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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Jun 15. 2023

29살의 기록

완전하지도 불완전하지도 않은

29살, 완전하지도 불완전하지도 않은. 지금의 나이가 나에겐 그렇게 정의되었다.

그 어느 나이 때보다 애매한.

 

20살이 될 때도 그 나이가 자유보다는 삶의 무게로 다가왔던 나에게 30살의 무게는 더 막중했다.

다들 그런 게 있지 않은가. ‘30살 때면 나는 멋진 어른이 되어 있겠지.’ ‘어른으로서 근사한 미래를 그리고 있을 거야.’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부족한 나의 한계를 증명해 주듯, 현실에서의 책임은 더해졌다. 스타트업 느낌이 강했던 직장에서 나는 2년 반가량은 팀에서 경력이 제일 낮았다. 입사 순서로 부여되는 사번은 꽤 앞 번호였지만 내 뒤를 이어 입사한 분들은 하나 같이 경력직 선배들 뿐이었고, 그 덕에 선배들이 이끌어주는 대로 따라가는 것에 익숙했다. 하지만 신입사원 분들과 나보다 경력이 6개월 정도 적은 경력직 후임이 입사하면서 (우리 회사에는 맞선임, 후임의 개념은 없지만 나 혼자 그 부담을 부여한 것 같기도 하다) 마냥 어린 연차는 아님을 알게 되었고 이제 더 이상 누구에게 기대고 있을 수만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물 밀듯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 생각이 꽤 커지게 됐을 무렵, 영업의 ‘ㅇㅕ..’ 정도 알게 되었을 때 일부 구성원들과 함께하는 영업 프로젝트를 맡았고, 4분기에는 팀 전체 매출을 달성하는 프로젝트를 리딩했다. 여전히 내 능력보다 큰 과제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했기에 스트레스의 크기는 꽤 컸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해 보자면 마치 본인의 몸보다 몇 배는 큰 지구를 어깨에 이고 있는 헤라클레스 같았달까.



20살이 될 때의 감정이 정확하게 떠오른다. 교복을 벗고 사회로 나아가면서 나에게는 성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들이 떠맡겨졌다. 자신의 인생은 누구의 도움 없이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교육관과 조금은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에 스스로 생활비와 등록금을 벌어야 했고, 그것은 더 우수한 성적과 좋은 회사로의 취업에 목말라있던 나에게는 크나큰 부담이었다. 나아갈 길이 저렇게나 멀고 아득한데, 당장 눈앞에 돌다리가 없어서 낑낑거리고 있는 듯했다. 19살에서 20살로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세상에서 나에게 너무 큰 짐을 갑작스럽게 떠넘기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30살 때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행착오가 용납되는 20대에서 마치 무언가를 증명하고 보여주어야 하는 30대로 하루아침에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부담만큼 29살을 떠나보내기 아쉬웠던 나는 이 모습을 기록하기로 했다. 기록의 가치를 알고 있는 시현하다에서 29살의 모습을 남기기로 했다.

작가님께 요청한 것은 단 하나였다.


‘마냥 어리지도 않고, 성숙하지도 않은 29살의 모습을 기록해 주세요.’

나와 동갑내기였던 작가님은 그 기록의 가치와 중요성에 누구보다 공감하며 열심히 기록해 주셨다.


그렇게 받아 든 결과물은 오묘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차분하고 잔잔했지만, 노련미 가득한 어른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완전하지도 불완전하지도 않은 이 나이가 그 어느 때보다 가치 있을 수도 있겠구나. 이런 데에 비유하기엔 조금 이상할 수 있지만 계란도 반숙이 제일 맛있지 않은가. 완전히 익지도 덜 익지도 않은 이 상태가 매력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물론, 현실의 모습보다 훨씬 아름답게 보정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하지만 작가님은 사진이 실물을 못 담아내는 거라고 해주셨다.. 자존감 뿜뿜 올려주시는 슬아 작가님 짱) 미화돼버린 것일지도 모르지만, 마냥 이 나이를 싫어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해야만 가치 있는 건 아니니까.


불완전하지만 앞으로 열심히 나아가고 있는 나를 사랑해 줄 수도 있음을 깨달은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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