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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스 Aug 12. 2022

[리뷰]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을 읽고

경계인이 바라본 반세기


의도된 소박함

그것은 일본인이 삶과 아름다움을 대하는 태도다.

21세기의 일본엔 화석화된 모습이 대부분이지만

사라졌기에 다시금 펼쳐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에선 일본의 영화, 미학, 전통과 여성을 다룬 20편의 에세이로 미미하게 남아있는 과거 일본의 것을 살려냈다.

일본인의 시선이 아닌, 푸른 눈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본.

완전히 일본의 것으로 규정되지도,

완전히 일본의 것이 아닌 것으로 규정되지도 않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인이기에 한걸음 뒤에서 객관적으로 일본을 보고, 기록했다.




과거 일본에겐 미학을 정의하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현대에 와선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미학을 말해주는 다양한 단어와 정의가 생겨났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보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확고한 일본이

왜?

어느 민족보다 아름다움을 미덕으로 여기는 일본이

왜 미학에 대해 정의하려 들지 않았을까?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에선 이를 명쾌하게 말해준다.


그것은 바로,

미학에서 진리로 통하는 아름다움이 국가와 개인 자체에 내재화 되어있으며,

일상 자체에 포함된 당연한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카리키는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중략)...그것은 말로 논의할 필요 자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일수도 있다."

p.279



그렇다면 19세기 이전의 일본이 생각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자연에는 잠재성만 있을 뿐이다. 사람이 거기에 형태를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p.20


비어 있는 장면을 의미로 채운다.

p.143


자연의 결과가 아닌 수단을 모방했다. 이러한 수단 중 하나가 바로 단순함이다.

p.276


그렇기 때문에 낡고 금이 간 찻잔에 황홀해하고, 짧게 피었다 지는 꽃에 열광하고, 힘과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마땅히 스러지고 마는 사무라이를 자주 언급하는 것이다.

p.278



꽃꽂이나 정원처럼 사람의 손을 거친 자연

자연의 결과가 아닌, 피고 지는 꽃과 뜨고 지는 해

여백을 통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영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낡고 닳는 사물

지지 않는 꽃이 아닌, 때가 되면 떨어지는 벚꽃


이것들이 과거 일본이 가치를 부여한 아름다움이다.

추상적이지만 이미지를 그리기엔 충분하고 그려진 이미지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덧없음과 단순함, 그리고 여백이야말로 일본이 가치있다고 하는 아름다움이다.

일본이 아름다움을 대하는 태도는 삶을 대하는 태도로까지 연장된다.



'시카타가 나이(어쩔 수 없군)'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이 말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에 매달리기 보다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자는 뜻이기 때문이다.

p.185


삶의 유한성이 없다면 삶도 없고 아름다움 또한 의미를 잃는다...(중략)...삶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삶의 불확실성이다.

p.188


죽음은 비극이라기보다 애처로움의 대상이다. 애처로움은 극복할 수 있지만 비극은 그럴 수 없다.

p.261


전 세계의 수 많은 사람은 자신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언젠가 사라지고 만다는 생각을 애써 회피하며 한평생을 보낸다. 오직 몇몇 시인만이 그 사실을 직시한다. 그리고 그걸 기념하고 찬양하는 것은 아마도 일본인들뿐이다.

p.297



삶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

흘러가는 것을 붙잡지 않는 태도

이러한 태도는 역설적이게도 삶을 강렬하게 살게끔 한다.


"죽음을 인식하는 자만이 강렬한 삶을 산다."

라는 말을 한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이 떠오르는 대목들이었다.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를 읽을 때 항상 잊지 말아야 하는 점은

경계인의 시선에서 쓰여진 책이란 것이다.

일상이 되어버린 삶에선 볼 수 없는 것을

처음 겪는 자는 낯설어하고 의문을 품는다.

결국 일본인이 보지 못한 일본의 모습을

경계인은 볼 수 있다.


이 책을 알차게 읽을 수 있는 방법도 나름 알게 되었다.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엔 20편의 에세이가 나온다.

앞선 19편의 에세이는 마지막 [일본 미학 소고]를 깊이있게 읽을 수 있는 과정이다.

글이 쓰인 시기가 과거에서 현재로 진행되기에 시기별로 작가가 포착한 일본을 음미할 수도 있다.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는 전통 일본 미학이 무엇이며, 다른 나라와 무엇이 다르고, 얘기해야할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한다.

일본이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방식,

그것들이 반영된 영화 등의 이미지, 장인과 예술가가 남긴 화석화된 예술품은 자연에 맞닿고 소박함과 절제를 추구하며

흐르는 것을 그대로 두고 음미하는 19세기 이전 일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262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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