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만들기로 하다.
<낫저스트북스 그리고 성수>라 제목 붙인 독립출판 워크숍을 기획한 배경에는 한 권의,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책이 있습니다. 제목도 없는 가상의 책입니다. 제목도 없고 왜 만들려는 지도 잘 모르겠지만, 꼭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만들기로 합니다. 서점은 말과 생각이 행동으로 바뀌는 곳이니까요. 이번 기회에 기획 의도를 정리해보았습니다.
분야: 단편소설집
크기: 한 손으로 펼쳐서 들 수 있는 크기
두께: 200페이지 내외
그렇다면 왜 서동찬 작가의 책을 만들려는 걸까요. 제가 평소 서동찬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거나, 서점주 입장에서 특별히 서 작가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처음 기획해서 만드는 책이고, 낫저스트북스의 1호 출판물이 될 책은 꼭 소설이었으면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아는 소설가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서동찬 작가였죠. 그는 e북으로 등단해 아직 종이책이 없었습니다. 평소 허물없이 이야기하는 사이라, 터놓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책을 내고 싶다. 서 작가는 마침 써놓은 단편이 있다고 했습니다. 새로 써야 한다면 부담이었을 조건이었기에, 기존의 단편을 써도 좋다면 마음껏 만들어보라고 했죠. 읽어보았습니다. 스크린 위에 맹랑히 적힌 글자들은 눈으로 들어와 머리나 가슴에 닿기 전에 다시 눈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소설 몇 편을 반복해서 읽었지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허무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소설책을 만들겠다고 큰소리쳤던 자신이 부끄러웠죠. 마지막 노력의 일환으로 종이에 출력해서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의 소설이 이번에는 밖으로 흐르지 않고 안으로, 안으로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야심 차게 오른손에 쥐고 있던 빨간 펜도 내려놓고, 서동찬 월드에 빠져들었습니다.
서동찬 작가의 소설에 어떤 한 단어를 붙여 정의하기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대략적인 맥락은 알 수 있었습니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거죠. 각자의 사정.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스스로의 잣대로 남을 평가해선 안 되고, 그렇기에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족하지만 매일 조금씩이라도 더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하는 제 삶의 신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자기반성을 하고 겸손해지길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소설은 그저 타인의 삶을 짧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는 하나의 방편이니까요. 누구든 즐거이 읽고, 잠시 멈추어 생각하고, 일상에 약간의 변화가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