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여자로 안전모 쓰고 현장 누비기

대기업 사원증 대신 안전모와 안전화

by 숭늉
스물셋, 내 첫 출근길엔 하이힐 대신 흙먼지 묻은 안전화가 있었다.





유일한 여자 신입사원으로 살아남기


2011년, 대학교 졸업과 함께 운 좋게도 가고 싶던 대졸공채를 통해 대기업에 비교적 수월하게 입사를 했다. 졸업을 10개월도 더 앞둔 시점이었다. 그땐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풀리는 것만 같았다. 조경학과를 졸업한 나는 당연히 전공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건설사의 조경팀에 들어갔다. 하지만 당연히도 디자인부서로 배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앞으로 신입사원은 무조건 현장부터 돌라는 팀장님의 지시 덕에 건설 현장으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내 나이 23살. 또래 여자들은 멋진 오피스룩에 목에 사원증 걸고,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 그리고 예쁜 구두를 신고 서울 한복판을 누빌 때, 나는 작업복에 안전모를 쓰고, 각반을 차고, 안전화를 신고서 흙먼지 나는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출근은 7시까지였고, 매일 아침을 작업자들과 함께 안전체조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한여름엔 사무실에 돌아오면 비릿한 땀냄새가 진동을 하며 안전모 턱 끈 모양 대로 얼굴이 탔고, 한겨울엔 핫팩이 주머니 속 필수품이었다. 그래도 하루하루가 재밌었다. 온통 학교에서는 배운 적 없는 것들이었고, 나는 스펀지처럼 모든 걸 흡수해서 배우기 시작했다.




유일한 여자로 살아남기


회사 사람들은 나더러 최초의 여자 현장소장이 되라고들 했다. 그 당시 우리 회사 현장에서 여자는 경리업무 계약직으로 계시는 분들 뿐이었고, 나는 우리 팀에서 처음으로 뽑았던 여자 공채 (나름 촉망받는) 신입사원이었다. 어깨가 무거웠다. 내가 잘해서 여자도 현장에서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동시에 이 낯선 환경에서 나 스스로의 가능성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오기가 생겼다. 나만 잘하면, 여자라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주목받게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잘 해내고 싶었다.


햇병아리 여자애가 현장을 누비고 다니는 것을 다행히 좋게들 봐주셨다. 힘든 부분이 있는 만큼 그 속에서 누리는 깨알 같은 자유도 공존했다. 바쁜 와중이라도 비가 와서 작업 공친 날에는 아주 여유로운 하루를 보낸다던가 하는 그런 자유가 있었다. 현장 간식은 내 입맛대로 내가 골라서 사무실 곳간을 채워두었고, 가끔 그렇게 마트로 장 보러 나들이도 나갔다. 발주처 직원이랑 몰래 썸을 타기도 한 건 비밀.


장밋빛만 가득한 곳은 아니었다. 야근은 당연했고 바쁠 때는 주말 중 하루라도 쉴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그때만 해도 참 많은 옳지 않은 일들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다.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발언도 여럿 들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그게 잘못됐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나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어디까지 내가 참아도 되는 것인지, 어디까지가 괜찮고 어디까지가 괜찮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였다. 어딘가에 하소연하거나 물어볼 곳조차 없었다.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길, 혹은 내가 더 단단해지길 바라며 하루하루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약속한 2년이 되자 회사에서는 본사로 들어올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공무팀으로 합류해서 견적을 배웠다. 본사로 들어오자 동기들이 각 부서에 자리하고 있었고, 현장에서와는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현장은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는 지점으로써 하루하루 우리가 완성시켜 가는 결과물을 볼 수 있는 성취감이 있었다면, 본사에서는 그 프로젝트가 현장으로 넘어가기 전까지의 훨씬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재미가 있었다.


이제는 서울 한복판에서 커피를 즐기며 멋진 오피스룩을 뽐내는 꿈에 그리던 회사생활을 했고, 그렇게 이십 대 청춘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평온했던 본사 생활에도 예상치 못한 격랑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대한 폭풍의 시작이었다.