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인간만의 고유한 특권으로 여겨지던 언어 능력을 구사하고, 창작을 흉내 내며, 때로는 공감까지 유도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언어와 아이디어를 유창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아니다.
-제임스 보일, <AI는 인간을 꿈꾸는가> 책소개 중
며칠 전, 어느 프로그램에서 AI 남편 때문에 이혼 위기에 처한 부부의 사연을 보면서 충격받았다. 사람들이 챗지피티한테 궁금한 걸 물어보고, 공감받는다는 얘기는 자주 들었다. 나도 챗지피티한테 철학적인 질문을 몇 개 던져본 적은 있지만, 대부분 자료는 책이나 검증된 사이트에서 검색한다.
[AI가 인격 아니 그 비슷한 기계 격을 인정받는 날이 올까요?]
[인간이지만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도 있으니 AI가 좀 더 인간스러운 모습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요?]
어느 독서모임의 채팅방에서 인공지능에 관한 얘기가 활발하게 오갔다. 물론 급변하는 시대를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인공지능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영향력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각자 가져온 태블릿 등에 몰두하는 모습에 교수들이 좌절 혹은 분노하는 영상을 본 적 있다. 만일 각종 미디어나 인공지능이 교육의 역할을 대신한다면, 우린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한 인공지능을 외면하기는 힘들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창의적이거나 파괴적일지도 모른다. 개발자들이 프로그램을 만들 때 인공지능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 여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해 갈 수 없는 과정인 것 같다.
그렇다면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그전에 왜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영화 <그녀>에 나온 것처럼, 우린 직접 만질 수 있는 실물 인간보다 나의 기분을 잘 파악하고 맞춰주는 가상 연인이나 배우자를 선호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점은 그러한 존재를 내 곁에 두려면 자본이 필요하며, 나라는 존재의 개별성은 점차 희미해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