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중심 인간’ 이란 단어가 존재했다니! 구글은 인간에게 ‘너 같은 사람은 너 혼자라고 생각하겠지만, 님 그거 착각임!’ 이라고 짚어준다. 구글 검색에 따라, 과업 중심과 관계 중심이라는 기준으로 인간을 단순하게 분류해 보았더니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후자였다.
헌데 우리 집에는 극단적 과업 중심 인간이 존재한다. 반려자는 자신의 거울이다. 그와 내가 너무 달라서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매일 매일 놀라고 있다. 상대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환갑잔치 때까지 놀랄 예정이다. “대체 너는 누구냐!”
그는 대화 중에 타인에 대한 디테일을 자발적으로 언급하는 일이 드물다. 새로 만난 사람에 대해 유일하게 하는 평가란 “그(그녀)는 친절하다.” 정도. 아니, 뭐야. 초면엔 다들 친절하지 않은가! 정보값이 빵점이다. 친절하다고 언급하지 않은 사람이 어떤지 내가 시시콜콜 물어야 겨우 대답한다. “아직은 잘 모르지.” 누가 매력적이라거나 웃기다거나 똑똑하다는 평도 들어본 적이 없다. 아, 나는 사람에 대해 할 말이 너무너무 많은데! 이렇게 다르다 보니, 그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로 살아가는 나의 365일을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이를테면 외국인인 그는 한국에 살 때 혼자 북한산에 가고는 했다. ‘산을 좋아하니까-> 산에 간다’ 라는 도식이 선명하다면 동행이 없어도 그는 무방하다. 반면에 나는 혼자는 못 간다. 포기하고 싶을 때 이끌어줄 사람, 하산해서 두부김치와 미나리전에 막걸리를 마실 사람, 내가 깜빡하고 안 가져온 생수를 챙겨와 주는 사람, 오르막길에 잡담을 하며 힘듦을 잊게 해줄 사람 등이 필요하다.
아, 쓰고 보니 등산의 비유는 적절치 못한 것 같다. 나는 산을 혼자 갈 만큼 좋아하지는 않으니까. SNS사용을 보자. 그는 페이스북을 뉴스를 얻는 통로로 사용하지만, 자신에 대한 어떤 포스트도 올리지 않는다. 트위터, 인스타그램 계정도 없다. 타인의 것을 보지도 않는다. 만나서 일상을 나누면 되는데 왜 봐야 하느냐고 묻는다. 아, 19세기 수도사가 아닌가!
파티로 예를 들어보자. 그가 프랑스에 살 때 그는 파티 중간에 스윽-사라지는 유형이었다고 했다. 파티가 재미없거나 오늘 꼭 보고 싶은 영화를 다운받아두었거나. 나는 “아, 아, 아, 더어럽게에에 지루하다.” 투덜거리며 끝의 끝까지 버티는 유형이다. 버티면 뭐가 나올지 너무 궁금하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버티는가. 이 파티가 왜 재미없는지 궁리하거나, 지루하거나 보기싫은 인간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한다. 사람 속에서 재미를 찾는 유형이다. 그러다 보면 재밌는 인간을 파티 끝물에 만나는 행운이나 파티 장면을 글로 쓸 행운도 있다. 안정적인 행복은 덜 얻어도 찰나의 행운을 거머쥘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가 관계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그 사람들에게서 에너지를 얻는다. 심지어 그도 친했던 내 친구의 아들 돌에 자신이 가장 아끼는 동화의 절판본을 찾아헤매고 결국 발견해서, 연습장에 한번 쓴 후 정성껏 다시 쓴 생일 카드와 함께 선물하는 식이었다. 우리 엄마의 친구까지 불러 프랑스 코스를 요리해 대접하는 식이었다. 아, 나도 그 아줌마 잘 모르는데! 쓰고 보니 그는 관계 중심 인간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온다. 다만 그 수에 영향받지 않고, 관계가 주는 역동 없이도 일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 뿐이다.
다름이 있을 뿐 옳고 그름은 없다. 전자는 목표를 관계 없이도 이룰 수 있고, 후자는 목표를 관계 속에서 더 잘 이룰 수 있다는 각각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전자에게는 안정성이 있다. 사람은 늘 변수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증폭시키지만 저하시키기도 한다. 주변에 늘 관계중심인 사람들 뿐인 나로서는 그가 몹시 신기했다. 다음은 ‘고독한 이방인’으로 사년 간 살았던 그에 대한 짧은 기록이다.
