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인스타그램 피드를 넘기다가 멈춰 섰다. 취업과 청춘 사이에서 고민 중인 어느 20대의 사연이었다. 열심히 평균적인 스펙을 쌓다 보니 어느새 20대 중반. 주변 친구들은 청춘을 즐겁게 보내는 것 같은데, 단 한 번의 일탈도 없이 성실하게만 살아온 자신이 아쉽다고 했다. 취준과 스펙 쌓기를 잠깐 멈추고 훌쩍 떠나려니 공백기가 신경 쓰이고, 그렇다고 바로 취업을 하기에는 너무 달리기만 하는 것 같다.
나는 그 사연을 읽으며 25살의 나를 떠올렸다. 수능-재수-대학-알바-코로나-취업. 정해진 레일 위를 달려온 삶이었다. 그 시절 나는 내가 평생 경험해 온 좁은 세계를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유랑하고 싶다는 욕구가 머리 끝까지 차 있었다. 정해진 항로를 벗어나 내 인생의 방향키를 내가 잡고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싶었다.
하지만 두려웠다. 내가 정말 떠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고정관념 때문에, 주변의 시선 때문에, 부모님의 만류 때문에, 나이든 강아지 때문에, 돈 때문에 또 내 욕구를 미루게 되는 것은 아닐까?
퇴사를 앞두고 나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적었다.
"제발 니 마음을 따라 가. 계속 미뤄왔던 거 이제 해도 돼. 네가 선택한 그 곳에 새로운 기회가 있으니 미래를 걱정하지 마. 타인의 시선 따윈 애초에 없었으니 무의미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만나고, 많이 배우고, 많이 사랑하고,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해."
그리고 나는 정말로 마음을 따라갔다.
돌이켜보면 지난 2년은 온전히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시간이었다.《나침반은 흔들리며 방향을 잡아나간다》라는 책에서 내 지난 여정을 설명해주는 키워드를 만날 수 있었다. 자기이해, 자기돌봄, 자기모험. 이 세 축이 내 지난 여정을 너무나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2024년, 자기모험 —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다.
나는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다. 국토대장정을 시작으로 제주, 서울,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몸과 마음이 원하는 방향을 따라 움직였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며 억눌려 있던 호기심과 자유를 마음껏 풀어냈다. 그 시기의 나는 YOLO였다.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건 다 해보자." 그렇게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구를 충분히 충족했다.
2025년 상반기, 자기이해 — 창작을 통해 내면을 돌아보다.
그렇게 실컷 억눌러있던 욕구를 충족시키고 나니, 에너지의 방향이 바뀌었다. '어디를 갈까'보다 '나는 누구인가'가 궁금해졌고, 그 질문을 붙잡기 위해 시작한 것이 바로 소설 창작이었다. 감정을 억누르고 고립된 인물을 통해 나 자신의 결핍을 마주했다. 불안, 수치심, 연결에 대한 갈망 같은 감정들이 문장 속에서 얼굴을 드러냈다.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불완전한 글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처음으로 '내려놓음'이라는 것을 배웠다.
2025년 하반기, 자기돌봄 — 소진과 회복
어느덧 여름이 찾아왔고, 나는 지쳤다. 글을 쓰는 일조차 버거워졌고, 자연스럽게 마음이 '회복'으로 향했다.
아로마테라피, 싱잉볼 명상, 요가 원데이 클래스 등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을 전전하며 쉼을 찾았다. 처음에는 새로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감이 쌓였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단발적인 체험을 원한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회복의 방법, 삶 속에서 반복할 수 있는 리추얼이 필요했다. 그래서 요가, 명상, 불교 수행을 통해 일상 속에서 나를 돌보는 법을 배워나갔다.
내 지난 시간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나로부터 출발해서 나에게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나침반이 정방향을 가리키기 위해서는 흔들려야 한다. 처음에는 이리저리 요동치지만, 점점 폭이 좁아지면서 결국 방향을 찾는다. 내 지난 2년도 그랬다. 세 축을 빙글빙글 돌면서 방향을 잡아나가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삶이 아니라, 흔들려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준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나의 인생을 지탱해줄 네 개의 축을 발견했다. 창작, 웰니스, 불교, 심리. 이 네 가지 키워드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내면을 탐험하며, 그 여정을 작품과 사람에게 나누는 삶'이었다. 뭘 하면서 살아야 행복한지, 방향성은 확실히 얻었다.
"마음 가는 대로 살아봐."
이 말은 여전히 막막하다. 하지만 2년 전과는 다르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마음 가는 대로 산다는 건,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 게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마음이 움직이는 선택을 하나씩 해보는 것이었다.
국토대장정 신청 버튼을 누르는 것. 게스트하우스 스탭을 지원하는 것. 부당한 곳에서 박차고 나오는 것. 우도에 남기로 결정하는 것. 유럽행 비행기표를 끊는 것. 처음으로 모임을 열어보는 것.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 요가 매트를 펴는 것. 하나하나는 작은 선택이었지만, 그 선택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 책은 한 사람이 자기모험 → 자기이해 → 자기돌봄의 과정을 거치며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기록이다. 비슷한 막막함 속에 있는 당신에게 "이렇게도 살아볼 수 있다"는 하나의 사례가 되기를 바란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시작하는 용기다. 이제 내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2024년 겨울, 제주도행 비행기에 오른 그 순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