나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 "도와줄까?" 라는 질문은 생략해 버렸다. 내가 소문자로 쓰면 그 친구는 못 알아봤다. "이렇게 써야지. 너 모르는구나." 그러고보니 선생님은 언제나 대문자로 판서를 하고 있었다. 각 나라마다 소문자를 쓰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콜록대는 친구에게는 리콜라 캔디를 던졌다. "어이, 코로나! 이거 먹어!"
학창 시절 내내 고요한 모범생이었던 나는 이런 방식으로는 지내본 적이 없었으므로, 선생님 눈에 덜 띄는 눈치 같은 건 없었다. 한번은 베네수엘라에서 온 친구 제랄딘과 공부에 대해 의논했는데 나만 불려서 다른 방으로 가야했다. 눈치없이 목소리와 동작이 컸던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교실에서 떠들다 벌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디스트레를 이제야 배우고 있었다. 노인대학에서도 인간은 성장한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모든 것은 내게 자연스러웠다.
어릴 땐 가십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염려했다. "얼마나 자기 삶에 집중을 안하면 남의 삶에 저렇게 관심을 둬?" 정도의 무시는 타인에게도 나에게도 적용됐다. 타인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건 당연히 모순적이었다. 연예인이나 지인의 가십으로 친구와 쿵덕거린 후에는 은은한 죄책감이 따랐다. 코로나 시대의 이민이 변화시킨 것 중에는 그 죄책감도 있다. 괴로운 시기를 건너는 방법 중에 집중도 있겠지만 디스트레도 있고, 가십은 디스트레에 가장 유용하다.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것이다.
정면을 바라보며 질주할 때도 있고, 게처럼 옆으로 걸으며 장난을 칠 때도 있는 거겠지.
“어차피 내 문제는 내 집에 그대로 있어. 등교는 나한테 바캉스야.”
몸의 굴곡이 4D로 보이는 블루-골드 스트라이프 바디콘 드레스를 입고 복도에서 모델 워킹을 하고 트월킹을 추던 제랄딘이 말했었다. 세상에, 허벅지까지 오는 스웨이드 부츠 굽은 소시지를 찍어먹을 수 있을 정도로 뾰족했다. 그 사진을 별가루가 흩날리는 필터로 찍었는데, 뒤에 앉은 나는 거의 외계인처럼 얼굴이 변형됐다. 눈에는 두꺼운 속눈썹이 달리고 입술은 킴 카다시안이 되었다.
"킴, 이거 봐. 너 이렇게 필터하니까 너무 너무 예쁘다. 만화 주인공 같아. 보내줄까?"
"킴! 킴 카다시안이다."
여자들이 구슬이 쏟아지듯 웃었다.
처음에 나는 제랄딘을 무서워했다. 가슴과 엉덩이를 부각시키는 옷을 입는 여자를 무서워하는 정서는 대체 어디에서 나왔어? 아무튼 그랬다. 22살 정도 되는 틱톡 매니아인가 보다 했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나랑 쟤랑 엮일 일은 없겠다, 생각했는데 90일 간의 학교 생활을 종료한 뒤, 가장 자주 만나는 학교 친구로 남았다.
제랄딘은 베네수엘라에서 16살에 혼자 아이를 낳아 길렀다고 했다. 몇년 전에 프랑스인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알비로 왔다. 열정을 바치는 것이 20가지 정도 된다. 아침 저녁으로 고강도 운동을 한다. 2주에 한번 정도는 강물에 잠기는 것처럼 우울한데, 그때마다 운동복을 모두 꺼내어 컬러와 디자인별로 구분해 다시 접어 넣는다. 저녁이면 자기가 먹을 건강 요리와 남편, 아이가 먹을 파스타, 스튜 같은 것을 따로 요리하느라 쉴 틈이 없다. 그 와중에 고양이를 두 마리나 기른다. 알비에 와서 3번이나 응급실에 갔다. 어쩐지 부러울 지경이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열정적으로 디스트레해?
