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를 유지한다.

시작보다는 지속

by 황은솔

요즘 읽고 있는 책 <서점의 일생>(야마시타 겐지, 김승복 옮김, 유유, 2019)에 '장소를 유지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이 문장을 보자마자 읽던 책을 내려놓았다. 글을 써야겠다. 참으로 오랜만에 든 생각이다.


서점을 연지 반년 정도가 지났다. 지난해 8월 말 팝업 전시 형태로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업장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건 올해부터이니, 이제 3개월 차에 접어든 서점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렇게 작고 어린 서점에 사람들이 찾아온다. 지나가다 들리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이 오기도 하는데, 시간과 품을 들여 먼 곳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표현에 서툴고 부끄럼이 많은 서점주는 반가운 내색도 잘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결심만 쌓아간다. 더 겸손하고 매일 성실해야겠다는 결심.


처음부터 정식으로 계약을 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채 동업도 사업도 파트타임 근무도 아닌 애매모호한 상태로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이 그냥 서점이 아니라 낫저스트북스라는 '장소'를 찾기 시작한다. 지금껏 '언제든 그만 두면 된다'는 마음 가짐으로 임해왔던 서점 운영 방침에 날 선 바람이 분다. 매일 더 겸손하고 성실하겠노라 한 다짐은 스스로를 기만한 것이었을까.


서점은 사업장이다. 책이라는 상품을 선별해서 진열하고 판매하는 곳이다. 서점에서 책은 상품이다. 공급율이 상당히 높은 상품. 사업의 흥망성쇠와 그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사장인 서점주에게 달려있다. 운영 방침이나 가치관도 서점주 개인의 견해가 자연스레 반영된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서점이란 곳은 분명 사업장인데, 공공 공간이기도 하다. 어느 서점도 서점주 혼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은 서점일수록 더 그러하다. 모든 소매장이 다 그렇지 않으냐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 소규모 서점의 경우 그 정도가 더 깊다. 지나가다 그냥 한 번 들리는 이, 자주 찾는 이, 오래 머물다 마음으로 고른 한 권을 구매하는 이, 휙 둘러보고 마음에 든 여러 권을 한꺼번에 사가는 이, 서점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오는 이, 전화로 책을 물어오는 이 모두가 서점을 꾸리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언제든 그만 두면 된다'는 마음이 상당히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방침은 적어도 동네 서점에는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아니,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서점을 찾는 이들이 다독가인지, 애서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동네 서점을 찾는 사람들은 그곳에 장소성을 부여하고 내 공간인 양 마음을 쓴다. 마치 대중의 사랑으로 성장하고 먹고사는 유명인의 삶과 같다. 기껏 좋아해 주고 키워놨더니 '이만하면 됐다'며 돌연 은퇴를 선언하는 연예인은 비호감이다.


그래서 책방을 지속해보기로 했다. 구구절절 생각을 늘어놓고 갑작스러운 다짐을 쓰는 이유는, 현재 낫저스트북스의 미래가 상당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없어질 수도 있고 어딘가로 옮겨서 다시 시작할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섣불리 결단을 내리기 힘든 실정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마음은 굳게 정하였다. 위에 언급한 책에서 야마시타 겐지는 운영자의 마음가짐은 브랜드에 고스란히 반영된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일지언정 꾸려가는 이의 마음이 굳건하다면 길은 결국 생기지 않을까. 겐지가 말했듯, 그리고 많은 '점주'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듯, '시작보다는 지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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