우리는 둘다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을 가진다. 그러나 이방인으로서의 고립감으로 인한 컨디션 저하의 정도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의 상대적 박탈감 지수 별 5개) 원래 인간은 형제남매 혹은 베스트프렌드와 자신을 비교하기 마련이다. 나도 그처럼 속깊은 대화를 나누고 영향을 주고 받을 사람이 내 곁에 있거나 없거나 매일 비슷한 정도의 행복감을 누리고 싶다. 매일 평온한 삶을 살고 싶다. 잘 안 된다.
허심탄회하게 속을 터놓을 친구가 한국에 없어 고독하지 않았냐는 내 질문에 그는(신토불이맨이라 부르겠다) 심드렁하게 답했다. “난 사람 별로 안 좋아해요.” 새!빨!간 거짓말. 하여간 그는 농부의 꿈을 품고 있었다. 서울에서도 도시농부로 살아보고 싶어했다. 경기도의 땅뙈기를 빌려주었을 때 신토불이맨의 행복지수는 북한산만큼 올라갔다. 사교도 겸하거니 했지만 그 도시농장에서는 친구를 사귀진 못했다.
이름을 밝히는 일이 드문 한국 문화 때문에 우리는 주로 닉네임으로 사람들을 구분했다. 그 농장에는 땅주인 아저씨, 코끼리 마늘 아저씨, 비타민 드링크 맨, ‘나 좀 줘' 할머니 등이 있었다. ‘나 좀 줘' 할머니는 우리 작물에 탐을 내곤 했다.
“이 콩은 뭔데 얼룩말 같이 생겼어? 외국 거야?”
“네. 남프랑스 블라블라 지역에서 유명한 어쩌구저쩌구 콩이에요.”
신토불이맨의 프랑스 농산물 자랑이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는 말했다. “나 좀 줘.” 잘 자란 모종을 말없이 가져갔던 할머니는 어느날엔 보답으로 우리 밭의 잡초를 다 솎아냈다. 서로 공생관계인 두 가지 작물을 함께 심는 유기농법을 시도하던 신토불이맨의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할머니 눈에는 잡초였지만 그에게는 소중한 작물이었던 것이다.
“할머니. 제 밭에 도움 안 줘도 괜찮아요.”
“아유. 놀면 뭐해.”
할머니는 신토불이맨이 감사를 표한 줄 알았다. 완곡화법은 도움이 안 된다. 나는 할머니 팔을 꾹 참고 직설화법을 썼다. “할.머.니. 여기 밭에 손.대.지 마세요. 아셨죠?”
할머니는 농사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다.
“시간 날 때 잡풀을 다 뽑아야지. 밭이 깔-꼼해야지.”
아니, 할머니도 농사 처음 지어보신다면서요? 하지만 질문은 대화를 길어지게 만든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할머니는 자기가 만든 얼토당토 않은 속담을 가르쳐 주셨다.
“옛말에 사람이 부지런하면 전쟁이 나도 부자가 된다고 했어.”
비타민 드링크 맨은 자동차에 늘 여러 가지 드링크를 가지고 다니는 영업맨이었다. 신토불이맨의 성격 묘사에 내가 한국어 형용사를 알려줬다. “그런 사람을 싹싹하다고 해.”
낚시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땅을 바라보다 가곤 했다. 이를테면 밭 명상. 봄에 대충 뿌려둔 씨앗들이 무성한 줄기로 자라난 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일어서면서 내 파트너와 눈이 마주치면 다가와 드링크제를 건넸다. “마셔보세요. 어제 것과 다른 맛이에요.” 그러고는 다시 영업 전쟁터로 나갔다. 그가 준 드링크들은 그 영업맨처럼 피로했던 내가 다 받아 마셨다. 그와 나는 둘다 한국인이라 사는 게 전쟁이었다.
“돈 되는 걸 심어야지.”
‘코끼리 마늘' 아저씨는 매일 매일 말했다.
“팔 거야?”
늘 예의바른 신토불이맨은 미스테리하게도 코끼리 마늘 아저씨에겐 반말이 나오곤 했다. 아마 아저씨가 성큼성큼 걸어 훅 다가오는 스타일이라 한국어의 존댓말 모드로 뇌를 변환할 시간이 없었을 거다.