고양이들도 친구들의 표현에 따르면 '마리화나를 하도 맡아서 거의 미쳤다' 상처들은 이런 식으로 생겼다. 주인 고양이가 새로 온 고양이를 질투해서 공격하려던 찰나 그녀가 뛰어들어 막다가 온몸이 심하게 할퀴어졌다. 그녀는 마루에 여러 개의 핏방울을 남겼다. 한번은 남편과 싸우고 흥분한 상태에서 요리하다 손을 깊이 베여서 병원에 갔다. 그리고 나머지 한번도 뭐 비슷한 일들일 것이다. 다음날 아침엔 테니스 신동처럼 귀엽게 꾸미고 나와 나와 공원을 달렸다. "다친 데 안 쓰라려?" "아프지."
공통점이라곤 없는 우리 사이에 글쓰기가 있다.
제랄딘은 남편이 자기에게 잘못한 것은 반드시 글로 써둔다. “글은 믿을 만해.”
“나는 쟤를 리스펙트해.”
한번은 내가 뚜뚜에게 말했다. 당연히 다른 여자 칭찬을 싫어하는 그녀는 못 들은 척 했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말을 이어갔다. 누가 듣든 말든 계속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
“쟤는 (너처럼) 자기 우울을 감상하지 않아. 최선을 다해 다루려고 하지.”
'너처럼'을 알아들었으려나. 물론 뚜뚜는 언제나처럼 다른 정신없는 가십을 꺼내 나를 디스트레 해버렸고, 한 디스트레하는 나는 또 그 이야기에 말려 들고 말았다.
아무튼 제랄딘이 좋아하는 디스트레에는 뚜뚜와 라힘이 나를 두고 싸우고 놀고 자빠진 것도 있다. 나는 맨날 집에 있는데, 둘이서 나를 두고 삼각관계 놀이를 하는 것이다.
“아니, 그 주제 아직도 안 끝났어? 나 학교 떠난지 한참 되었잖아?”
내가 환멸감을 드러내거나 말거나 그녀는 ㅎ에도 빠지지 않는다.
"안 끝났어. 둘이 또 망상에 빠져 있어!"
우리가 운동을 할 때면 아직 학교에 다니는 제랄딘이 나에게 종종 후일담을 전해준다. 한국에서의 나라면 '그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고 할텐데, 그냥 둔다. 내가 화를 낼 때마다, 제랄딘이 대신 그 둘과 싸웠기 때문일까?
"둘이서 꽁냥꽁냥하라고 그래. 가만 있는 나를 왜 끼워넣어. 나 떠올리면 둘이 섹스할 때 더 재밌나 봐."
당연한 걸 굳이 왜 이야기하냐는 건지 아니면 흥미없는 주제인지 제랄딘은 대답없이 넘어갔다.
"아시안 걸 판타지 그만 하라 그래. 실제의 나는 바이브레이터도 충전 안 하는 게으른 인간인데!" 물론 이 이야기는 한국어로 했다.
이제 이게 이 그룹에서 어떤 놀이나 풍습 같은 것으로 자리 잡았다. 하교길 친구였던 라힘에 나에게 자기 집에 오라고 여러 번 메세지를 보냈었다. "뭔 소리야?" 하고는 무시하고는 했는데, 하루는 너무 짜증나서 "니 여자친구가 내 친구야. 그러니까 그만 보내." 라고 했던 게 팩트였고, 그 메세지를 모두가 봤는데....팩트는 구전문학을 이기지 못했다. 그 둘 사이에서 이 이야기는 굴러굴러서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킴이 라힘을 꼬시려고 여러번 메시지를 보냈다’로 된 것이다. (글로 쓰면서도 좀 창피하다.....얘들아 나 몇 살인지 알아?) 둘다 그렇게 믿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가스라이팅이 이렇게 무섭구나. 반복된 거짓말이 이렇게 효과적이구나.
