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되찾는 시간 - 2021.1~
플로리다 주피터에서의 하루하루는 내가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임을 알려주는 시간이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회사를 그만두고 꿈에 그리던 국제기구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되지도 않았을 때 언니가 자기가 있는 미국 플로리다 주피터로 불렀고 인턴을 했던 국제기구에서는 팬데믹 상황으로 여행허가를 받을 수 없다는 답이 왔다. 재택 근무라 일 자체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직원의 안전과 관련된 것이라 어쩔 수 없다는 이유였고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회사도, 국제기구 업무도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 같은 생각에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고 이 선택을 후회할까 두렵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그 생각이 사라졌다.
한 달 반의 시간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행복'과 '감사'였다. 따뜻한 날씨와 예쁜 하늘에 감사했고 나도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했다. 한국에서 일을 하고 그 뒤엔 재택근무와 대학원 준비를 하며 그 시간이 힘들기만 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즐거운 순간 힘든 순간이 지나쳤고 힘들때면 원래 다 그런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위로를 얻었다. 그런데 그 순간들에 나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답을 할 수 있었지 내가 무엇을 하며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묻기조차 두려웠었다. 현재의 상황이 싫었고 나 자신이 불만족스러웠던게 그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You do you, be yourself 라는 표현이 참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오롯이 나인 순간이 너무 드물었고 플로리다의 여유와 활기찬 공기속에서 그걸 되찾고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로 되찾은 것은 생각의 열림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다. 언젠가부터 심각한 일에 관심을 갖는게 싫었고 그렇게 관심있었던 중동 국가에 대한 뉴스도 뒷전으로 한지 오래였다. 이곳에서 잡지를 구독하고 뉴스를 보고 남의 나라 소식에 다시한번 공감을 가질 수 있는건 그런 것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두번째는 쓸데없는 일의 즐거움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시간도 없었고 시간이 나도 밖에 있는걸 더 좋아하다보니 집에서 TV를 보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앉아서 드라마를 보는게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었다는 것을 오랜만에 다시 알게되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비 생산적이라는 일이 가끔은 나 자신에게 가장 생산적인 에너지원을 줄 수 있음을 느꼈다. 세번째로는 자연과 함께하는 것의 즐거움이다. 산책하다 본 넓은 호수에 노을이 비치는 것을 보면서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감탄이 들기도 하고, 토끼가 뛰어다니는걸 한참동안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내가 늙었나 싶다가도 사람들이 말하는 '자연스러움'이 '자연'이란 단어에서 파생한게 왜인지 깨닫게 된다. 이런 환경을 볼 수 있어서 그저 행복하다.
네번째로는 나의 아름다운에 대한 관심이다. 어렸을 때부터 꾸미는 걸 참 좋아했는데 언젠가부터 그게 귀찮고 의미없게 느껴졌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내 외모에 대한 만족도가 나에게 행복감을 주는 부분이 큰 사람인 것 같다. 외모로 평가하는게 나쁘다는 생각에 그런 나를 부끄럽게 여겼는데, 그런 나스스로를 인정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관심을 가지는게 한편으로 나를 채우는 부분이 됨을 느꼈다. 언니와 함께 예쁜 옷을 입고 사진 찍는게 너무 행복하다. 마지막으로는 내 감정에 대한 수용이다. 언젠가부터 참는게 미덕이라 생각했고 늘 감정을 이성적으로 분석해보려했다. 자기 감정을 앞세워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되지만 아무일도 아닌것처럼 감정을 묻어두는 것도 다른 한편에서 내 정신 건강에 안좋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어떤 방식으로 표출할 지는 평생 고민해보아야하지만, 언제나 내 감정에 솔직해져야함을 느꼈다.
조용한 주피터에 있으며 때론 더 조용한 공원에 놀러가기도 하고 마이애미의 시끌벅적함에 취하기도 한다. 때론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 공부를 하다가 놀아야된다는 생각에 언니 친구를 초대하고 또 갑자기 5시간동안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이 변덕스럽고 한편으로 별거없는 일상에 내가 있고 내가 관찰자가 아닌 주인공으로서 일상을 만들어나가는게 자랑스럽다.
그리고 정말 끝으로 이 일상을 만들어주고 말도 안되는 선택을 해서 여기에 오도록 현혹하고, 일상의 많은 부분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언니에게 더없이 감사하다. 나에게 베스트프렌드는, 때론 다시 안볼것 같이 얄밉다가도 돌아서면 드냥 웃게되는, 그리고 나를 그저 나로서 바라봐주는 사람이다. 내가 가진 가장 큰 행운 중 하나는 우리 언니가 나에게 그런 사람이란 것이다. 이후에 또 떨어져 살게되면 서로 입장을 모른 채 이야기할 때도, 관계가 소원해질 때도 있겠지만 언니가 지금 나에게 준 존중과 신뢰는 깨지지 않을 것 같다. 형제 자매간에 분명히 있을 수 있는 질투나 사소한 감정 다툼이 없을 것이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시간 덕분에 질투가 나면 질투나 죽겠다고 짜증나면 짜증난다고 화내야겠다는 웃긴 다짐을 했다. 언니도 나에게 그랬으면 좋겠다. 첫째 둘째라는 사회적 부담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솔직한 관계가 되어가는 시간이었고 그게 우리간의 신뢰가 되었으면 한다. 언제 만나도 한 사람으로서 언니를 존중하고 언니가 오롯이 스스로로서 살아가는 길을 응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점에서 이렇게 소중한 내 베스트프렌드를 만났고, 그 사람에게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you do you라고 말할 수 있는게 위에서 나에 대해 얻은 5가지 이상의 값진 선물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