자신감에 취한 코끼리 마늘 아저씨는 외국인의 반말을 개의치 않았다.
“뭐든 돈이 돼야 돼.”
이후에도 아저씨는 전날 한 자랑을 깜빡 잊었다는 듯 매일 새롭게 자신의 ‘코끼리 마늘'을 자랑했다.
“세상에 이렇게 큰 마늘이 없어. 이게 아주 신품종이야. 생생정보통에도 나왔어.”
“맛있는 마늘인가? 맛이 어떤가?”
아저씨는 그 마늘을 먹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효능이 대단해. 몸에 아주 좋아.”
맛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기대한 신토불이맨은 시무룩해졌다. 대화가 끝났다. 그는 ‘효능’이란 단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이런 대화들은 인간관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나의 욕구를 투사해 그를 안타까워하면 신토불이맨은 왜냐고 물었다. “응? 나는 땅만 있으면 돼요.” 반면 기쁨은 이런 것이었다. “프랑스 토마토 씨앗을 뿌렸는데 한국 기후에서도 잘 자랐어!” (기쁨 지수 별 5개) “닭이 오늘도 알을 낳았어! 도시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나봐!”(기쁨 지수 별 4.5개. 알이 좀 작았다)
농부는 땅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막걸리는 마을 사람들과 마셔야 제 맛 아닌가. 저녁에 한잔할 동성친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고향 친구와 통화하며 컴퓨터 게임을 하며 맥주를 마시는 신토불이맨의 등을 보며 생각했다. 나가서 맥주 한 잔 할 동네 친구는 만들어도 되지 않나, 속 깊은 이야기할 것도 아니고 사람 너무 가리면 외로운데.
신토불이맨은 한국에서 4년 사는 동안 한국인 남성 친구라고는 없었다. 운이 나빴을까? 일했던 곳에서 남자 동료들끼리 월급날 ‘좋은 곳'에 갈 때 그는 불참했다. (펍에 가는 줄 알고 설렜지만 ‘섹시클럽'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 이후 동네에 ‘섹시클럽'이 얼마나 많은지 세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섹시'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상호명의 장소들도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나는 침묵했다) 주말마다 오는 “형님. 뭐하세요?” 라는 옛동료의 카톡 알림소리를 무시하고, 그는 혼자 지내거나 내 여자친구들을 만나 놀고는 했다. 하지만 한번도 그들을 나쁘게 평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일관성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인간은 고독하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것이다. 그에게는 ‘땅'과 ‘수확물'이 더 중요하니까. 그건 자신의 지향과 지향에 따른 성과라고 볼 수 있겠다. 그 과업을 위해 여러 사람의 대화와 응원(이 있으면 당연히 더 좋겠으나) 관계중심 인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영향받는다. 나아가는 힘은 자신의 내면에서 끌어낸다.
농사, 그래픽노블, 영화, 요리 다큐멘터리, 탐정소설과 고양이에 둘러싸여 사는 고요한 생활이, 그 주제들 바깥의 대화 주제들을 관심있는 척하며 시끄러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보다 편안해 보였다. 고요가 완벽한 행복이 아닐지라도 아름다운 소리를 원해서 열어둔 창문으로 비어들어온 소음에 비하자면 낫다. 고요는 안정적인 행복이다.
프랑스 생활 일년 반. 절대로 고요한 이방인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자신을 깨닫게 된 후, 소란한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 분투하는 요즘 신토불이맨의 고요생활을 자주 떠올린다. 그때는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그래서 이걸 택했겠구나, 나의 일상을 살며 너의 과거를 되짚게 된다. 그리하여 이방인으로서의 나의 매일은 그에 대해 몇년 전에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여러 조각의 퍼즐이 하나씩 맞춰져 가는 과정이다. ‘나'를 아는 모든 것으로부터 뚝 떨어져 새로운 나를 만들어갈 수 있을 때 비로소 나의 정체성을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이방인으로 살 것인지는 오롯이 선택이다. 그게 자신에게 가장 편안하다면.
소은성 <친구들에게>는 한국을 떠나 프랑스 남부 작은 도시에 사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매주 메일로 보내드리는 에세이 메일링입니다. 새로운 시즌 구독은 작가소개에서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