뚜뚜는 내가 방금 한 말도 완전히 트위스트해서 다르게 알아듣던데, 그 걸 보고....내가 미친 듯이 웃은 적이 있다. “너 영어 못 알아들어? ‘얘가 000라면 내가 000했겠어?’란 말을 어떻게 ‘얘는 0000이다’로 알아들어? 미쳤어?” 그녀는 굿굿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아니야. 니가 그렇게 말했잖아.” 그냥 얘들은 한국 여자가 자기들 중간에 끼어들어서, 뭔가 사건을 일으켜 준 것이 좋은 것이다.
근데 최근에 내가 라힘에게 메세지를 보낸 적이 있다. 여럿이 모였을 때 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역정이 나서, 내킨 김에 자초지종 따지고 싸우려고 메세지를 보냈다가, 정작 답장이 오자...피곤하고 배도 고프고 집에 가서 라면도 먹고 싶고....전화 안 받은 건데, 그 이야기를 굳이 하려다가 말았다. "나 그제는 걔 혼내려고 문자 보낸건데..."하려다가, 에라 젠장 말자.
말 안 해도 얘는 다 안다. 오해 잘 안 하고, 자기가 믿고 싶은 건 굳세게 믿는 타입.
"너는 미워하고 질투할 상대가 필요하지. 그래야 네 문제로부터 도망갈 수 있으니까. 언제까지 그럴 건데? 아무 것도 해결 안돼."
내가 뚜뚜에게 그렇게 말했다. 사람은 보통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타인에게 한다.
뚜뚜는 맥락은 못 읽고 갑자기 단어 '질투'에 꽂혀서 방방 뛰었다. 코로나 때문에 망해버린 자기 사업, 섹스리스인 데다 까다롭고 교양있어서 자기를 갑갑하게 하는 프랑스인 남편, 슬쩍슬쩍 돈을 빌려가고 갚지 않는 데다가 틈만 나면 자기랑 헤어지려 드는 외도상대로 인한 모멸감과 자괴감과 열패감과 불안으로부터 도피하려면 외부요소가 필요하고....
그게 나인 것이다.
그리고 이걸 쓰고 있는 나도 현실로부터 ‘디스트레’하기 위해 자초지종을 기록하는 걸까?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젓는다. 나중에 기억왜곡(예: 그때 내가 뭔가 잘못했으니까 걔들이 날 그렇게 미워했지...)로 빠지지 않기 위해 바둑알처럼 차곡차곡 기록하는 것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정도의 디스트레까지 필요하지는 않아.
아무튼 어제는,
“또 킴에게 달려가지? 어제 있던 일 쏟아내려고?”
모르간이 아내를 놀렸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재밌었다. 내가 걔를 혼내줬어, 나 정의롭지? 하는 게 너무 귀여웠다. 이 동네는 징그러울만치 작아서 어제 걔들 부부가 슈퍼 다녀오다가 라힘을 길에서 마주쳤다고. “왜 킴과 칼리드, 모두 내 연락 안 받아?” 그래서 엄청난 에너지로 걔가 뭘 잘못했고, 여전히 거짓말 월드에 빠진 멍청이고, 그래서 뭘 고쳐야 하는지 혼내주었다고 했다.
“완전히 미쳤어! 네가 자기를 꼬시려고 메세지를 보냈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너를 잘 아는데 그딴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지!”
“그걸 다 프랑스어로 말했어? 너 대단하다!”
제랄딘은 이 칭찬에 방긋, 방긋 웃었다. 보통은 섹시하게 눈을 반쯤만 뜨며 미소짓는데, 진짜 진짜 기분 좋을 때는 두눈이 완전히 감기며 간질간질한 미소를 짓는다.
“야, 너 이런 가십 집중하면 산만해져서 스트레스 풀려서 그러지? 나도 그래. 락다운 때문에 아무 일이 없어서 오직 나한테만, 내 집 문제에만 집중하게 되는데 그러면 막 미칠 것 같아. 여기 살게 되면서는 그래. 그런데 오늘 니 이야기 들으니까 내 이야기인데 남 이야기 듣는 것 같다. 에너지 솟는다. 야." 내가 말했고,
이 이야기에 둘이 막 허벅지를 치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